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양지인의 우 (宋襄之仁의 愚)
박재화 외
序言
지난 달 어느 안보주제의 ‘만찬 포럼’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대개 이런 모임들의 참석자들은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으로서 사회 및 국가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대단한 법이다. 포럼의 참석자들은 주제발표도 하기 전에 만찬 테이블별로 무언가 열띤 토론에 빠져 들었다. 필자가 앉았던 테이블에서는 한반도 통일의 전망과 현재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식량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가 대북식량지원을 해야 할 것인지의 여부가 화두로 되었다.
’95년 15만톤의 쌀 지원시 북한이 보였던 인공기 게양 및 승무원 억류사건과 군량미로의 전용 가능성 등을 예로 들면서 지원한 쌀 배급과정의 투명성 보장과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우리의 평화통일전략 추진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조건들을 어느 정도 충족시킨다는 보장이 있을 때 쌀을 지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사람이 먼저 ‘조건부 쌀 지원론’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필자로서는 전혀 예기치 않았던 현상이 나타났다. 물론 쌀의 조건부 지원론에 반대하는 주장도 일부 있겠지만 조건부 지원론을 중심으로 가능한 보완책이 주로 논의되리라 예상했었는데 결과는 ‘무조건 지원론’의 우세쪽으로 처음 말을 꺼냈던 조건부 지원론자가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 되어 갔다. 무조건 지원론자들의 논리는 失政의 突破口를 찾지 못해 허둥되고 있는 김정일의 심사를 건들게 되면 무력(전쟁)으로 우리에게 보복하려 할 것이고,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 능력이나 전방에 추진되어 있는 각종 장사정포의 성능과 화생전 능력으로 미루어 볼 때 서울이 초토화되는 것은 간단하다. 전쟁이 나면 서울이 망가질텐데 전쟁이 나도록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북한 주민은 우리 동족이 아니냐, 동족이 굶어 죽는다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하냐, 북한의 인공기 게양사건 같은 것은 우리가 북한보다 대국이니까 형의 입장에서 너그럽게 봐 주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대북 쌀 지원에 있어서는 민간차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아무 조건없이 지원하도록 시급히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아무 조건없이 북한에 쌀을 지원해야 하고 북한이 하는 대로 뒷바라지나 하도록 우리의 통일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안보를 화두로 논의한다는 사람들의 안보의식이 이 정도의 수준인가 하는 데에서 당시 필자가 받았던 엄청난 정신적 충격은 말할 나위가 없다.
본고에서는 우리가 처해 있는 전략적 환경을 살펴보고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올바른 대북관이 무엇이며, 대북정책의 추진방향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소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Ⅰ. 우리가 처해 있는
전략환경은 어떠한가?
극동지역을 보면,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000마일 이내의 지역에 10억의 인구, 동아시아 산업시설의 80%, 동북아에 배치된 군사력의 75%가 집중되어 있어 극동지역이 아시아의 중심지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조건과 결부하여 한반도는 대륙세력(중국, 러시아)과 해양세력(일본, 미국)간의 세력교차점으로서 병참적, 교량적, 기지적, 완충적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극동지역의 심장지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주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지전략적 가치를 보다 가중시킨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일본, 러시아 3개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를 각축장으로 하여 극동지역에서의 패권경쟁을 필사적으로 전개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들의 한반도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바탕으로 대한반도정책을 추구하리라 예견된다. 한편 미국은 지난날 그들의 대한반도 소외정책이 초래하였던 근대사의 교훈을 거울 삼아 극동지역에서 한반도가 차지하고 있는 안보 요충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6.25 전쟁의 참전을 통해 지금까지 다져 온 한·미 협력기반을 토대로 하여 그들의 신세계 전략 추구를 위한 세력균형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탈냉전시대의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국가 안보개념이 이념보다는 실리를, 군사적 대결보다는 상호교류와 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즉 종래의 군사 또는 정치성향적인 안보개념에서부터 상호 이익 증대를 목표로 경제 및 기술분야의 협력을 보다 강조하는 ‘포괄적 안보’(Comprehen-sive Security) 개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군사력(군사위협 또는 전쟁)에만 의존하여 해결하려 했던 각종 국제 및 국가간의 분쟁이나 갈등을 ‘국제 체제’(International Regime)를 통한 경제 활동이나 기타 비군사적인 활동을 통해 예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협력적 신국제질서의 확립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권위체제의 소멸 내지 약화에 따른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증대로 새로운 위기가 도래할 소지가 오히려 많아진다는 부정적 요인도 다분히 있다. 세계적으로는 냉전시대의 산물인 이념적 갈등의 잔재가 지역적으로 상존하고 있고, 민족적, 종교적, 인종적 제반 갈등과 일부 역내 국가들간의 국익층들 내지 신패권 추구로 인한 마찰 등 지역분쟁의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현실적으로 한반도는 남북간 이념적 대립의 휴전상태에서 첨예한 군사적 대치를 지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국과는 영토권 및 경제수역권의 문제를 놓고 국익상층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대만 해협, 일본의 북방 4개 도서, 남사군도 및 조어도 등을 둘러싼 역내 국가간의 분쟁가능성을 비롯하여 미·일 경제분쟁, 미·중 패권경쟁, 중·일 세력 경쟁 등 다양한 불확실성 및 불안정성의 갈등요인이 잠재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를 개관해 볼 때 우리는 비록 남북이 대치한 분단상태에서 주변국에 비해 소국이라는 악조건을 지니고 있지만 중국, 일본, 러시아와 미국 등의 세계적 열강이 각축하고 있는 극동지역 세력권의 전략적 중심국가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화해협력 및 불확실성의 시대를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역내 4강 세력권의 대립구도와 세력판도에 대한 변화 추이를 예의 주시해 가면서 우리의 반도적 입지와 내선적 위치가 점유하고 있는 지전략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역내 세력권의 균형자적 역할을 자임할 수 있도록 자주적 역량을 배양하는 한편 민족 숙원인 통일과업에 대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통일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을 때에는 소국이지만 통일이 되면 200만의 군대와 7,000만의 인구를 갖는 대국으로 변신한다.1) 이렇게 커진 한반도는 지금까지처럼 주변국의 힘에 쉽게 좌지우지 되지 않을 것이며 주변국들에게도 통일한국이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될 수가 있다. 통일과정에 있어 주변국들은 겉으로 통일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결코 밝히지 않으면서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해 올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주변 4강이 한반도의 통일보다 분단상태를 선호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주변국이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통일보다는 분단이 훨씬 더 편리한 구도이고 그들의 국익추구에 유리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어느 특정국가가 통일에의 대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통일과정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들 세력판도의 부정적 요인들을 어떻게 긍정적 지원세력으로 전환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남과 북 중에서 통일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분명히 해야만 한다. 그러면 누가 통일의 주체인가?
남북간의 국력 및 체제의 우열이나 역사성 및 전통성의 계승이라는 민족적 문제 뿐만 아니라 역내 세력판도면에서도 통일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긍지를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 냉전시대의 종언과 더불어 중국 및 러시아가 북한과의 혈맹적 군사동맹관계를 파기하면서까지 대한국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실리를 쫓아 우리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정치·경제적 친교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대전환을 시도하였다. 이로 인해 지역정세는 냉전시대의 경직적이고 적대적인 3:3 대립체제(한국+미국+일본:북한+중국+소련)에서부터 유화적이고 친한적인 세력구도로 변모해 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조성되어 가는 통일에의 여건을 어떻게 활용하여 통일과업을 완수할 것이냐의 관건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전국민의 일치된 통일 주체의식과 건전한 통일의지,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정부 차원의 일관된 통일전략 및 합리적 통일정책의 추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 하겠다.
Ⅱ. 북한은 누구인가?
북한 노동당 비서, 당 서열 21위인 황장엽의 귀순 망명에 때 맞추어 최근 북한 관련 신문기사의 대부분은 북한이 4자회담에 응해 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비롯하여 식량부족으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한편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개발 및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 수단의 우위를 이용하여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과 그에 따른 위험과 공포를 심심치 않게 다루고 있다.
“북한 주민 영양실조로 구루병-괴혈병 많아” 제하 기사의 북한 실상 소개 내용을 보면
‘북한 식량난/ 하루 한줌(100g) 배급… 그나마 몇 달째 끊겨/ 주민들 ’95년 8월 이후 고기 먹어본 적 없다/ 노장년보다 청년이 키작아… 영양악화 반영이라 할 정도로 북한의 주민생활이 굶주림의 극한 상황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각종 언론매체는 물론, 사회 계층 및 집단들이 나름대로 보수와 개혁의 너울을 쓰고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당위성 또는 부당성을 거론하면서 정부의 올바른 대책을 촉구하거나 대북 쌀지원을 사회 운동으로까지 가시화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일부 개혁론자들의 주장을 살펴 보기로 하자.
“정부가 머뭇거리면 국민이 나서야 한다/모금에 참여하는 것과 쌀 지원을 가로막는 세력에 민족적 분노를 전달해야 한다” 북녘땅에서 들려오는 괴울음에 더 이상 귀를 막아서는 안된다.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넘쳐나는 음식 쓰레기에 환경오염을 걱정하면서도, 영양실조로 말라 비틀어져 간다는 동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몰인정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반만년을 함께 살아온 민족이므로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 동족이 배를 곯고 있는데 방관하는 남한의 이중성을 국제사회는 어떻게 볼까, …‘4자회담에 나오면 식량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정부의 배부른 흥정은 동포의 굶주림을 담보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반인륜적이다. … 설사 정부의 고집이 성공을 거둬 4자회담이 이루어진들, 응어리진 감정으로 얼굴을 맞댄들 무슨 좋은 끝을 볼 수 있겠는가.
…그동안 대북 쌀지원을 반대하고 정부가 유화책이라도 펼라치면 사사건건 트집을 잡은 것이 우리 사회의 극우세력과 이들을 대변해 온 보수언론이었다. 때로는 있는 사실을 부풀려서, 때로는 없는 사실을 왜곡해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온 것이 이들이었다.
어느 병원 노조의 대북 쌀지원 모금을 위한 격문을 보면,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젊은 처녀들이 팔려가고 있다” 매일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문이 사실이라니, …남다른 자식사랑파이지만 가족의 굶주림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않는 우리들의 대통령…, 자기집 대문밖만 나가면 모두가 남이 되고 경쟁자가 되는 우리 내면의 각박함, 걷히지 않는 허영과 욕망… 이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극복할 수 있는 것…, “북한 어린이와 밥 한 끼 나누는 운동”에서 시작했으면…, 이 운동이 어떤 논리나 방법보다도 가장 강력한 통일운동이며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구하는 일은 바로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 된다.
이와 같이 소위 개혁론자들은 감성적 인성을 자극하는 대북 온정론을 앞세우면서 북한당국의 실정이나 체제 모순은 덮어둔 채 우리 자신만을 질타하고 있다(그것도 우리 정부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매도하면서).
어찌 북한 동포만이 우리 동포이겠는가, 이조 말의 민족적 시련기와 근대의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예상외로 수많은 해외 교포들이 세계 도처에 이주하여 생활 터전을 마련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국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우리의 동포들이 집단적으로 한국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이들 교포들이 부당하게 어떤 고난에 직면하였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우리들의 끈끈한 동포애가 조용히 잠자고 있겠는가, 더구나 통일이 되면 한 국민으로 이웃집으로 함께 살아야 할 북한 동포들이 굶주린다는데 어떻게 우리 국민이 무관심할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옳은 말이고 인지상정의 표출임을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시점에서 북한 주민이 왜 굶주리게 되었는가의 근본적 원인과 북한의 본질 및 실상을 냉정한 시각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고 머지않아 닥쳐올 통일의 기반을 건전하게 다져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항은 첫째로 북한체제의 封建的 閉鎖性과 硬直性이다. 한마디로 북한 사회에서는 우리와 같은 정보의 흐름이나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필자가 기억해 보건데 근대적 통신수단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초까지는 남한에서도 한 쪽에 무슨 사건이 생기면 그것이 소문에 소문이 되어 다른 쪽에 알려지기까지 보름 내지 석달 정도가 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북한 주민들이 어떤 소식을 듣는다면 이와 다를게 무엇이겠는가?(통신수단이 미비되었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북한 당국이 취하고 있는 교류의 통제 및 제한이 더 큰 원인임) 김일성/김정일의 신격화와 교조적 국가지도 체제의 운용을 위해서는 공산주의 사상의 집단적 교화에 앞서 주민들간의 정보차단에 최우선적 역점이 주어졌으리라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84년도 수해 때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북한 당국이 구호품 지원을 제의해 오자 우리는 조건 없이 북한 제품을 표시된 원상태로 받았던 적이 있다(사실상 받을 필요도 없었고 실질적인 도움도 안되었지만), 당시 만약 우리가 북한제 표지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면 그들이 구호품을 보냈을까, 이제 거꾸로 우리가 보내는 지원물품에는 왜 우리 한국제품이란 표지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둘째로 북한 권력집단이 취하고 있는 對韓國 敵對性과 欺瞞性이다. 북한 당국은 그들이 정권을 창출하던 초기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한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에서 북한체제가 존립하는 것으로 공식화해 온 우리의 적대집단이다. 사실상 북한 당국은 김일성/김정일의 봉건적 세습왕조와 이들을 정점으로 하는 기득권집단의 독점권력체제를 어떻게 연명시키느냐에만 국가운영의 초점을 맞추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이들이 남북관계에서 이따금 유화적인 제스추어를 취한다고 해서 그것을 액면 그대로 우리와의 대립관계 청산이나 대남적화 전략의 포기에 대한 일말의 조짐이라고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단언컨데 북한에 현재와 같은 김정일 일당의 기득권집단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공산혁명 전략 및 대남무력적화 통일전략에 기초한 대남기본전략(대한국 적대전략 및 정책)의 변화는 기대하기가 어렵다(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반세기 동안에 걸쳐 조금도 변하지 않고 남북간의 이념과 체제의 이질화를 심화시키고 상호 불신감과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데에만 열을 올려왔던 북한 당국의 작태를 일별해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적대적이고 기만적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6.25 전쟁의 기도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보여 주었던 6.25 직전의 각종 “위장평화 공세”를 위시하여 7.4 남북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르기까지 회담을 진행시키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남침땅굴”을 준비했던 일련의 배신사건들, 지난 해에 보여준 것처럼 대북 쌀지원 문제와 같은 인도적 문제를 논의하면서도 마각이 드러난 “잠수함 침투사건”, 그런가 하면 무언가 이룰 것처럼 질질 끌어가는 회의를 진행시키다가 합의가 이루어지면 일방적으로 합의내용을 파기해 버리는 상투적 기만행위….
42만 여건에 달하는 휴전협정 위반사례는 물론이려니와 우리가 모두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는 KNA 여객기 납북사건, 청와대 습격사건, 울진/삼척 공비침투사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미얀마 아웅산사건, KAL 858기 폭파사건, 그외 수많은 간첩남파/ 무장공비 침투/ 어선 납북 등의 도발 및 테러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그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고답적 습성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셋째는 김정일을 정점으로한 북한 권력집단의 필사적인 好戰性과 無謀性이다. 어떻게 보면 줏대있는 외교정책이고 불가피한 생존전략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하고 너그럽게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명시적으로 “서울 불바다론”을 회자하면서 소위 전쟁 위협과 공갈을 전제로하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 말한 바의 각종 도발 및 테러행위의 자행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북한 권력집단의 전략적 속성이라 하겠다. 당을 명분으로 내세워 한정된 기득권집단만이 세습적으로 북한 사회를 지배하여 영화를 누려 왔으며, 그들에게는 자기본위의 세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때문에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화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도 민족도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주저하거나 못할 일이 없다. 6.25의 경험에서 우리가 이미 체험하였듯이 한국 국민은 그들에게 있어 초개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95년 5월 김정일이 전쟁준비를 강화하도록 지시하면서 “한국/미국과의 전쟁에서 북한 주민 80%가 죽어도 나머지 20%는 행복해질 수 있다. 강력한 무기를 보유한 소국은 대국을 격파할 수 있다”6)고 하였다는 내용을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필사적인 호전성과 민족 배반적 의도를 내재하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가 있다.
북한의 김정일은 대남무력적화통일을 위한 전쟁의지가 확고하고 ’92년 무렵에는 3일만에 부산까지 점령하여 남한을 장악하겠다는 전쟁계획을 시도하기도 하였다는 황장엽의 최근 진술7)을 접하면서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자문해 보고 올바른 대북관을 정립하는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Ⅲ. 우리의 대북전략의 추진 방향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빗댄 古事成語로 ‘宋襄之仁’이 있다. 仁을 베풀어 君子然하는 것이 어째서 조롱과 비웃음의 표본이란 말인가?
宋나라 襄公은 기원전 7세기 중국 춘추시대의 군주였다. 당시 송나라가 강대국인 楚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기원전 638년), 송나라 병사들은 이미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있었고, 초나라 병사들은 이제 막 강을 건너려는 순간이었다. 송나라의 한 참모가 초나라의 병사는 많고 송나라는 병력이 적어 불리한 상황이니 초나라 병사들이 도강하는 때를 이용하여 공격을 하자고 건의했다. 그러자 송나라 양공은 ‘안되는 말이다. 군자는 타인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틈을 이용하여 공격하지는 않는다’라고 하면서 공격을 못하게 했다. 어느덧 도강을 완료한 초나라 병사들이 포진하기 위해 한창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가 탄 송나라 촘모가 또다시 공격할 것을 건의했다. 양공이 또 말하기를 ‘역시 안되는 말이다. 군자는 적이 진용을 갖추지 않았을 때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다. 드디어 초나라군이 완전한 포진을 갖추자 그때서야 양공은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는 不問以可知라, 송나라군이 대패하였고 양공도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최근 사회일각에서 중구난방으로 북한의 기근문제를 놓고 정부방침은 도외시한 채 각자가 구세주인양 기고만장한 양태를 보이고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가 이래도 되는 것이며 이것이 통일에의 지름길인가를 자성해 보아야 한다. 더구나 ‘溫情論’에 치우친 ‘무조건적 대북 쌀지원”이라든가 “君子論” 치우친 “일방적인 대북 양보정책”의 추진이 결과적으로 “宋襄之仁의 愚”를 범하는 것이나 아닌가를 심사숙고해 보아야 한다.
모두가 마음을 비우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 남북통일과 관련하여 ‘통일비용’이라든가 북한의 ‘연착륙’이니 ‘경착륙’과 같은 말을 많이 하고 있다. 남북통일이 되어 북한을 정상화시키기까지는 엄청난 통일비용이 들텐데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북한이 연착륙하도록 주변에서 도와야 하고 그 지원의 몫은 우리의 부담이기 때문에 “무조건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논리인 것 같다. 일단 옳은 말인 듯 하다. 그러나 “무조건적 지원”에 대해서만은 ‘송양지인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쉽게 생각해 보자. 연착륙이란 이상적 모형의 전개를 위해 대북지원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통일에 부담을 갖고 있는 주변국들의 전략적 조작은 아닌지, 그리고 엄청난 통일비용의 문제도 북한이 연착륙하든지 아니면 경착륙하든지 간에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이 남한을 적대시하고 무력적화통일만을 고집하고 있는 김정일집단의 북한을 연착륙시키기 위해 지원하기보다는 북한이 조기에 스스로 붕괴한 연후 새롭게 북쪽 지역을 건설하는 것이 비용 대 효과 면에서 보다 바람직하지 않을까. 현재 북한이 100만 이상의 인민군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는 군사비를 평화적인 통일비용으로 전용만 하더라도 지금 상태의 연착륙지원방법보다도 통일비용이 적게 들 것임이 분명하다.
북한에 어떤 급변사태가 벌어져서 대혼란을 겪고 풍비박산이 되는 것보다는 그런대로 안정된 상태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발전을 통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을 때 남북합의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그 이상 좋은 대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전개되고 있는 북한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연착륙모형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우며, 급변사태로 인한 경착륙모형의 통일도 대비해야 한다(필자는 오히려 경착륙모형에 의한 통일과정을 겪게 될 확률이 훨씬 높지 않을까 판단한다).
만약 북한에 어떤 돌발사태가 벌어져 주변국이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수수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가 당연히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평화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극단적 상황에도 대비한 준비(힘/꾀)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주체가 되는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통일의 전략적환경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북한만이 우리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顯在的 敵이며 이러한 북한을 굴복시켜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 우리의 지상과제임을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현재의 북한실상을 볼 때 지금까지 북한을 손아귀에 넣고 왕조적 봉건사회를 꾸려온 김정일 권력집단이 주민들의 민심이탈로 체제붕괴를 맞게 될 한계점에 이른 것 같다. 손자병법에서 논하는 바 “不戰而 屈人之兵 善之善者也”(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우리는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호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호기를 잡는 것도 이용하는 것도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의 대북정책의 전략적 목표는 김정일 권력집단과 북한 주민간의 결속관계를 단절시키고 분리를 촉진시키는 데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의도적으로 연착륙이니 통일비용이니 하면서 부수적인 사항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당국이 그들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과 정보 유통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치, 한국의 존재를 분명히 인정하는 상호존중의 원칙 준수, 기존 남북합의사항에 대한 성의있는 이행 조치 등에 대한 조건들이 충족될 경우에 한해서만 대북협조 및 지원이 가능한 것으로 투명성 있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현시점에서 아무 조건없는 대북협조나 지원활동은 그만큼 宋襄之仁의 愚나 다를 바 없다. 북한은 어떠한 환경하에서도 고집스럽게 부동의 대남정책과 대남무력 적화통일정책을 초지일관 관철하려 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그들의 정책추구에 일방적인 宋襄之仁의 양보가 가능할까?
結言
북한 김정일 권력집단이 우리를 적으로 생각할까 아니면 친구나 동포로 생각할까를 이따금 자문해 본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어도 언제나 그 답은 부정적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일반적 상식이나 보편적인 사고로는 해석할 수 없는 집단이다. 그러한 집단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을 비롯하여 세계적 공산국가들이 모두 붕괴되어도 온 주민을 꽁꽁 묶어 억압해 가면서까지 세습적 독재권력체제를 50여 년간이나 지탱해 온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인류사회에서 공산체제가 자리할 시대는 이미 저물었음이 입증되었으며, 북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억지주장식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대응하여 상식이 통하는 합리적인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기한 바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손자병법의 모공편에서 “上下同欲者勝”(상하가 하고자 함을 한가지로 함께 하는 자가 이긴다)이라고 한 것처럼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통일정책을 뒷받침하고 정부는 과단성 있게 우리대로의 대북통일전략과 정책을 개발하고 차분히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이번의 북한 기근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북한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감상적인 “온정론/동포론”을 빙자하면서 자기들이 통일의 代父인양 여론을 호도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일부 반국가적 집단이 우리 사회에는 존재하는 듯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북한의 기존 권력집단을 보다 공고화하는 김정일체제 보신적 대북지원정책이 있어서는 안된다.
한반도 통일이라는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권력집단이 북한 주민들로부터 신망을 잃을 수밖에 없도록 북한 주민들의 의식구조를 현실적으로 개방시키는 방향으로 우리의 대북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최근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이 남북적십자회담(그것도 북경에서)을 자청했다가 선지원(말하자면 무조건 지원임)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물러선 일, 4자회담에 응해 올 것처럼 제스추어를 취하면서 선지원 보장을 요구하다가 여의치 않자 물러간 워싱턴 3자회담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들이 기본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전술적 차원의 조작으로 내보이는 접근의 미소에 또 다시 말려드는 전략적 과오를 저질러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적이 누구이며,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 권력집단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 것인가를 재삼 자문해 보아야 한다.
(7월호 마감시간에 쫓겨 8월호에 게재하였슴을 사과드립니다 - 軍事世界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