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연구소로 가는 길 - 국방과학연구소 무내미
military
2007년 11월 29일 05:07
조회 21451
‘베스트디펜스(BEST DEFENSE)’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한 국방관련 연구소에서 ‘자이로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에피소드를 영화로 만든 내용이다. 자이로 시스템은 이동하는 물체안에 정지환경을 만들어서 흔들림없이 조종이나 사격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자이로 시스템의 개발로 함정이나 전차에서 좌표식별에 대한 오차없이 이동간 사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영화에서 자이로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구성된 개발팀의 팀장은 날씬한 미모의 여자박사였다. 그 여자를 짝사랑하는 연구소의 하찮은 직공이 그녀에게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되어 자이로시스템이 개발된다는 스토리의 이야기다. 애틋한 사랑이 강한 모티브가 되어 개발팀의 국외자(局外者)라고 할 수 있는 젊은이에게 팀이 안고 있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떠올랐고 그렇게 예기치 않은 요소들이 국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교훈과 함께 그런 요소들 속에서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베스트디펜스’라는 것이다.
안동만 소장의 ‘열린 연구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영화가 떠올랐다. 아이디어라고 하는 것은 꼭 책임을 맡고 있는 박사나 전문가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 하루 종일 연구하고 매일 매일 거기에 매달려 있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이야기하다가, 또 친구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불현듯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되기도 한다. 영화에서처럼 자기가 짝사랑하는 연인이 고민하는 문제라면 그에게도 마땅히 그 문제가 첫 번째 관심사항이고 연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강한 동기가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떠오르게도 한다.
젊은이는 그야말로 연구소에서 허접스러운 일을 하면서 여자들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특히 그 여자 박사를 짝사랑하여 그녀의 주변에서 맴돌며 그녀의 몸을 훔쳐보는 것을 즐기는 그런 하찮은 직공이었다. 영화에서 여자 박사도 그것을 눈치채고 젊은이가 자신의 몸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은근슬쩍 포즈를 취해주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젊은이는 결국 자기가 짝사랑하는 여인이 애써서 실험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팀이 자이로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단서를 그녀에게 제공한다.
열린 연구소의 실천은 일단 연구소의 가족들로부터 또 연구원들의 친구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남편이 고민하는 문제라면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연구원들이 마음을 열기만 하면 가족들로부터 또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외의 정보나 단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슬기로운 연구원이라면 충분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안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그가 찾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주변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연구소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개발품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국민들로부터 폭넓게 구한다면 어쩌면 어쩌면 그 성과가 폭발적일 수도 있다. 장기판에서 훈수하는 사람들이 수를 더 잘 읽어내듯이 문제의 해답은 오히려 국외자로부터
더 잘 나올 수도 있다. 첨단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는 의외로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천재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안 소장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열린 연구소’의 진정한 목표가 아닐까? 국방과학연구소라는 기관이 아니라 각각의 우리 연구원들이 국가안보의 고객인 국민들에게 마음을 열고 또 국방과학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군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어 그들이 정말로 바라고 있는 그런 스펙의 제품들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고객중심의 연구소’가 되는 길이 아닐까?
‘ADD와의 인연’이라는 주제로 글부탁을 받고 문득 어린시절 과학자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던 때가 생각났다. 1957년 소련에서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미국의 과학계는 큰 충격을 받게 되었고 당시 PSSC 물리 교육체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IPS 물리라는 새로운 교육개념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UNESCO의 도움으로 IPS 시범학교가 지정되어 필자도 IPS 물리교육을 받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실험기구와 시약들이 제공되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실험들을 다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비록 그 꿈을 이룩하지는 못했지만, 다행이 나의 아들이 독일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대신 나의 꿈을 이루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언젠가 나의 아들이 열린 연구소, 우리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자랑스럽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