시스템 시대를 열어보자
지만원
마을의 동쪽과 서쪽에 신발가게가 하나씩 있었다. 하루에 평균 10켤레씩 팔렸다.
두개의 신발가게를 한곳으로 모았다. 하루에 50켤레씩 팔렸다. 두개의 가게가 모여
시장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고 이 시스템의 힘으로 판매량이 증가된 것이다. 이를
우리는 시너지 효과라고 부른다. 시스템 에너지의 준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일에 착안하지 못했다. 한국인 한사람 한사람은 유능하다.
그러나 이들이 모인 조직의 성과는 저조하다. 많은 이들이 이를 국민성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는 시스템 탓이었다. 개인의 능력은 시스템 없이도 발휘되지만
시스템 없는 조직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시스템병을 의식병으로 잘못 진단해 오는
동안 우리 사회는 시스템 황무지로 방치돼온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은행에 질서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어느날 대기번호표 시스템이
등장했다. 질서교육 없이도 은행질서가 단번에 훌륭해졌다. 그 간단한 시스템 하나
해놓으면 될 것을 가지고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애꿎은 국민의식을 탓했다. 같은
건설업체가 선진국에 가서는 훌륭한 시공을 했고, 한국에서는 부실시공을 했다. 이
역시 의식탓이 아니라 시스템 탓이다.
첫째, 선진국에서는 엄격한 감리 시스템이 있지만 한국에는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선진국 행정부에는 먹이사슬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한국에는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김포공항의 택시 바가지 요금문제도 의식탓으로 돌려왔다. 이 역시 시스템 탓이다.
싱가포르 공항에는 택시 승차대가 7개이다. 서비스가 빠르기 때문에 손님도 택시도
기다리지 않는다. 손님이 많으면 택시도 많이 들어오고 손님이 적으면 택시도 뜸하다.
공항 근방을 지나는 택시가 공항방송을 듣기 때문이다. 기체내에서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공항과 시내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손님은 메타기 요금에 3달러를 더
얹어주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바가지 씌운 차가 있어도 이는 손쉽게 해결된다. 택시번호만
외웠다가 호텔 데스크에 신고하면 경찰이 나와서 현장에서 해결해 준다. 바가지 요금도
없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반면에 김포공항에서는 지금도 손님도 일열, 택시도 일열로 늘어서 있다. 맨 앞차가
손님을 태우고 떠나야 두번째 차가 그 자리를 이어 받는다. 20번째 서있는 택시는
20,30분간을 기다린다. 택시 기사에게 시간은 돈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누군가로부터
보상받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심리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못난 시스템이 못난 의식을
기른 것이다. 의식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의식을 고치고 싶으면 의식이 그렇게 바뀔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KBS 심야토론에서 구청 도세 사고가 도마에 올랐다. 결론은 공무원 의식과 납세자
의식이 다 같이 개혁돼야 한다는 것으로 끝났다. 공무원과 야합하는 납세자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사회를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한다. 공무원이
바라보는 데마다 구멍이 뚫려 있으면 누구에게나 견물생심이 발동한다.
그러나 바라보는 데마다 구멍이 막혀 있으면 견물생심의 99% 이상이 사전에 차단된다.
한국정부에는 그 99%의 견물생심을 차단할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이를 감사라는 수단을 통해서 차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사는 잘해야 부정의
1%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첫째, 감사관 수는 800명이고 구청수는 278개나 되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의
감사원 능력을 가지고는 제보가 없으면 단 한개의 부정도 발견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몇개의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가 의식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 시스템 개혁의 대상인 것이다.
시스템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설다. 그러나 시스템 개념은 한국인의 피속에 이미
용해돼 있다.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양방요법보다는 한방요법을 선호해 왔다. 양방요법은
부위치료 요법이고 한방요법은 근본치유 요법이기 때문이다. 증세로부터 병의 본질을
진단해 내고, 본질을 다스리기 위해 인체의 시스템을 이용한다. 오른쪽 무릎이 아플
때 왼쪽 귀에다 침을 놓는다.
이 같이 우리는 인체에 발생된 병리현상에 대해서는 시스템적 접근을 해왔지만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인간, 물자, 설비 등 두 개 이상의 요소가 논리적으로 연계되어 특정목적을
수행하는 유기체’를 우리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자연적인 흐름을 차단하는 망은
훌륭한 시스템이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은 인체 시스템이다.
인체는 수많은 조직간의 논리적 상호관계에 의하여 건강을 유지한다. 가장 뛰어난
상호관계는 ‘견제와 균형’관계다. 어느 한 조직이 너무 강해서도 안되고 약해서도
안된다. 밖에서 간섭하지 않아도 조직 상호간의 견제에 의해 건강이 유지된다. 경영체
역시 인체와 같이 견제와 균형에 의해 발전해 가야 한다. 커다란 조직을 일일히 통제와
간섭에 의해 경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몸으로 통제하려 하지 말고 시스템으로
일해야 한다.
시스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경영체만이 21세기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