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권규학



왕원사는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아들녀석의 손을 잡고 S 대학의 입시
고사장을 찾았다. “입시한파"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97년 입시일은 찬바람이
많이 불었고 다른 날보다 더욱 춥기만 했다. S 대학 정문에는 마치 선거 유세장 처럼
입시를 위해 모여든 수험생들로 무척이나 술렁거렸고, 사람들의 입김으로 인해 시험장이
마치 뭉게구름 위에 떠있는 천상의 풍경을 연상케 했다.


대학입시 경험이 전혀 없었던 왕원사였지마, 그나마 대학진학의 이야기들을 자신의
주변에서 귀동냥해 들어 왔었기에 저마다 부모형제들의 손에 손을 잡은 모습들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았다.


무선전화기는 둘째치고라도 핸드폰을 몇대씩이나 동원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화상 전화기와 전자수첩, 그리고 노트북에 이르기까지 최신 정보통신장비의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주변풍경을 대하고는 자신이 성장했던 시대항황과 너무도 달라져 버린
현실에 한동안 망연자실했으나, 하나뿐인 아들이 자칫 기가 죽고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 왕원사는 아들의 손을 살며시 끌어당겨 부리나케 광란의 현장(?)을 벗어났다.


고사장 옆 담벼락을 조금 돌아 후미진 구석에는 근래 보기 드물게 쩔그렁쩔그렁
가위질을 하고 있는 엿장수와 허름한 두건을 깊게 눌러 쓴 군고구마 장수의 정겨운
모습이 입시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왕원사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를 두어개 사서 아들에게
건네었고, 차분하게 시험을 치룰 수 있도록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면서도 남들처럼
그흔한 정보통신의 편의를 제공해 주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한편, 아무런 불평불만없이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는 아들녀석의 뒷모습에 무척이나 대견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조반을 드는둥마는둥 떼운 왕원사는 출근을 하고자 낡은 출입문을 열어 젖혔다.


오늘도 역시 지난 5년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왕원사의 무거운 몸을 실어 날랐던
두발 자동차(자전거)를 밀고 걸으며, 집을 나서는 왕원사의 눈썹위로 새하얀 서리가
맺혀 걸렸다. 왠지 오늘따라 섣달의 초동 한풍이 더더욱 차갑게만 느껴졌다. 어제
내린 눈이 얼어 붙어 도로는 온통 빙판길이 되어 있었고,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 모두가
느림보 걸음을 하는가 싶더니 언덕아래 고갯길엔 아니나 다를까 승용차와 봉고트럭이
접촉되어 두 운전자들이 길거리에 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부대 정문을 통과하여 마악 사무실 의자에 앉으려 하는데 언제 왔는지 당번병
김상병이 불쑥 나타나 아침 인사를 했다.


“충성! 주임 원사님, 지금 출근 하셨습니까?"


“그래, 김상병 잘 쉬었어? 그리고 참, C P에 난로불은……? 그런데 김상병이
오늘따라 이렇게 일찍 왠일이지……?"


왕원사의 질문에는 아랑곳없이 또다시 김상병이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주임 원사님! 아드님은 이상없이 붙겠지요?"


“붙다니, 무슨……?"


“참, 주임원사님도…… 오늘이 입시 발표일인데 아드님 합격소식 말입니다."


“아 참……, 내가 잠깐 깜빡 했었구먼."


합격 발표일마저도 잊어버린 자신의 무관심을 스스로 질책하는 왕원사의 뇌리속으로
지난 입시일에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 밖으로 걸어 나오던 아들 녀석의 풀죽은 모습이
불현 듯 떠올랐다.


“제발 합격이 되어야 할 텐데……."


신세대 녀석들과는 달리 때묻지 않고 착하고 성실하게 공부만 하던 아들녀석이었기에,
자칫 대학에 실패하여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되는 마음에 왕원사는
아들의 합격소식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항상 그렇듯이
오늘도 식사를 마치자마자 지휘관님과 참모들은 저마다의 이야기꺼리를 찾아 환담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이야기꺼리는 단연 대학입시 관련 사항이 주요 화제거리로 등장했다.


환담 도중 지휘관님께서는 금년도 대학에 응시한 자제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하여 보고하도록 인사참모에게 지시했고, 즉석에서 지휘관님 자제와 부지휘관님,
그리고 주임원사를 포함한 몇몇 하사관 자제들이 있음이 토의되었다.


저녁 무렵, 퇴근하자마자 왕원사는 지휘관님 자제의 합격여부를 알아 보기 위해
텔레비젼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왜냐하면 왕원사는 자식의 합격 소식보다도
오해려 지휘관 자제의 합격여부가 더더욱 궁금해 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월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군대는 물론, 어떤 조직이든 조직안에서의 상·하와 하급자의 관계는
알다가도 모를 미묘한 관계임을 누구나 느끼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곳저곳 다이얼을 맞추고 있는데 아들녀석이 멋적은 표정으로 말을 붙여 왔다.


“…아버지, 저어……,"


말을 할듯할듯 하면서도 녀석은 뭔가 캥기는 것이 있는지 한동안 망설이기만 했다.


순간 왕원사는 아들이 입시에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녀석…., 떨어졌는가 보군. 시험에 실패했단 말은 못하고 저렇게 고민만 하다니…"


왕원사는 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표정을 너그럽게 하면서
몇마디 위로의 말을 던졌다.


“괜찮아,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하지 않던…, 내년에 다시한번 도전해
보려므나. 그리고……,"


왕원사가 지휘관님 자제를 거론하려는데 아들녀석이 중간에서 말을 끊으며 한마디
했다.


“아버지, 그게 아니라 저어……, 수석합격을 놓치고 차석으로 합격해서 대단히
죄송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순간, 당황하는 왕원사의 눈앞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흐릿한 미소를 짓는 아들녀석의
얼굴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돼 오자 하늘을 나를듯한 기쁨이 온몸을 감싸올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한민국에서도 내로라하는 S 대학 00 학과에……, 그것도 당당히 차석으로 합격한
아들녀석이 더없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얼핏 지휘관님과 부지휘관님 자제분들의
합격여부가 생각났다.


이곳저곳 수소문해 보았나. 그런데 결과는 불행히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왕원사는 서둘러 집안단속을 했다. 아들녀석은 물론, 아내와 자식들에게 절대
합격했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철ㄹ저히 입조심을 시켰다.


다음날, 출근하는 왕원사는 마치 구름속을 떨 다니는 신선이라도 된듯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내 아들이 S 대학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크게 고함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오늘따라 추운 겨울날씨가 전혀 춥지
않았고, 미끄러운 빙판길도 미끄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된 화제거리가 대학입시에
관한 사항들이었는데 오늘은 입시건은 고사하고 사소한 대화조차 없어 오히려 분위기가
썰렁하기만 했다. 입시대상자를 파악하여 보고토록 했던 지시사항도 잊어 버린 듯했고,
지시받은 인사참모 역시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한쪽 자리에 가만히 앉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왕원사 역시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집안단속을 시키고 출근했던 왕원사였지만, 자기의 아들이 S대학에, 그것도 차석으로
당당히 합격되었다는 소식이 공개석상에서 발표되기를 은근히 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하사관으로 30년간 군복무를 해 왔지만, 자식 농사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정도로 휼륭하게 키워 놓았음을 만방에 자랑하고 싶지도 했지만, 모시는
지휘관에게 충성(?)을 다하고자 왕원사는 그 자랑거리를 혼자만의 기쁨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퇴근시간이 되자, 당번병이 김상병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주임원사님, 부대장님 나가십니다."


서둘러 CP앞으로 달려갔다. 이제 막 시동을 걸어놓아 성난 엔진음을 내어뿜고
있는 1호차옆에 부동자세로 도열했다. 도열해 있는 왕원사를 본 지휘관님이 뭔가
한마디 할 듯하더니만 앞좌석에 올라탔고, 기다렸다는 듯이 1호차는 짙은 매연을
내뿜으면서 내리막길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충성!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멀어지는 짚차의 뒷꽁무니에서 나오는 매연들이 왕원사를 향해 달겨들었고, 때마침
불어오던 저녁바람에 묻어 왕원사의 야전잠바 깃을 추켜 세워주기도 했다.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책상서랍을 잠구는 왕원사를 향해 김상병이
위로하는 듯한 한마디를 했다.


“주임 원사님, 모두가 떨어졌다니까 불행중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힘 내세요."


“음. 그래. 김상병, 오늘도 불조심.…?"


왕원사는 알듯모를듯한 미소를 김상병에게 던져주고, 두발자전거에 몸을 싣고
퇴근길에 올랐다.


부대정문을 지나 관사에 이르는 오솔길 옆으로 얼마전에 자리잡은 ‘돼지집’이란
포장마차의 간판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밝은 빛을 띄우며 왕원사를 유혹했다.


마치 김유신 장군과 愛馬에 얽힌 사연처럼 왕원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돼지집을
향해 자전거 폐달을 밟고 있었고, 두손은 어느새 돼지집의 허름한 미닫이를 열어
젖히고 있었다. 두어순배 비우고 난 뒤 왕원사는 급기야 부처와도 같았던 왕원사마저도
오늘 만큼은 스스로의 감정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비틀거리던 왕원사의
눈앞으로 모진 삭풍의 숨결이 획하고 지나가는가 싶더니만, 언제였던가 포장마차옆으로
깊게 패인 하수도 구덩이가 그 큰입을 벌려 왕원사를 반겨 주었다.,


“올다꾸나, 그러면 그렇지…!"


왕원사는 기다리기도 한 듯, 하수도 구덩이 앞에 웅크리고 앉아 가슴속에 쌓인
온갖 답답한 것들을 쏟아내었다. 마음속에 품은 말들이, 이물질들에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 S대학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우리 아들 S대학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우리 아들 S대학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꼭 눌러 참고 또 참았던 아들의 대학 함격소식을 목소리를
점차 높여가며 단숨에 세차례나 토호했다. 문가 속이 후련해지는 듯했고, 또 지금껏
마셨던 술기운이 깡그리 사라지는 듯했다.


야전상의와 전투복의 무릎 부분에 묻은 흙들을 툭툭 털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리곤 자전거를 끌어 당겨 올라타려다가 아쉬운 마음에 다시한번 구덩이를 쳐다보았다.
구덩이는 여전히 그 큰입을 다물지 않은 채, 마치 왕원사는 다시 또 그 구덩이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리곤 두손을 입언저리에 모아쥐고 조금전보다 몇배더 큰 소리로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


“우리 아들 S대학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마주한 앞산에 부딪혀 되돌아 나오는 메아리 소리가 어득어득 땅거미 깔리는 왕원사관사
주변으로 울려퍼졌고, 관사의 낡은 창문밖으로 비추이는 화목스런 그림자는 왕원사
가정에 작으나마 행복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읽을 수 있게 했다. 어느 순간, 메아리
소리는 또다른 의미를 잉태하며 드높은 하늘 끝, 저 먼 창공으로 하염없이 울려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