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세계 창간기념 축하메시지
상무정신이 있어야 나라가 산다
노희상
21세기의 개막을 3년 앞둔 지금 우리는 아직도 많은 혼란과 갈등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온 국민이 그토록 고대했던 문민정부가 수립된지 어언 4년이 지냈건만 나라 살림이나
개인 살림이나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물론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수치 면에서 본다면
전보다 나아진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임기 1년을 남겨 둔 신 정부의 4대 국정 지표가
제대로 달성되었는지 돌아보면 부끄러울 뿐이다.
정부가 주장했던 '깨끗한 정부'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부'로 국민들로부터 연일
지탄 받고 있는 것만 봐도 요원한 목표였음을 알 수 있다.'튼튼한 경제' 주장은 '무너지는
경제'로 바뀌어 국민의 삶을 어렵게 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뒤지게 하고 있다.
96년도 경제 상황을 지표로 보자. 외채 1천 20억불(순외채 3백억 불), 경상수지
적자 237억불, 외환 보유고는 겨우 309억불(IMF에서는 최소 380억불을 보유해야 하는
국가로 봄), 경제성장률 6.9%로 90년대 들어 최저치, 민간 저축률 26%, 그리고 지난
10년래 최고의 실업, 폭락하는 주가, 환율의 불안정 등 어느 것 하나 낙관적이지
못하다.
다음, '건강한 사회' 주장은 한 마디로 '막가는 사회'가 되어 가지 않는가 의심스럽다.
정치권과 재벌의 부패로 인하여 사회윤리의 붕괴와 국민 의식의 공황 상태 야기,
각종 참혹한 사건 사고의 빈발 등을 보면서 이것이 신한국의 참모습인지 국민들은
속이 탄다.
그리고 '통일된 조국'은 애당초부터 잘못 제시된 국정 지표였다. '통일 기반의
조성'이면 몰라도, 어찌 5년 안에 조국을 통일 시키겠다는 주장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려나 통일을 위한 정신적 물질적 사회적인 준비와 함께 안보 차원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국민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북한 2천 4백만 주민이 밥을 굶는 '전 주민의 거지화'가 된 이 마당에 너무나
공허한 국정 지표라는 비난에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이런 절박한 상황인데도 정치권은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른바 대권 경쟁이라는
선거에 목숨을 걸고 돌진 중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위 여러 나라들이 변화무쌍한 세계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그에 뒤지지 않으려고, 또는 남북한을 포함한 여러 주변국들의 미묘한 안보 상황을
활용해서 국익을 얻어 보려고 밤을 새우고 있는데, 우리는 권력 쟁패전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역사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이 나라는 남의 나라가 아니므로 수수방관하면서 남의 얘기하듯 해서는 안된다.
오늘의 역사는 어제의 연속이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난날 웅혼했던 민족 역사를
거의 잊고 산다.
고대사를 보면 한민족은 동북아를 석권했던 우수 민족으로서 황하 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단군이 이 나라를 세운 뒤부터 발해가 만주 땅에서 사라질 때까지 3천년
동안 우리 민족은 동북아의 주인이었다.
중국의 양자강에서부터 만주 흑룡강과 몽고 시베리아 바이칼, 그리고 일본 열도까지
우리는 종횡무진으로 달리면서 문명과 문화를 일으킨 민족이었다. 이 모든 것은 기록된
역사가 증명하며, 직접 현지를 찾아가 보면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시베리아와 중국 각 지방, 일본과 대마도 등 한민족의 고대 강역의 현지를
거의 다 찾아가 보고 이를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웅대한 민족의 저력은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나는 민족 저력의
원천이 상무 정신(尙武精神)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한다. 단군이래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 지니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주위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 자존 자강하는 힘을 키운 것은 이러한 '상무 정신' 이외에 다른
데서는 찾기가 힘들다.
상무 정신이란 무엇인가. 무(武)를 하나의 인간의 수양의 도(修養之道)로 알고
기리는 기풍이 곧 상무이며, 이를 생활화한 것이 우리 조상들의 인정(人情) 예의(禮儀)
염치(廉恥) 실질(實質) 숭상의 생활이었고 유사시에 그것은 호가 호국(護家護國)의
정신으로 바뀌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다.
또한 이러한 자세와 태도는 평소 생활에서 칼과 활을 다루는 의연함과 위태로움을
중용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발휘케 하여 우리 민족 공동체의 삶을 풍요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고로 상무정신은 한민족에게는 평등한 기사도 정신이요 시민정신이었고, 치자계층
스스로에게는 엄정한 자체 도덕률이었다.
고구려의 조의 선인(早衣仙人) 정신, 백제의 무사(武士:싸울 아비-일본에 건너가
사무라이로 바뀜) 도 정신, 신라의 화랑정신 등이 그것이었고, 고려 시대의 항몽(抗蒙)
자주정신, 조선의 북벌(北伐) 의병 정신, 한말과 일제시대의 독립 광복 정신으로
이어졌고, 해방 후에는 반공(反共) 구국 정신으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분단 50년 동안 공산주의를 극복하여 이 강토를 지켰고, 국력을 길러
이제는 북한을 끌어 안을 힘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생산적인 상무 정신의
발로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한가지 매우 아쉽고 걱정스러운 것은, 해방 후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약 1천만 명의 젊은이가 군문을 거쳐 예비군 민방위군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바람직한 상무 문화(尙武文化)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오도(誤導)된 군사 문화(軍事文化)의 폐해는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지만,
국민의 상무 문화는 어느 정권이든 마땅이 챙겨 나가야 할 소중한 정신 역량인데도
문민정부 들어서 군사문화의 적폐를 없앤다는 미명하에 국민의 의식과 생활에서 무인다운
풍모와 기풍을 사라지게 하고 말았다.
이것은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총이 무섭고 두렵다고 해서 사격이라는
종목을 운동경기에서 빼버린 일이나 같았다는 점이다. 고로 이제부터라도 국민의
바람직한 상무 문화를 잘못된 군사 문화와 혼동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나 서구 선진국 가깝게는 일본을 보라. 나라마다 각종 대중 매체에서 국민의
상무 정신을 고취하기 위하여 다종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잖은가.
그들은 지금 전시중이거나 휴전중인 것도 아닌데, 어째서 국민의 상무정신을 고취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당면한 국가 안보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상무
정신이다. 안보문제야 현역 군이나 국가 공권력이 담당하는 것이고, 적정한 시기에
대두되는 문제이니 만큼 평소에는 전 국민의 상무 정신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상무 정신은 이 시대 그리고 21세기 초, 민족 통일을 목전에 둔 우리 민족이 지녀야
할 소중한 정신 가치이자 생활 문화로 다시금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상무 정신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신장시키기 위해서 이제는 군사 및
안보에 관한 민간 차원의 활동이 활성화되도록 다양한 계층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는 현역이나 예비역 장병 모두의 동참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국민의 상무정신을 주 테마로 한 월간지 한 권쯤 교양서로 자리잡는 독서문화가 정착되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다.
이 중요한 일을 월간 '군사세계'와 군사세계 애독자들이 담당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