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논단


북한붕괴 어떻게 볼 것인가?


고유환


   최근 북한이 처한 여러 위기들을 목격하면서 각국의 관측가들
사이에서 북한체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식량난
등의 경제위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북한위기에 대해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의 견해는 다소
차이가 있다.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의 조기붕괴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위기대처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편, 국무부는 북한의 장기
생존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조기 붕괴가 가져올 부정적 효과를 우려하면서 '연착륙(soft
Iandig),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을 방문한 고어부통령과 코언국방장관을 비롯한
미국 정부의 수뇌부들은 북한의 조기붕괴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미국정부는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상황,탈북자의 급증 등 혼란상을 보이고 있는 북한상황이
1989년 동유럽 붕괴 때와 유사하다고 보고 붕괴대비 경계태세에 들어가 있다. 북한
현정군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그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그 과정이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대북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6년 2월 22일 존 도이치
미중앙정보국 (CIA) 국장은 상원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정권의 붕괴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증언했으며,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도 1996년 3월 13일 미국 하원 국가안보세출소위원회
증언에서 북한의 붕괴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와 방법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증언을 하였다. 특히 주한미군은 북한체제 붕괴에 대한 7단계적 시나리오를 작성해
놓고 현재 3-4단계 붕괴가 시작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정부는 1996년 들어 북한의 체제붕괴 등 유사시에 대비한
(위기 대처 시나리오)의 재검토 작업에 은밀히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정부는
북한의 식량, 에너지 부족에 따른 경제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데다 북한 특권층의
연쇄망명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점에 비추어 ‘북한이 장기적인 체제붕괴과정에 들어섰다’는
판단 아래 이에 대비한 시나리오 검토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검토중인
대책 중에는 유사시 한국내 지국민의 일본수송, 주일 미군의 자위대 기지시설 사용
허용 등의 방안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정세가 심각한 불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급하게 체제붕괴 운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붕괴를 비롯한 돌발적인 변화에 대비한 ‘통합대비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장래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북한 사회주의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이 무수히 많고 변수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식량난을 비홋한 경제난, 군부의 정치개입과 후계체제의 불안정성,
북한지도부의 개혁. 개방정책의 추진 여부, 김정일의 건강, 주변국들의 대북정책,
한국의 대북전략 등의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북한의 장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갖가지 경우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장래는 급속히 붕괴하는 경우, 점진적으로
붕괴하는 경우, 위기 해소의 한 방법으로서의 대남도발, 통제체제를 통한 경제적
궁핍 속에서의 정치안정과 체제유지, ‘연착륙’을 통한 점진적 체제전환 등 대체로
다섯가지 시나리오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북한체제가 갖는 특수성 때문에 미국과 일본 그리고
다수의 분석가들이 전망하는 것처럼 북한체제 또는 정권의 붕괴가 단기적으로 빨리
진행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은 외부의 적(남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연방 붕괴의 한 요인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new thinking),
외교정책과 몰타 미.소 정상회담 등에 의해 외부의 적인 미국과 화해함으로써 더
이상 소연방의 존재의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라던 미국과는 관계개선을 추진하면서도 남한을 ‘주적’으로
부각시키며 체제결속을 위한 선전과 사상교양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잔존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와 독재국가인 이라크 역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주적’으로하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반도 주변 4강이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의 붕괴를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과거 북한의 강력한 지원 국가였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체제의 붕괴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일 뿐 아니라 북한의 붕괴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면서 대북지원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역시 북한체제의 붕괴보다는 ‘연착륙’에
비중을 두면서 대북 쌀지원 등의 경재지원과 관계개선 및 수교교섭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조기 붕괴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북한의 붕괴가 가져올
부정적 효과를 우려한 한반도 주변 4국들이 경제지원을 통한 영향력 확대 정책, 경쟁적인
‘북한 끌어안기’ 또는 ‘북한 살리기’ 정책 등이 북한의 붕괴를 막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에는 체제개혁 또는 붕괴를 이끌 조직화된 개혁세력과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련의 경우 기존의 당과 국가의 지배엘리트들이
개혁세력이었으며, 이들의 rogyr(?)을 뒷받침한 것이 시민사회(제2사회)였다. 그러나
북한 사회주의체제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입각한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라는 체제
운영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집단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체제붕괴를 이끌 수 있는 조직화된
시민사회(제2사회)가 성장하기 어려운 사회이다. 또한 김정일과 집권세력 내부 특히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하고 있는 군부와의 ‘운명공동체의식’ 때문에 단기적인 체제붕괴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넷째, 북한은 폐쇄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이
가능한 일부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 인민들이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을
느낄 비교의 척도가 없다는 점이다. 북한당국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30여년동안
인민의 숙원을 ‘기와집, 고기국, 흰쌀밥, 비단옷’ 등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 인민들의 기대 수준이 높지 않으며 항일유격대식 내핍생활이 체질화되어
있어 현재의 경제난이 심각하기는 해도 체제유지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들, 특히 식량난
등의 경제위기가 가까운 장레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가진
경제난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체제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김정일 중심의
북한지도부는 체제개혁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에 대한 지나친 우려 때문에 개혁과
개방을 주저하면서 ‘유훈통치’라는 명분을 내걸고 지난 3년간의 중요한 시기를
후계체제 강화에만 몰두하면서 허송세월 하였다. 개혁을 한다고 하여도 그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의 앞날은 대단히 어둡고, 황장엽이 망명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밝혔듯이 김정일정권의 장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장래는 앞서 밝힌 시나리오에 비추어 볼 때 단기적으로는
통제체제를 통한 경제적 궁핍 속에서의 정치안정과 체제유지를 하다가(네번째 시나리오)
장기적으로는 점진적으로 붕괴하거나 (두번째 시나리오), 위기 해소의 한 방법으로서
대남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세번째 시나리오).


   김정일 정권이 장기적인 생존을 유지하려면 다섯 번째 시나리오인
‘연착륙’을 통한 점진적 체제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체제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제개혁의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권력을 몰려받은
김정일은 국내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의 정당성과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주민들의
이념적 동요를 막아야 하고, 후계체제 공고화 및 경제난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탈냉전의 시대 조류에 적응하면서 고립탈피를 위해 대서방과의 관계개선을
서둘러야 하지만 정권유지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김정일이 가지고 있는 존재구속성
그리고 국내외적 여건 등이 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새로운 지도자는
전임 지도자와 지도이념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상례였다.
중국의 등소평은 ‘사상해방’과 ‘실사구시’를 그리고 고르바초프는 ‘신사고’와
뻬레스뜨로이까‘를 제시하고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굴레를 벗어나서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정권은 부자승계라는 ’태생적 한계(胎生的 限界), 때문에 기존의 사상체계와
노선을 획기적으로 바꿀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김정일은 북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수령과 당의 오류가 없는
투쟁의 결과에서 찾고 북한식 사회주의의 고수를 주장함으로써 북한에서의 사회주의의
재해석이나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소련과 중국에서 개혁을 추진하기
전에 사회주의 이념과 당의 역사 그리고 전임 지도자의 과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것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는 반세기 가깝게 지도자의 과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후계체제도 부자승계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평가는 쉽지 않은 것이며, 당의 역사 또한 대부분 부자체제의 역사이기
때문에 평가가 쉽지 않다. 따라서 북한은 체제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과 북한당국은 구소련과 동유럽에서의 혁명에 대해 불확실성에
빠진 ‘잘못된 혁명’으로 평가하고 이들 나라들의 혁명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부정적 교훈(negative lessons)’으로 삼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야 할 교훈은
명백하고 단호하지만, 나아갈 길은 불확실성뿐이다.


   따라서 김일성 사후 3년이 가까워 오는 현재까지 김정일이
지도하고 있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는 그들이 고수해왔던 기존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입각하여 ‘혁명적 대가정론’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의
공식승계를 뒤로 미루고 과도기적 위기관리체제인 ‘최고사령관체제’하에 항일유격대식
삶을 영위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단기적으로 그들이 처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항일 유격대식 생활방식’을 통한 내핍과 체제결속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경제난 해결에 정치생명을 걸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며, 재배체제에
있어서도 과거의 ‘수령과 후계자의 유일지배체제’에 의한 인치로부터 벗어나 법적.합리적
지배체제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깁일성이 항일투쟁과 반봉건.반제투쟁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고 주체와 자주노선에 입각한 이데올로기 중시의 정치논리에
입각하여 국내의 정책노선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대와는 아주 다른 국내외적 환경에 처해
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열어야 하는 김정일 시대는 국경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대와는 아주 다른 국내외적 환경에 처해 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열어야 하는 김정일시대는 국경 없는 경제전쟁시대 또는 글로벌리즘(globalism)의
시대이다.


   따라서 김정일시대에 있어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현실적 수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김정일정권은
김일성 사망 직전에 추진했던 서방과의 대타협노선을 견지하면서 제한적인 개방정책을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김정일의 서방과의 대타협노선은 핵문제해결 대미.일관계개선-서방
자본과 기술의 도입을 통한 경제특구의 활성화-경제난해결-김정일 정권의 정통성
확보와 체제안정의 순서를 밟고자 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의 남한 배제전략 때문에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김정일정권은 개방에 앞서 정치.사상진지, 경제적
진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이를 바탕으로 강경 군부세력과 일부개방 반대세력을
설득한 후 ‘모기장식’ 제한적 개방정책(contorolled- open-door policy)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의 부분적으로 편입하여 체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개방이 가져올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지나친 우려와 김정일정권의 경직성으로 인해
체제위기가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