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950년 9.28 서울수복 직후의 눈물겨운 중화전과 1999년의 화사한 중화전>
1950.9.15일 인천상륙에 성공한 유엔군은 서울 탈환작전에 미해병 제1사단과
한국해병 제1연대를 선봉에 세워 9.18일 김포비행장을 탈환한 다음 9.21일
수색을 지나 서울의 서쪽을 감싸고 있는 안산·마포 일대를향해 진격하였다.
한편 미군 제7사단과 한국군 제17연대는 서울의 남쪽과 동쪽을 우회 포위하고,
그 일부는 시흥·안양 방면으로 진격하여 낙동강전선에 있는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한·미해병대는 북한군 제9사단. 제18사단, 25여단 등 근 2만여명 의 필사적
저항으로 고전하다가 미 함재기와 포병의 강력한 화력지원하에 돌격을 감행,
9.24일 오후 연희고지를 점령하였다.
한·미해병대는 9.25일 오후부터 시가전에 돌입, 밤이 깊어가면서 점차 서울 중심부
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때 덕수궁 부근으로의 공산군 집결을 탐지한 미포병대 중대장은
즉각 집중 포격 개시를 명령 하려다가 덕수궁이 한국민이 사랑하는 귀중한
문화재산 임을 생각하고 발포 명령을 스스로 억제했다고 증언한 기록도 있다.
9.26일을 고비로 해서 북한 공산군은 서울 중심부에서 퇴각하기 시작했고
9.27일오전 6시 10분 한국군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였고 9.28일
수도 서울은 90일 만에 완전 수복되었다.
한국해병대 웹에의하면 인천상륙작전과 수도서울 탈환작전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은
적 사살 1만 4천명,포로 7천명의 전과를 올린 반면, 아군의 피해는 미 해병대 제1사단
2,450명, 한국 해병대 4백여명, 미 육군 제7사단 32연대 350여 명의 전사상자를 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치열했던 서울탈환 전투에서 우리의 덕수궁이 살아 남은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잊혀진 승리-5 (우리의 덕수궁)
이 탁
2005년 05월 07일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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