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다가오는 화학전 공포


    대량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와
함께 화학무기협약 서명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어 국제적인 우려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여러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은 최근들어 상당한 수준의 화학무기
개발기술을 보유하고 이를 제3세계 국가들에 확산하여 왔다는 여러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어서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우려를 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접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여러 상황들을 신속히 인식하여 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와 도발 위험성에 대한 대비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화학무기의 특성


    화학무기는 인명을 살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제조된
유독화학 물질을 전쟁 무기화 한 것이다. 화학무기는 본래 전술적 위주의 무기였으나
신경작용제 등장에 의한 살상능력 증가와 투발수단의 정밀도 향상으로 이제는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운용되고 있다. 즉, 작고 명확한
점 표적으로부터 크고 불명확한 지역표적에 이르기까지 각종 표적에 대하여 광범위한
효과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물자와 시설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문화 및
교통 중심지와 차후 직전에 필요하여 파괴할 필요가 없는 지역의 인원, 동쪾식물
등 생명체만을 선택적으로 피해를 주어 무력화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 화학무기는
비정규전, 심리전, 테러 등에 사용되어 극도의 공포심 유발과 혼란을 야기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기후나 기상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방독면 등 방호장비 착용여부에
그 효과가 좌우되고 직접적인 피해 효과와 함께 보호장비 착용 강요에 의한 전투효율
감소, 사상자 후송, 치료,보호장비 소요 등으로 추가적인 군수지원 소요를 증가시키는
간접효과가 크다. 저렴한 비용과 보편적인 기술수준으로 쉽게 생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효과는 핵무기에 버금가는 전술, 전략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들면
동일 효과를 기준으로 재래식 무기 생산 비용을 100으로 한다면 핵무기는 50-60,
화학무기는 10-20정도이다.


    화학무기의 분류


    화학 작용제로는 치사제(신경제, 수포제, 혈액제, 질식제),
무능화제, 폭동진압제, 대식물제로 나뉘어지는데, 이중 화학무기로 분류되는 종류에는
치사 및 무능화 작용제이며 치사 작용제는 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었던 것
가운데 효과와 저장성이 높았던 것이 현재 주요 무기로 남아 있다. 여기에 제2차세계대전
종료시 독일이 보유했던 G계열 작용제(신경계 치사제) 및 VX, VR-55등이 가미되었고,
월남전 당시 베트콩 은거지 제거용으로 사용하였던 고엽제는 접촉성, 침투성이 강한
살초제이다. 화학무기중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작용제는 GB와 VX로서 지상 4.5m높이에서
폭발될 경우, 비방호된 인원이 반경 18m내에서는 단 한 번의 호흡만으로, 반경 46m내에서는
2∼3번의 호흡으로도 사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화학작용제는 저장중 작용제 자체의
불안정과 퇴화로 인하여 순도가 저하되기 때문에 일정기간이 경과된 화학탄은 폐기처분되며
대량 저장용기에 저장중인 작용제는 순환 저장되어져야 한다.


    화학무기의 역사적 배경


    초기에 이들 화학물질들은 무기로서의 구비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의 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진가를 인정 받지 못하였으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차 무기로서의 효과를 갖추게 되었다.


    ① BC428년: 스파르타군이 아테네군에게 유황 및 비소
등의 가연성 물질을 사용했던 펠로포니시안 전쟁.


    ② 1763년: 영국군이 인디안에게 천연두균을 사용했던
불인전쟁


    ③ 1915년: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염소가스를 사용하였으며 방호상태 미흡으로 치명적 피해를 가져온 현대 화학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④1936년: 이탈리아군이 에디오피아군에게 겨자 작용제
사용


    ⑤ 1963년∼67년: 소련이 예멘에 신경수포제 사용


    ⑥ 1975년∼81년: 소련이 라오스에 생화학제인 황우
사용


    ⑦ 1978년∼81년: 소련이 아프카니스탄 및 캄보디아
일대에 황우 및 신경작용제를 사용.


    ⑧ 1984년∼87년 : 이라크군이 이란군에게 수포작용제를
비롯한 혈액작용제 사용.


    ⑨ 1990년∼1991년(걸프전) : 이라크의 화학전 위협은
있었지만 결국 미실현으로 끝이 났다.


    화학무기 사용시 특징적 상황 분석


    그동안 화학무기 가 사용되었던 특징적인 점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방호 능력이 없는 상대에게 선제 사용되었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민족간의 분쟁이나 국내분쟁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셋째, 상대국이 대량 보복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나 화학방호 및 훈련상태가 양호할
경우 에는 사용되지 못하였다.


    대표적인 화학무기 미사용 전쟁은 제2차세계대전과 걸프전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소련, 독일, 영국이 서로 보유량이 비숫하였기 때문에
상호보복의 두려움으로 선제사용을 자제하였고 걸프전에서도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마지막 카드로 내걸고 대응하였으나 미국이 핵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로 강력한 응징의지를
표시하자 결국은 사용하지 못하였다. 한편 최근 고도 정밀 무기체계의 발전 및 정보획득능력의
발전으로 화학무기 생산 및 저장시설을 무력화함으로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화학무기
사용을 불가능하게 하고 첨단 재래식무기로 화학무기 사용에 버금가는 군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화학무기 사용의 필요성이 감소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와 상반되는 추세이다.


    북한의 화학무기 개발실태


    북한은 50년대 초반에는 화생무기 능력이 전무하였으나
60년대초 까지의 북한군 전력증강기간중 소련의 지원으로 화학분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화학무기 개발이 최초로 성공을 거둔 것은 1961년∼67년 사이로 이 기간동안
화학산업의 재건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비협조로 큰 진전을 보지는 못하였다.
그후 일본과 농화학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1964년∼66년까지 소규모의 화학물질 수입
및 제한된 기술도입으로 화학산업의 큰 발전을 이루었다. 70년대에 들어서 북한은
소련과 냉각기를 갖게되어 화학무기 개발에 큰 타격을 받았으나 중공의 협조로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 이때 북한군은 화학전 훈련을 필수 훈련 요소로 강조하여 실시하였지만
한국군과 미군의 공격가능성에 대비한 방어 위주의 훈련에 더 치중을 하였다. 또한
이 기간동안 북한군은 개인용 화학방어장비인 소련제 SAM-1 방독면과 자체 생산한
보호의를 전 북한군에게 완전 지급하였다.


    1985년 미제7군단 한·미연합위원회는 당시 새롭게 부각되고
있던 북한의 화학전 위협분석을 위한 회의를 개최한 결과 북한은 현 전술 개념이
화학무기를 선제 사용하는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됐고 이를 위해 상당량의 화학무기를
비축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합의한 바 있다. 또한 1989년 5월 북한 노동당은 국가주요
기간산업으로 화학산업을 중점 육성할 것을 의결하고,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대약진의 최대 과업으로 화학산업분야의 혁신을 강조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북한의
생화학 무기실태는 상당한 수준급이라는 것이 여러 채널을 통해 드러났고 화학전
훈련수준 역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최근 중거리 미사일 노동1호 경량화에
성공했다는 것 역시 우리에게는 위협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노동1호는 1천300Km까지
날아갈 수가 있어 여기에 생화학 무기를 탑재할 시 한반도 전역은 화학물질의 피해로부터
안전할 수가 없다.


    우리가 북한의 화학무기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게
된 또 다른 하나는 귀순자 황장엽씨의 증언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북한은 핵무기,
화학무기, 로켓무기를 동원해 남조선을 초토화할 수 있다」라고 했다. 지난 5월 6일
유종하 외무장관은 「북한은 연간 약 5000톤의 화학무기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 약 5000톤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뿐만 아니라 지난 97년 3월 4일 독극물법 위반 혐의로 강제수사당한 「소와무역」사에
의해서 95년 12월부터 96년 7월까지 4차례에 걸쳐 3천만엔(약 2억1천만원)상당의
독극물을 고베항에서 북한으로 수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와무역은 북한에 페놀
약 4톤과 수은 약 40톤을 수출했는데 페놀은 주로 소독 살균제나 합성수지 제조용으로
사용되는데 월남전쟁 당시 사용되던 고엽제에 포함돼 있는 맹독물질이나 화학의 재료로
쓸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수은은 적외선감지기의 재료로 전용할 수도 있다.


    CWC (Chemical Weapons Convention) 화학 무기 금지
협약 목적


    소련이 1980년 1월 아파가니스탄에 신경 작용제를 사용하고
라오스 및 캄보디아 등지에 생화학 작용제인 "황우"를 사용한 것은 1925년
채택된 제네바 의정서가 아무런 구속력이 없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의
전쟁에서는 화학무기가 필연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CWC는1925년
제네바 의정서를 전면 보완하여 화학분야의 발전은 오로지 인류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되어야만 하고, 전쟁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화학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 보유. 이전 및 사용의 완전한 금지와 그 폐기를 달성하는 협약을 마련하게
되었다.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거론되기 시작하여 협정안이 마무리된
93년 1월부터 각국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지난 4월 29일 발효된 CWC에 현재 1백
64개국이 서명하고 그중 87국이 비준했다. 그러나 러시아, 북한, 리비아, 이라크는
비준을 연기하거나 서명조차 기피했다. 이미 발효된 CWC는 세계 군축사에 획기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제 사찰단원으로 이인식 소령(국방부
군비통제관실)이 선정된 바 있으며 그는 앞으로 '우리 국방 화학실험실이 OPCW의
'공인화학 분석실험실'로 선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의 대응방안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북한은 핵무기에 의한 1차 타격후 미국이나 세계 각국이
반응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료할 수 있도록 화생방 무기에 의한 2,3차 타격을 단행하는
대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 및 화생무기 보유전략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
한다 . 현재 우리 정부는 CWC를 지지하고 가입했다. 물론 국제적 추세는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체계 유지가 필요했고 국제 비확산 체제의 외교.안보적 측면은 물론
화학산업 발전 등 경제적 손익까지 폭넓게 고려한 결정이었다. 우리나라는 협약의
86번째 당사국이 되었으며 협약의 세부이행 사항을 준비중에 있고 가장 먼저 할 일은
5월 29일까지 OPCW에 우리 현황을 신고하고 7월말경으로 예상되는 국제사찰단의 최초사찰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협약의 당사국으로서 화학선진국의 첨단기술을
이전받아서 우리 군의 화학 방호태세를 더욱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