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재에게 제안한다.
이름 : 김진욱 번호 : 138
게시일 : 2003/11/12 (수) AM 04:37:27 (수정 2003/11/12 (수) PM 01:05:22) 조회 : 286
어제 KBS에서 김종필 총재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도 있었고 또 나와 생각이 다른 점, 안타까운 점들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왜 비슷하고 또 왜 다를까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 그의 성장환경과 나의 성장환경이 비슷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살아온 시대환경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공통점이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우선 그도 충청도고 나도 충청도다. ‘경상도’와 ‘전라도’ 라는 특성이 있듯이 나도 인생을 살아보니 ‘충청도라는 특성이 있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그 차이나는 특성들을 모두 사랑한다) 그도 군출신이고 나도 군출신이다. 그는 준장으로 예편했고 나는 소령으로 예편했지만 군대생활을 한 기간이나 군대를 보고 느낀 것들의 종류나 양이나 사명감이나 비판의식은 대개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그도 개혁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졌고 그 시대에 그의 방법대로 실현을 하였고 나도 개혁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 시대에 나의 방법대로 실현을 하고 있다. 내가 만일 그 시대에 있었다면 나도 어쩌면 그의 방법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편집적인 소명의식과 필요한 만큼의 영웅의식 우월의식, 명예를 존중하고 죽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우주관과 역사관이 있는 사람, 권력이나 부의 소유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에 비해 약간의 저평가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에 있고, 감상적이고 약간 저돌적인 도전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들이 그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다.
그 외 여러 가지 보수적인 특성이라던가 가부장적인 성장환경이라던가 자유주의적인 관점이라던가 또 뭐 부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다는 점 등등 공통점들이 줄줄이 있지만 사실 내가 여기에 적고 싶은 것은 그와 내가 다른 점들이고 그것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내 제안을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우선 그에게는 소위 개발의지라는 것이 있고 나에게는 민주의지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분명 다른 출발이다. 나는 일단 권력의 민주성에 대하여 지나친 관심이 있지만 그에게는 권력의 유용성이 더 중요한 가치이다. 그가 권력의 유용성보다 권력의 민주성이나 정당성에 더 관심이 있다면 그는 아마 그 자리를 벌써 내주었을 것이다.
그는 엘리트주의자이고 나는 다원주의가 섞여 있다. 그가 만일 자기보다 더 능력이 있고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고 또 이 시대 우리 사회에 한사람이 훌륭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같이 조화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아마 그 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옹고집이라는 것이 있고 나는 탄력적이다. 질문자로 나선 이영자 교수가 제도를 바꾸고 현재 정치인들의 의식을 바꾸는데 대한 무용론(나도 그와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을 바꾸는 길밖에 없다고 했을 때 김종필 총재는 답변이 궁색했다. 그것은 그의 옹고집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그가 만일 뚝고무가 아니라 탄력적이었다면 ‘사람사는 사회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던가 ‘우리의 생태적 환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던가 하는 그런 설명을 했어야 했다.
사실 그가 그 자리에 현재 그대로 있는 것은 그가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경험을 통하여 인간사회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 우리의 생태적 환경이 갖고 있는 한계의 바탕위에서 논리를 구성하고 있고 나는 그런 점들이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가 만일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런 한계에 대한 극복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그는 아마 그 자리를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그는 참모나 부하의 충성으로부터 형성되는 안정을 희구하고 있고 나는 그런 부류의 참모나 부하들이 통상적으로 보이는 충성의 허상에 대하여 비판한다. 그와 그의 부하나 참모들에게는 그런 상황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전혀 인위적인 어떤 것이 아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적어도 나에게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그가 그의 부하나 참모들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충성에 안주하지 않고 그들의 충성의 실체가 무엇인가 또 그것이 조직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안다면 그는 아마 그 자리를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그는 욕심쟁이이고 나는 그 정도의 욕심쟁이는 아니다. 그가 자리를 내놓으면 그는 할 일이 없어진다. 그의 권력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흩어진다. 나 같으면 새로운 할 일을 찾을지 언정, 그 정도의 욕심은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많은 노인들이나 젊은이들이 할 일이 없어도 자신만은 할일이 있고 죽을 때까지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가 만일 그 정도의 욕심쟁이가 아니라면 그는 아마 그 자리를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그와 내가 다른 점들을 열거하다보니 그것도 끝이 없겠다. 한가지만 더 한다면 그는 천장에 걸린 등불이라 그에게 꼬여드는 사람들만 보이지만 나는 손전등이라 쉴새없이 더 나은 사람들이 없는가,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성이 있는 사람들이 없는가 찾아 다닌다. 그는 나보다 더 큰 등을 갖고 있다. 그가 만일 등불을 끄고 갓을 씌워 그 큰 손전등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 정치인들을 떠나서 정치나 권력의 주변이 아니라 들로 나가 지금이라도 인재를 찾는다면 정말로 가려져 있는 천재적인 정치 보배들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배와 같은 사람들은 원래가 스스로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애써 나설 필요를 느끼지 않고 그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지만 자신을 애써 설명하기 위하여 나서야만 되는 사람들에 의하여 대개 묻혀지고 가려져 있는 것이다.
김종필 총재는 나의 육사선배이다.
그는 나와 여러가지 생각이 비슷하고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감히 제안한다.
'선배님,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십시오.'
김종필 총재에게 제안한다.
military
2003년 11월 15일 00:00
조회 11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