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중요성
시스템의 중요성
지만원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그 진단은 언제나 의식 탓이었다. 의식탓으로 돌리면 아무런
대안이 창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스템 탓으로 돌리면 시스템이 생긴다. 선진국과
후진국과의 차이는 건물과 도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의식을 낳고 의식이
문화를 낳는다. 수십년이 걸려야 의식이 향상된다는 안이한 처방아래 우리는 아직도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
의식개혁 운동이 한동안 지속돼 왔다. 그러나 성공사례는 별로 없다. 오히려 많은
경우 의식개혁 운동은 노사간의 불신감을 증폭시켰다. 경영진은 근로진의 의식을
탓했고, 근로진은 경영진의 의식을 탓했다. 경영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능력을 이용하여
일을 성취시키는 기술이다.
그러려면 경영진은 네가지의 매우 어려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목표를 설정해
주고, 시스템을 마련해주고, 동기를 부여해 주고,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 네가지 핵심 경영기능이 어찌 의식개혁으로 대체될 수 있겠는가. 과거 한동안
은행에는 질서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순번번호표 시스템이 등장하자 은행질서가
훌륭해졌다. 그 간단한 순번번호표 시스템 하나만 설치하면 됐을 일을 가지고 우리는
과거 수십년간 애꿎은 국민 의식만 탓했다.
은행의 무질서가 의식탓이었는가, 시스템탓이었는가. 질서유지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길이 의식개혁인가, 시스템개혁인가. 만일 순번번호표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고 그
대신 수많은 청경으로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면 질서가 유지되겠는가. 아마도 청경과
고객간에 말싸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시스템과 인력의 차이다.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에는 택시가 1열로 들어와 7개의 승차대로 갈라진다. 7대의 택시가 동시에
사람을 태우고 떠난다.
손님이 많을 때는 택시가 많이 온다. 공항 안내방송 때문이다. 택시요금은 공항과
시내 사이의 거리를 보상해 주기위해 메타기 요금에 3달러를 더 얹어 주도록 돼있다.
어쩌다 계산착오로 바가지를 썼다면 택시 번호만 적어다가 손님이 묵고 있는 호텔
데스크에 통보하면 경찰관이 택시기사를 불러다 현장에서 해결해 준다. 손님과 택시가
기다리지 않도록 해주고, 바가지 요금이 없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시스템이다.
우리 공항은 어떤가. 아직도 1열 시스템이다. 20번째 서있는 택시는 20분 이상을
기다린다. 짜증도 난다.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으려면 손님에게 돈을 더 받아야
한다. 택시기사에 따라 많이도 받고 적게도 받는다. 손님은 많은데 택시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러한 공항 시스템을 가지고는 관광객도 비지니스맨도 유치할 수 없다.
우리 공항은 어떤가.
이와 같이 우리 한국사회에는 눈에 보이는 공공자산은 많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라는 자산은 없다. 항만에 부두는 있지만 화물을 가장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없다. 지하철이라는 눈에 보이는 자산은 있지만 서비스
시스템은 없다. 싱가포로 전철은 시스템이 있는 전철이다. 갈아탈 때에는 내린 곳에서
에스컬레이터만 타고 한층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바로 승차대가 나온다. 어느 쪽 전철을
타느냐에 대한 혼돈이 전혀 없도록 해놓았다.
우리의 경우 2호선을 먼저 건설할 때에는 훗날 4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전철역을 동시에 건설했어야 했다. 환승에 따르는 시간낭비와 혼잡으로 짜증이 난다.
출근길에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해 버린다. 짜증나고 피곤한 몸으로 일할 맛이 나겠는가.
싱가포로 전철역에는 근무자가 두사람 뿐이다. 서울 지하철역에는 역마다 20명이
넘는다. 설계에 시스템이 들어있고 없고에 따라 수명주기간 비용이 천지차이로 발생한다.
동대문 지역 상가에는 용달차가 주정차 할 수 있어야 물류비가 절감된다. 그러나
그 지역엔 단속반이 나와 주·정차를 단속한다. 짐을 싣고온 차량들이 단속반의 눈치를
살피면서 수십바퀴를 돈다. 이로부터 엄청난 낭비가 유발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성의 파괴다. 눈치보는 국민성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눈치보는 국민성의 탓인가, 시스템 탓인가. 세 대의 공중전화 박스가 있다. 한국인들은
세 대의 전화박스 앞에 세 줄을 선다. 줄을 잘서야 전화기를 일찍 차지할 수 있다.
차례가 논리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요행에 의해 오는 것이다. 세 대의 전화기
앞에 한 줄을 서보자. 맨 앞에 선 사람이 세 대의 전화기 중에서 먼저 비워진 전화기를
차지할 것이다. 한줄 시스템은 논리에 의해 차례를 배분해주지만, 세줄 시스템은
요행에 의해 차례를 배분해준다. 주택청약제 역시 마찬가지다. 3년 무주택자보다는
15년 무주택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논리적 우선순위에
의해 주택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제비뽑기라는 도박에 의해 배분하고 있다. 이렇게
요행의식을 조장하는 사회경영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실력보다는 줄을 잘서야 차례가 오고 출세하는 요행시스템 사회에서 살아가는
국민에게 어떻게 노력하고 저축하려는 마음이 생길까. 정부 조달방식은 예산회계법에
따라 최저가 낙찰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한탕주의 의식을 낳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납품검사시에는 그럴 듯하게 보이는 제품이 단 1년을 넘기지 못해 고장이 나고
폐기된다.
오랜동안 양질의 제품만 시장에 공급해온 업체의 명성도, 신용도 품질도 고려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기업의 품질정신을 병들게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통신설계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불어났지만 제대로 전문인력을 갖춘 회사는 거의 없다. 통신설계
회사의 설립요건은 매우 간단하다. 전공분야에 관계없이 대학졸업자 몇명만 보유한
것으로 서류만 갖추면 사업허가가 난다. 유령회사들이 대학졸업장을 가진 가정주부
몇사람을 직원인 것처럼 꾸민다. 유령회사 몇개가 담합을 해서 입찰가격을 달리해
입찰에 응한다. 이들 중에서 어느 한 업체가 선정된다. 낙찰가의 50%는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에게 배분된다. 겨우 30%의 돈을 하청업체에 건내준다. 이들 틈에서 건전한
업체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 사회를 이토록 병들게 한 것은 허술한 ‘입찰시스템'
탓이지 ‘의식' 탓이 아니다.
발상전환의 위력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기업이 안될 리 없다".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개인의 최선을 유도하기 위해 신바람 운동이 확산됐다.
과연 개인 개인 모두가 최선을 다하면 이윤이 극대화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개인의
최선이 기업이윤의 극대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보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이윤이 내려갈 수 있다. 12대의 기계가 하나의 공정을 이루고 있었다.
각 기계에 한 사람씩의 작업자가 배당됐다. 작업자가 기계에 일감을 걸어놓고
있는 동안 기계가 일을 했고, 기계가 일하는 동안 작업자는 할 일없이 서 있었다.
작업자의 유휴시간을 아깝게 생각한 사장이 각 작업자에게 똑같은 기계를 더 사주었다.
어떤 작업자는 2대의 기계를, 또 어떤 작업자는 4대의 기계를 가지고 쉴 새 없이
일했다. 이것을 지켜본 사장은 매우 만족해했다.
열심히 일한 것만큼 이윤이 상승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자가
열심히 일할 수록, 그리고 작업자의 단위생산량이 상승할 수록, 이윤은 더욱더 감소했다.
이는 토요타 자동차의 사례다. 열심히 일할 수록 이윤이 감소하는 이 기막힌 사실에
대해 부사장이었던 다이이찌 모노씨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는 차속에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열심히 일할 수록 각 작업자 앞에는 미쳐 소화되지 못한 재고품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쌓일수록 자금이 사장됐다.
각 기계 앞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재고품을 정리하는 데에도 일손이 필요했다.
이 두가지 이유 때문에 이윤이 감소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냈다.
전공정은 후공정에서 소화한 것 만큼만 만들라는 규칙이었다. 두 가지 비용요소가
절약됐다. 그러나 유휴시간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유휴시간을 이용하기
위해 모노씨는 발상을 전환했다. 한 작업자에게 여러가지 기계를 다룰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새로운 기계를 배우는 작업자들은 기계의 오묘한 원리를 터득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봉급 따위에 관심을 갖을 여유도 없었다. 몰두한 것만큼 행복했고, 다룰 수 있는
기계수 만큼 자긍심도 올라갔다. 결국 12사람이 다루던 12대의 기계를 한 사람이
다루었다. 인건비가 12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방식에 따라 일을
열심히 시키면 얼마만큼의 성과가 올라갈까, 잘해야 10-15% 일 것이다. 성과를 수백%
향상시키려면 반드시 일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리엔지니어링의 기본개념이다. 생산성을 올리고, 인원을 절감하고 공정기간을
줄이고 싶은 것은 모든 기업의 희망사항이다. 미국인들이 최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기능별로 분류돼있는 조직을 프로젝트 단위의 조직으로 바꾸는 방법이었다.
과(課)가 무엇인가. 과는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합소다. 회계과는 회계인들의
집합소이고 자재과는 자재인들의 집합소다.
이렇게 분류된 조직을 가지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수많은 과를 동원해야
한다. 각과에서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각 과에있는 소수들을
따로 집합시켜 하나의 팀을 이루고, 그 팀으로 하여금 하나 또는 몇 개의 프로젝트를
맡기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프로젝트 완성시간이 5%로까지 단축될 수 있다.
비용이 10% 정도로까지 내려갈 수 있다.
생산성과 품질이 획기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성패가 팀장이라는 단일
실명제로 이뤄지고, 행정서류를 돌리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토의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의사결정의 질과 아이디어가 수백-수천배로 향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한국업체에게 적용돼야 할 매력적인 방법이지만 실용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전과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마련하는 일도 엄청난 발상을 요구하지만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과단성을 갖은 경영자는 드물다. 이는 기업조직과 개념을
리메이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장과 부장제가 폐지되고 프로젝트를 맡아 현장리더십을
발휘하는 팀장이 생겨야 한다.
일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팀장에게는 책상이 필요없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변신을 감당하려는 의지를 갖은 소수경영인만 획기적인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리엔지니어링은
시스템공학의 산물이다. 리엔지니어링의 저자 마이클해머는 시스템공학자다. 그 책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도 시스템공학에 익숙해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에 나와있는 번역서들은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리엔지니어링이 결실을 맺어주지 못한 이유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발상전환은 개인의 철학에도 필요하다. 바로 직장철학이다. 직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직장과 인생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은 밥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 일을 적게하고 많은 보수를
받기원한다. 보수는 일정한데 일거리가 생기면 싫어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사나 간호원이 되면 환자에게 불친절해진다. 반면 직장을 자기발전을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직장에는 배울 것들이 너무나 많다.
배울 것이 많으면 돈을 내고서라도 직장을 다녀야 한다. 자기 부서의 일을 개선해보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면 개인에겐 창의력, 추진력, 리더십이 자란다. 다른 부서의 업무를
배우려고 노력하면 자신도 모르게 직장을 종합적으로 보는 경영안목이 자란다. 자기에게
부여된 임무만 완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 개인능력은 퇴화된다.
자재과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재과 업무 이외의 다른 일에 무심하면 그는 잘해야 자재부장으로
끝날 것이다. '5년후와 10년후에 나는 각각 어떤 모습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인가.
이러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면 매일매일 할 일이 많아진다.
위인과 걸작품은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발전의 산물이다. 기업철학에도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컴퓨터왕 빌게이츠가 한국에 와서 매우 중요한 말을 남겼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비지니스가 내 인생을 물을 만큼 재미있을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처럼 자기를 엄청난 돈더미위에 올려 놓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열심히 재미있게 일하다 보니 돈이 벌렸다는 것이다. 기업의
최고 가치관과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윤극대화라고 말한다.
극히 당연하게 알고 있는 이 기업철학이 알고 보면 기업을 허무는 독약이다. 최고경영자가
이윤극대화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면 모든 중간 간부들이 이윤극대화에 목을 건다.
그들은 장기이윤으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단기이윤으로 평가받는다고 믿고 있다.
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