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막으려면, 전쟁을 준비하라”
“전쟁을 막으려면, 전쟁을 준비하라”
-최장수 국방위원 이한동 의원-
대담·정리:박정아 차장
국회의원 5선기간 전(全)임기라 할 수 있는 15년간을 국방위 소속으로만 입법
활동한 민간 출신 군 전문의원 이한동.
한창 세간에 9룡 좲九龍좵중의 1인으로 회자되는 그는 사병으로 입대해서 군복무
중간에 장교로 임관한 경력 이외에도, 유학중 입대 정년을 넘긴 외아들을 중도에
귀국 입대시켜 병역 의무를 마치게 한 그야말로 전문 국방위원이라 할 수 있다. 기자는
이렇게 애국심에 충만된 최장수 국방위원인 이 의원을 이달에 만난 인물 코너에서
찾아가 보았다.
◆ 법조계에서 판·검사, 변호사 그리고 입법부에서 5선 국회의원으로 당3역인
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 그리고 국회부의장을 지냈는가 하면 행정부의 내무장관까지
지내셨습니다. 명실공히 입법·사법·행정부를 두루 거친 [성공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체는 무엇으로 생각하십니까?
- 그렇게 평가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관운이 좋아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린다면 “노력하지
않는 곳에 성공과 신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직을 생활신조로 삼고
상식과 순리에 따라 최선을 다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항상 국민의 가슴 속에“정도(正道)를 걸은
이한동,국리민복( 國利民福)을 위해 일한 이한동"으로 남고자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그동안 때로는 본의 아닌 오해도 산 일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저의 진심과 열정이
밝혀지리라는 확신을 갖고 소신대로 일해왔습니다.
◆ 의원님께서 바라보시는 현 정치의 자화상을 말씀으로 그려보신다면?
- 현재 우리의 정치는 국민의 시대적 요구에 너무나 뒤처져 있습니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얽매이고 지역구 민원에 시달리다 보니 무한경쟁의 시대,
국가경쟁력의 시대, 정보화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를 차분히 준비해 가는 모습보다는
자신의 인기만을 생각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경향이 정치권에 몸담은 한 사람으로서
국민들에게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루속히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치가 이루어지고, 국민의 기억과 가슴 속에 남아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 현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권논의가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 현재 우리에게 닥친 경제난국과 안보문제를 고려할 때 대권논의가 지나치게
이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또한 대권논의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고 21세기의
새로운 리더십을 지향하는 생산적인 논의가 되기보다 지나치게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논의되거나 인기위주의 행태만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대권후보의 자질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무엇보다도 시장경제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국정의 제분야에 대한 이해와 국가경영에 있어서 경륜이 축적된 사람이어야 하고
국민통합의 정치를 펼 수 있는 의지와 조건도 갖추어야 하며, 도덕성도 겸비하여야겠습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합리적인 국가경영능력과 세계화에 적극 대응해 나갈
수 있는 국제적 안목이며, 변화무쌍한 21세기에 대비하고 남북상황을 감안한 안보문제와
당면한 경제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위기관리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 국가최고경영자의 덕목으로서 특히 경륜과 위기관리능력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밝혀 주십시오.
- 저는 평소부터 “정치지도자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국민의 사랑과
정성을 거름으로 삼아 춘하추동을 거치며 서서히 자라나는 느티나무와 같다"고
비유해 말했습니다만, 헨리 키신저도 최고 지도자가 최고의 직책을 맡은 뒤에 새롭게
성장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왜냐하면 일단 중책을 맡은 뒤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륜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닥쳐오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시시각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며, 결단의 국면에서 자기가 가진 제한된 지능과 판단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위기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고지도자는 성장과정에서
충분히 검증받은 경륜,경험 및 지적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특히 국민의 선택을 통해
충분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질문으로 바꿔보겠습니다. 서울지검 형사부장검사로
한창 검찰에서 승진을 거듭하시던 중에 어떤 계기로 정치입문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11대
총선 전인 1981년 1월에 선거구 조정으로 인해 연천·포천·가평 조직책이 필요하게
되었고 각 기관에서 저를 추천하는 자료가 올라갔습니다. 저는 여러날을 고민한 끝에
나를 낳고 키워준 ‘고향과 흙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을 찾고 또 한편으로는 시대의
부름에 응한다는 마음으로 어렵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 5·6공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신 경력 때문인지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우리는 지난 과거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완벽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지난 시기는 선진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나름의 과도기적 과정이었습니다. 따라서 과거 정권에 참여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느냐,국가와 사회에 기여를 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정치인을 판단하여야
합니다.
저는 지난 시기의 국정에 참여하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벽돌 하나하나를 쌓는
심정으로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문민정부에 들어서서도 민주화를
위한 문민개혁을 원내총무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면서 국회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였습니다.
[냉소적인 방관자]보다도[참여 속의 현실적 개선], [개혁지향적 보수]가 나의 정치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정치 입문 이래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치에 입문한 이래 여러차례 힘든 시기를 경험했고, 그 때마다 중요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국가발
전을 위해 일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모든 순간순간이 힘들었지만, 특히 5공 청문회를
마무리했던 때라고 생각됩니다.
◆ 의원님의 군복무 경력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군복무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 1958년 2월에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58년 10월 사병으로 입대, 광주포병학교에
배치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미 고등고시 사법과 10회에 응시한 상태에서 결과도
보지 못하고 입대하였는데, 광주포병학교에서 1차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국
2차 구술시험을 위해 포병학교 참모회의에서 전례없이 훈련병인 저에게 일주일의
휴가를 주어 저는 고시에 최종합격할 수 있었습니다.이후 1959년 5월에 육군 중위
법무관으로 임관해서 1963년 2월에 대위로 제대했습니다.
◆ 아드님의 병역은 어떻습니까?
- 제게는 외아들이 있습니
다. 미국유학 중에 있던 아들이 나이 30이 다되고 병제가 불러 들였습니다. 한창
공부하고 있던 나이라서 군대 보내는 것이 다소 아쉽기도 하였지만, 남자라면 사회
생활에 앞서서 남들과 똑같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병으로 입대케
해 만기제대를 시켰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신뢰받기를 원합니다. 의원님께서는
성실성과 충직함,한결같은 마음으로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령을 비롯, 여야의원들로부터
인간적인 믿음이 두텁다고 들었는데,그렇게 남에게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십시오.
- 일반적으로 남에게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역시 덕을 베풀고 덕을
쌓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논어에 나오는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는
말은“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덕을 베풀면 자연히
믿음과 신뢰는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제가 전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인간적인 신뢰를 받은 것은 그동안 세 대통령을 모시는 과정에서 특별히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신뢰를 주신 것은 아니라 공적인 업무처리 과정에서 자연히 싹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공사후(先公後私)의 자세로 저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고,
그 일이 부당할 경우는 대통령을 충분히 납득시켜 드리는 등 매사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처리한 데서 깊은 신뢰를 쌓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현정부 출범 직후 민간인이면서도 국방장관 후보에 오르기도 하고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만15년 이상 국방위원회에 소속되시는 등 李고문님과 군과의 특별한 관계가
있어 보이는데요.
- 처음 국방위원회로 상임위를 정한 것은 저의 지역구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지역구인 연천·포천 지역에는 많은 사단과 군 시설이 산재하고 있어 지역개발을
위해서는 국방부와의 협의가 매우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차츰 우리의
안보와 국방문제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고 안보가 무너지면 민주화도 경제발전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저는오늘에 이르기까지 안보와 국방이 국정의 제1과제라는 확신을 가지고
상임위 활동을 해 왔습니다. 덕분에 군인 출신이 아니냐 하는 오해도 받았습니다만,
15년간의 상임위 활동을 통해 우리 군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쌓았고, 군인들과 많은
교류도 가졌습니다.
◆ 북한을 국제무대로 이끌어내려는 우리의 노력과는 반대로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과 4자회담 거부 등 진전을 보이지 않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 여러 가지 제약된 상황 하에서 대북정책에 임하는 정부의 곤란한 입장도 충분히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對北정책의 일관성을 국민에게 심어주어야
할 정부가 지나치게 당근 위주 정책과 對美의존일변도의 정책을 구사해 오면서 국민들에게
환상적인 대북인식과 통일론을 심어주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북통일과
대북정책에 있어 자주·평화·민족주의 원칙의 강조는 당연한 것이며, 또한 경제협력이라든가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 등도 가능한한 확대하여야 한다는 데는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향후의 대북정책은 보다 분명한 두 가지 원칙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힘의 우위에 바탕한 철저한 현실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는 통일과정을 전후하여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날 경우 결국에는 경제력 우위로 우리가 승리하겠지만 개전
초기 3-4일 동안 입게 될 그 엄청난 피해를 생각하면 우리가 이룬 성취와 발전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또한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통일이전까지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대북접촉 외에 민간 차원의 인도주의적 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통일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겠습니까?
- 우리의 국력을 배양하고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통일전략인 동시에 통일준비전략입니다. 우선 정부, 정치권,학계, 민간부문에서
면밀히 통일을 준비해야 하며, 통일은 불시에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닥쳐올
가능성이 높으므로 모든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통일과정을전후하여
야기될 수 있는 긴장고조 및 무력충돌 가능성을 억제하는데 주력해야 하며, 외교적으로도
주변 4강과의 관계 조율을 통하여 통일과정에서 주변국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남한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사전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작년에 이어 97년에도 우리 경제가 쉽게 회생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 원인을 어떻게 보십니까?
- 현재의 경제난국은 우리 산업의 [고비용·저효율]이라는 구조적 취약요인에
따른 국제경쟁력 저하와 수출부진, 경기순환상의 하강국면,그리고 교역조건의 악화가
서로 맞물려 나타난 것입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산업은 몇 년 동안
엔고의 혜택으로 우리 경제를 유지하는 孝子産業이었지만, 그동안 우리는 산업구조를
경쟁력 있게 조정하지 못하고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자초한 것입니다. 따라서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시급히[저비용·고효율] 구조로
전환해야 하며 이러한 구조전환은 경제체질 개선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입니다.
◆ 그렇다면 한국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서 어떠한 조치들이 필
요하다고 보십니까?
- 무엇보다 정부가 각종 불필요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활력 넘치는 경제 분위기를
창출하고 기업의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또한 기업들도 단기이익
추구보다도 장기적인 경쟁력 배양을 위한 기술개발에 주력하여야 할 것입니다.[세계경영]을
한다는 각오로 국내산업의 공동화를 최소화하면서 기업의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동유럽,아프리카, 중동,남미,동남아 등에 시장개척을 적극 추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일반 소비자 및 국민 또한 망국적인 과소비를 지양하고 저축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경제난국의 책임이 어디 있느냐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정부, 정치권,
기업, 국민 모두가 대오각성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새롭게 분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 지난해 11월경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중동지역을 순방하고 돌아오는 등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히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외국방문시 느끼는 우리나라의 세계화,
국제화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작년 8월말에 프랑스,이스라엘, 폴란드,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왔으며, 11월에는
대통령특사로 아랍에미리트와 쿠웨이트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가릴 것 없이 만나는 정치인들마다 최대 관심사는 경제였고
모두가 다 경제세일즈맨이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21세기를 향한 치밀한
전략을 마련하고 하나하나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었고, 한국과의 경제협력 및 교류를
강하게 요청해 왔습니다. 방문과정에서 저는 우리의 세계화 및 국제화 수준이 아직
많이 뒤처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계공용어인 영어의 구사는 물론이고, 그들의
국제적인 매너와 감각에서부터 제도와 관행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수준의 세계화에
도달해 있는 반면, 우리는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방식과 제도·관행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됩니다. 하루속히 우리나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보다
교육의 세계화와 제도·관행의 세계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 동북아시아는 안보체제에 있어 일대전환기에 와 있습니다. 우리의 근세사가
주변환경 변화에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우여곡절을 겪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질서체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급한 외교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지금 우리나라의 안보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안보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외교적으로 주변 4강과의 관계 조율이 최우선과제입니다.
특히 불시에 닥쳐올지도 모를 남북통일과정에 있어 주변국의 방해를 받지 않고, 통일과정에서의
남한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주변국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관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제력을 중심으로 한 국가역량 및 국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전략인 동시에 외교전략의 기본이라고 생각됩니다.
◆ 우리의 국방정책은 어떠한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하겠습니까?
- 안보는 우리가 늘상 숨쉬는 공기와 같이 평상시에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다가
국가위기상황이나 전쟁이 일어나고서야 그 귀중함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전쟁을 막으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말도 있듯이 有備無患의
뜻을 다시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안전은 우리의 힘으로 보장해야지 누구에게
의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국방의 자주화가 중요하며, 이를 위한 선결조건으로서 정보의 자주화, 무기체계의
자주화, 전술·교리의 자주화 등을 달성해야 합니다. 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