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거봉을 오르는 하얀 영웅들


양대규


오늘날 극지탐험이나 고산을 정복하는 대장정에 있어서 군대의 역할이 새로운 시각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군대라는 조직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토방위와 국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국력신장의 결정체로써 여러 분야에서 그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다양성이 요구되고 있다.


인간은 보다 더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고 있다. 그것은 더높은 산을 오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보다 더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더높은 이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탐험정신이야 말로 항상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인류의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세계 열강들의 자존심과 산악인들의 꿈이 펼쳐지는 곳 히말라야!


1953년 존·헌트(John Hunt) 중령이 이끈 영국의 등반대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에
오른 이후 세계 각국의 군대는 나라의 명예와 자존심을 건 대 모험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극지탐험이나 고산을 정복하는 대장정에 있어서 군대의 역할이 새로운
시각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군대라는 조직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토방위 와
국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국력신장의 결정체로써 여러분야에서 그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다양성이 요구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군대에서는 보다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군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것은 무력 집단으로써의 기존 가치를 넘어서 이제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도로써 그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예컨데 각종 스포츠 활동이나 난민구호, 자연보호, 극지탐험, 고산등반 및 우주탐사
등 군대의 역할은 전쟁이 아닌 또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능력을 과시하고 있으면서
이러한 흐름은 국민속의 군대로써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군대가 높은 고산을 정복하는 것은 전술적인 승리를 얻는 것 외에도
인간의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존이 거부되는 극한 지방에서 군대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투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젊은 영웅들의 용기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히말리야 산맥과 알프스의 빙벽에 도전하는 셰계 각국의 용사들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보여주는 고독한 싸움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결코 좌절하지 않는 군인정신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고 있다.


● 미군과 인도군 합동 등반대의 히말리야 도전


미군과 인도군의 히말리야 원정대는 이미 80년대 말기에 이르러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였다. 그것은 이제까지 외국의 어느 원정대도 등반을 기피하는 가장 험준한
빙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인도의 히말리야 정상인 마나(Mana)봉은 7500m급의 빙산으로 이미 50년전에 영국군
등반대가 등정의 쾌거를 이룩한 산이었지만 미군과 인도군의 합동등반대는 새로운
목적의 등정을 시도하였다.


즉, 가장 험준한 등반 루트를 공격함으로써 등반 기술에 대한 시험과 대원들의
인내심, 또는 강인한 정신력을 테스트 하는 것이 었다. 또한 새로 개발된 신형 등반장비에
대한 내한성 시험과 극한지대에서의 활용성을 연구하는데 그 목적을 두게 되었다.


미군 등반대는 남·여 혼성팀으로 구성되어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시설과
강사진을 구비하고 있는 알라스카의 산악전 학교에서 이미 수십회에 달하는 산악
훈련을 경험하였고, 북미 최고봉인 (6800m)봉을 등정함으로써 히말리야의 대설산(
大雪山)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또한 버몬트의 산악전 학교에서도
빙벽등반과 암벽을 오를 수 있는 전문적인 테크닉을 익혀온 미군 최고의 베테랑 등반가들이
선발되었다.


등반대원들 중에는 의사와 공군소속의 사진기사도 포함되었다. 이들 등반대원들이
미국의 자존심을 걸고 마니봉에 깃발을 꼿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미국과 인도 양국간에는
사전에 치밀한 군사적, 외교적인 협조관계를 맺어왔다. 합동등반대가 출범하기 전까지
양국은 1년동안이나 긴밀한 협조를 한끝에 1987년 9월에 드디어 인도 국방이사회에서는
외국군의 히말리야 등반훈련을 승인하게 되었다.


이제 미육군 서부 사령부(West Com)는 해외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미국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임무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히말리야에 도전하는 합동등반대의 구성은 21명의 인도군 산악 등반대원과 13명의
미국 산악대원, 그리고 75명의 포터(짐꾼)로 편성되어졌다.


마니봉을 오를 수 있는 등반지기(Base Camp)를 건설하기 위하여 합동 등반대는
장거리 산악도로를 버스를 이용하거나 혹은 도보로 행군을 하였다.


등반대는 수십톤에 달하는 등반장비와 물자를 수송하였고 빙산을 지날 때마다
일어나는 눈사태의 위험 때문에 10여일간을 소비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국 등반대원들은 4000m의 Base Camp에서 고도적응 훈련을 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였다.
그러나 산소결핍에서 오는 고산병 증세로 말미암아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가 없으므로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 등반대는 남아있는 체력과 기술, 그리고
갈고닦은 정신력으로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


마니봉의 정상 일대는 거친 폭풍이 불어 눈사태가 수시로 흘러내리고 빙산의 곳곳에서는
크레버스(빙하의 갈라진 계곡)가 죽음의 함정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등반대는 초인적인 노력을 한끝에 4600m 지점에 제1전진캠프를 설치 하는데
성공하였고 이어서 5400m 지점에서는 빙산의 슬로프를 깍아내고 제2캠프를 설치할
수 있었다. 거대한 빙벽과 영하 30도의 살인적인 추위속에서 등반대원들의 사투는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대원들 상호간에 연결한 로프와 빙벽에 설치한 피톤은
유사시 추락과 실종을 방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7000m지점에 마지막 정상공격
캠프를 설치 했을 때까지 등반대원들은 2000m에 이르는 고정 로프를 빙벽에 설치하였고
때로는 350m의 수직 빙벽에 붙어서 거미처럼 곡예등반을 해야만 했다.


폭풍설과 혹한을 무릅쓰고 미국 등반대의 선두가 88년 9월 13일 드디어 마나(Mana)봉
정상에 성조기를 꼿았다. 이들은 과거 어느 나라의 등반대도 사용하지 않았던 마니봉의
가장 험준한 루트를 공격하여 등정하는 새로운 기록을 남길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해 정상을 오를 수 있었던 대원들은 6명의 미군과 19명의
인도군으로 기록되었다. 그들은 정상에서 3일동안 머무르면서 세계의 지붕에 오를
수 있었던 기쁨을 나눴다. 또한 무한한 대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승리의 쾌감을 만끽하면서
거대한 히말리야 산맥의 또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었다. 이러한 승리는 우리나라가
88올림픽의 열기로 차있었을 즈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또다른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 힌두쿠시의 빙벽을 오르는 파키스탄군과 미군 등반대


파키스탄군의 고 고도산악 학교(High Altitude Mountain School)는 북부 국경지대의
카라코람 산맥과 힌두쿠시(Hindu Kush)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세계 최고(最古)의
산악 등반 교육기관이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K-2봉(8611m)이 하늘을 찌를듯이 그 거대한 빙산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투지로써 과거 인도와의 국경분쟁으로
끊임없이 유혈충돌의 불씨가 남아있는 곳이다. 파키스탄군이 인도군과 오랫동안 북부
고산지대에서 싸웠던 이른바 캐시미르 분쟁의 고지 산악전 경험은 오늘날 세게적으로좥고산전쟁의
황제좦라는 명성을 얻어오고 있다.


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파키스타군과 인도군의 Base Camp는 최소한 5000m이상의
고산에 위치하였으므로 전투행위를 하기전에 이미 병사들은 인간의 생존을 거부하는
극심한 추위와 산소결핍에서 오는 고산병 과도 싸워야 했다. 산악전에 숙달된 병사들이라
할지라도 사상자의 80%는 혹독한 추위와 고산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5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고산전쟁을 통하여 파키스탄군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피의 경험을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고난도 산악전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 당나라의 고선지장군이 힌두쿠시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 대원정
작전을 전개 하였던 바로 그 산악전투의 현장에서 파키스탄군은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산악전의 교훈과 국방경호의 위기감을 항상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고난도 산악전 학교가 위치한 거대한 빙산의 파노라마속에서 오늘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알피니스트들의 고난도 등반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거대한 빙산을 오르면서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승리의 영광을 갈구하는
진정한 개척자들이었다.


1995년 겨울에 이르러 미육군 특수부대의 산악전 요원들은 파키스탄군의 고난도
산악학교에서 미군으로서는 최초로 산악 등반 훈련을 실시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험준한 이곳은 미군들이 알라스카의 설원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또다른 난관을 넘어서야만
하였다. 장시간 머무를수록 더욱 가중되는 고산병 증세는 인간의 능률을 더욱더 저하시키고
체력은 한없이 저하되기만 했다.


그러나 산악전 요원들은 산악구보로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고도에 적응해 나갔다.
산악등반의 훈련 프로그램은 미군들이 국내에서는 결코 겪어보지 못한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6000m급이상의 빙산에서 숙영하면서 대원들은 정해진 시간내에 빙산의
정상에 위치한 전진캠프에 도착해야 했다.


5~8Km씩 이격된 수개의 전진캠프를 통과하면서 미군산악전 요원들은 삶과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극복해야 했다. 수십미터의 빙벽에 직면하거나 언제 무너져 버릴지
모르는 눈사태의 위험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고고도
산악학교의 강사진들은 산악지역에서 결코 아무런 배려나 도움을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할 수도 없는 환경임이 분명했다.


미군 산악전 요원들은 고고도에서 계속되는 고산병으로 말미암아 음식물을 제대로
섭취할 수가 없고 두통과 시력 마비 증세에 시달려야 했다.


체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산악지역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전개 하였다. 설벽에서 온몸이 얼어붙고 빙벽과 크레버스에서 추락하여 부상을 당하면서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남기 위하여 목표지점까지 움직이는 것이었다.


미군산악전 요원들이 파키스탄의 산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그 훈련의 최고수준에
도달하였을 때 산악전 요원들은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Mount Khushik봉을
정복할 수 있었다.


만년설이 뒤덮힌 빙산을 정복하는데 성공한 등반대원은 그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인간 승리의 위대한 힘을 과시하였다.


<배가 고프고 몸이 지쳐도 먹을 수가 없었다. 오직 심한 구역질만 했을 뿐이다.
이제는단지 먹는 것과 자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 히말리야 산맥을 오르는 독일군과 네팔군


만년설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히말리야 산맥의 고봉을 따라서 독일군과 네팔군의
산악가이드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빙벽을 등반하였다.


독일군의 산악전학교와 동계전투학교에서 선발된 2명의 정예 독일군 산악 가이드는
네팔군의 특수부대원들과 함께 1995년 동계기간동안 네팔의 산악전 학교에서 수행하는
특수 산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독일군이 미래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이처럼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제2차세계 대전을 통하여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을 체험한 전쟁교훈을 상기하고
있으며, 한편으로서는 1942년 유럽최고봉인 엘브러스(5633m)를 독일육군의 선발대가
최초로 등정한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독일군 산악가이드들은 히말리야의 고산등반을 통하여 극한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수장비와 피복, 식량 등의 내한성 시험을 병행하였다.


15일간 계속된 고산등반은 해발 6300m의 토랑피크(Thorang Peak)봉의 등정이었다.


네팔군과 합동으로 편성된 독일군은 국내외의 산악등반훈련은 물론 알프스의 빙벽에서
고난도의 등반기술을 익혀온 베테랑 산악등반가로서 히말리야 빙산의 어느곳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었다. 대원들은 고도상승에 따른 컨디션 조절훈련과
고산병적응 훈련, 그리고 설상행군과 암벽, 빙벽등반훈련을 실시하면서 영하40도의
살인적인 추위속에서 생존하는 기술을 익혔다.


등반대원들은 시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 강렬한 햇빛과 만년설의 반사광속에서
생활하고 산소결핍에서 오는 두통과 어지러움에 시달려야 했다.


안나푸루나(8091m)봉 일대에는 4개의 훈련 캠프를 설치하였고 각 캠프에서는 20명의
대원들이 30Km의 등반거리를 극복하면서 눈과 싸워야 했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거대한 눈사태가 일어나면 수십길의 낭떨어지와 크레버스 지대에서
대원들은 서로의 몸을 쟈일로 연결시킨 채 곡예와 같은 산악 등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독일군의 산악 가이드들은 과거 알프스의 빙벽훈련에서 경험한 육체적인
고통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들은 동료들이 고산병에
쓰러지고 빙벽에서 추락하는 상황속에서도 산악 구조 활동을 능률적으로 전개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록에서 생활해온 네팔군의 특수부대원들은 고산지대의 악조건 속에서도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였다. 희박한 산소를 마시며 그 자신의 체중보다도 더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급경사의 빙산을 꿋꿋하게 올라갔다. 그 어떠한 폭풍설이 불어 닥쳐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네팔 쿠르카족의 끈질긴 근성을 발휘하면서 난관을 극복해
나갔다. 이러한 네팔군의 감투정신과 독일군의 고산정복 의지는 세계 어느 나라의
추종을 불허 하면서 항상 새로운 기록과 고난도의 등반기술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세계 최강을 자랑하였던 독일군이 그 면모를 다시 한번 과시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거보(巨步)를 내딛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하여 도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