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재미, 훈련의 재미를 알려주자.
military
2016년 06월 30일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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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방영하는 영재발굴단을 자주 보고 있다. 가끔 아내와 TV 프로그램 선택을 놓고 다투는데 이 프로그램도 아내가 싫어하고 나는 좋아해서 자주 다투는 프로그램이다. 아내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경쟁적으로 혹사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 프로그램에서 어른들의 손을 타지 않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까지 능력을 보일 수 있는지 관심거리다. 인간의 인위적인 교육제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하느님의 작품 ‘인간’이 어느 한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18일에 방송된 어린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 양의 경우는 바로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바로 그런 사례였다. 방송을 보면 고소현 양의 부모들이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여 고소현 양을 혹사시키는 모습은 전혀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부모들이 고소현 양에게 제발 바이올린 연습을 너무 오래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인간은 본래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마치 요즘 자동차 네비게이터로 인하여 길 찾는 능력이 퇴화하듯이 인간의 교육제도라는 것이 인간들이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퇴화시키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다. 고소현 양의 재능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교육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들이 학습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어낸 들, 어떻게 신이 인간에게 심어준 학습능력과 비교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학습제도는 신이 인간에게 심어준 ‘스스로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하나의 보조기능으로만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자주 인간이 만들어낸 교육제도가 마치 인간의 성숙을 위한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인 양 남용하여, 신이 심어준 인간의 학습능력을 퇴화시키고 말았다.
육군사관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다. 1학년 생도시절에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들면 상급생도가 ‘청소해!’하고 지시를 한다. 그러한 지시는 청소를 하지 않는 생도들에게 필요한 지시인 것이다. 요즘의 우리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자꾸 ‘이거 먹으라, 저거 먹으라’ 강요하면서 아이들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식욕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먹게 되어 있다. 먹는 것이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학습화되면 그 아이들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능력이 퇴화되고 마는 것이다. ‘청소하라는 지시’에 의해서만 청소하는 것이 학습화되면 스스로 청소하는 능력이 퇴화되고 마는 것이다. 대대장이 마치 내무반장이 되어 내무반 정돈을 지적한다면 소대장이나 중대장은 스스로 내무반을 정돈시키는 능력이 퇴화되어 오로지 지시에 의해서만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군대의 일이 오로지 지시나 명령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학습화되면 군의 모든 일들, 자잘한 모든 일들이 하나 하나 지시와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군 조직에서 한 구성원의 자의적인 일탈행위가 조직의 전체 목표를 해치지 않도록 엄격하게 군기가 유지되어야 하지만, 우발적인 상황이나 격리된 상황에서 소부대 지휘관이나 지휘자들이 탄력적으로 독단활용을 할 수 있도록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퇴화시켜서도 안 되는 일이다. 전시에 구성원의 자의적인 일탈행위가 전체의 목표를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또 간부들로 하여금 독단활용에 대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평시에 지시와 명령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이 넓혀질 수 있도록 상관들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부하들을 기다려줘야 한다. 그런 자발적인 전력(戰力), 시키지 않아도 전력발휘가 가능한 전력, 그것이 바로 진짜 전력이다.
고소현 양의 재능을 보면서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잠재능력은 인위적인 제도에 의해서 억지로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학습동기가 만들어지고, 스스로 학습의지가 만들어지고, 학습환경이 주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생겨난 학습은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에 거의 무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거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서, 자발적인 학습의지로 공부를 하였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었고, 놀고 싶은 만큼 놀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공부하라 강요하기 보다 공부의 재미를 알려줘야 한다. 우리 병사들에게 열심히 하라, 열심히 하라 강요하기 이전에 군대의 재미, 훈련의 재미를 알려줘야 한다. 처음부터 억지로 시키지만 않았다면 군대처럼, 훈련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