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군을 사랑합니다


- 광주 민주화운동 사형수 김종배 의원 -


   박정아


   광주 항쟁당시 시민학생 투쟁 위원회 총 위원장이었던 김종배
의원, 사형수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역사의 아이러니-광주는 17년이 지난 지금도
‘난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한 사건을 두고 성격만 달리 했을 뿐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전직 두 대통령의 재판에서도 잘못함이 없다는 피고들을 놓고,
부처님 오신날 혹은 광복절 특사 운운 등 용서의 시기를 찾는 이때 5.18 그날의 주인공
심경을 듣는 특별 인터뷰를 요청 했다.


   Q: ‘5.18광주 민중 항쟁 시민학생 투쟁 위원회 총 위원장,
당시의 의원님 직함을 들으면 모 방송국의 주말극 임꺽정의 주인공 모습이 연상되는데
지금 뵙는 의원님의 모습은 미(美)소년 같습니다. 광주 폭동이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다보니 얼굴도 바뀌었나 보죠? (웃음)


   A: 박기자님은 농담의 말씀이셨겠지만 쇄뇌 교육이 그 처럼
무서운 겁니다.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북의 우리 동포들 얼굴도 빨간 늑대 얼굴로
그리던 지난 날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당시의 광주시민들은 순한 양이었는데, 공격했던
늑대가 양떼에게 늑대의 탈을 씌워놓고, 폭도 짐승으로 그려 놓았으니 이제와서 광주시민들은
양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거짓을 금방 뒤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Q: 제가 인터뷰를 하러 찾아뵈었는데, 의원님 인상이 미남이라
칭찬을 한번 드리려다 마치 제가 인터뷰 당하는것 같습니다. 김 의원님이 국회의원이
되신 다음에 모신문의 인터뷰를 보았더니 5.18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하도록 노력하시겠다고
했는데 잘 되가는것 같습니까?


   A: 지난 11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건 총리 주재로 내무,
국방, 총무처, 정무1장관, 법제처장, 보훈처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 장관회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18 기념일 지정문제는,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서 약속했던
사항이 아니고, 95년 5.18특별법 제정 당시 3당 합의 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총리실
관계자에 따르면 5.18관련 사건이 재판에 계류중이므로 행정부의 의견이 종료된 후에
재론키로 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광주 민주화 유족들이 들으면 마치 살인한 가해자가
동의가 없으니 제사 지내는것도 그 후에 해야 된다고 하는 말과 같은 겁니다.


   Q: 5.18 재판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원님께서도 16차,
19차 재판을 방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의 증인으로서 방청 소감은?


   A: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지성과 양심의 대변자 마르크 블로흐
교수는 ‘역사란 무엇을 쓰는가’라는 딸의 질문에 ‘역사는 훗날의 올바른 평가를
위하여 기록한다’라고 대답 하였답니다. 그는 그후 나치의 비밀 경찰에 체포되어
43년 황량한 벌판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위한 그의 변명대로 나치
전범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96년 6월 24일 제 16차 공판을 지켜보기위해
서초동 417호 법정에 들르셨을 때 80년 5월 짐승처럼 포승줄에 꽁꽁묶여 짐승처럼
군사법정에 끌려 나왔던 제 모습과 같은 법정에 사형수 입장인 두 대통령 모습은
너무 다른 데에 놀랐습니다. 자유로운 활갯짓으로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에서 부터,
매스콤의 카메라를 의식한 손짓, 학살의 주범들끼리 만남의 등뚜드림, 조금도 뉘우침없는
기색으로 당당한 그들의 모습은 공판정을 지켜보려는 저뿐 아니라 소복차림의 유족들까지
분노의 흐느낌으로 울분에 떨게 했습니다. 80년 5월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보다못해
항쟁에 참여 했던 나는 항쟁이 군화발에 짓밟힌 뒤 군사법정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
‘내란수괴’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살아있는 자이고
민주주의 십자가를 지고 죽어간 영령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해 5월 27일
새벽 피의 항쟁이 끝날 때까지 광주는 사상자 2천여명, 연행 2천5백여명, 기소 1천1백
30여명, 유죄 389명 이라는 우리나라 역사에도 전후후무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80년
당시 내란수괴로 재판 받던 내가 96년 똑같은 내란죄 재판정에서 방청객이란 입장이
바뀐 채로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라 역사의 사필귀정 이었습니다. 제가 방청했던
16차 공판이나 19차 공판 모두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광주에 함께 했던 영령들이
그때 동지였던 제가 방청한다니 원혼의 넋을 전해주라고 내린 눈물 같았습니다.


   Q: 그래도 현 대통령은 문민정부 대통령이기에 역사바로 세우기
차원의 역사의 단죄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보는데?


   A: 문민정부 초창기에는 ‘역사에 맡기자’고 했다가 3당 합당의
의리를 생각해선지 ‘성공한 쿠테타에는 공소권이 없다’고 했다가 국민의 여론에
밀려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공판은 끌어가지만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는
뻔뻔스런 공판을 지켜보는 심정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당사자인 저 말고도 많은 국민들은
어차피 몇번씩 말을 바꾸는 현 정부에 진상규명을 바라는 자체가 무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Q: 군사세계지가 김의원님 인터뷰기사를 싣게될 싯점은 다음달인
5월이 되겠지만, 지금 인터뷰 싯점에서도 오는 4월 17일 대법원 확정 판결이 예상되고
있으니 벌써 화합차원의 사면론이 부처님 오신날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또 8.15특사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소감과 5월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은?


   A: 앞서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재판에서 무슨 사면 입니까?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히 참회해야 용서가 있는 것이지
빌지않는 용서에 관용이 화합입니까. 한마디로 5.18 재판에 관해서는 길게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는 ① 내란 실행자 79명 서훈박탈.
② 5.18 국가 기념일 제정. ③ 광주 망월동 5월 묘역 국립묘지 승격. ④ 관련자 국가
유공자 예우. ⑤ 5월 정신 계승을 위한 헌법전문 및 교과서 수록등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Q: 5.18 재판에 대한 질문만으로도 주먹을 떠시는데 취재하는
저 역시 광주 5.18하면 불려지는 한분의 피해자가 가까운 인척으로 그 고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에 괴로운 질문을 드립니다. 방청중 공판진행에서 가장 이해 하시기
힘든 부분 한가지만 말씀 하신다면?


   A: 변호인과 피고인간의 짜맞추기식 억지 논리와 궤변 전부를
울분을 삭이고 듣더라도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그날 제가 방청할 때 공판
핵심이 발포 명령의 책임소재와 지휘권 이원화문제였습니다. 당시 피고인들은 발포
명령은 일체 없었고 병사들의 자의적 행동에 의한 자위권 발동이라고 강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송하동 어린이 학살과 만삭 임산부 등에게 총질 가한것도 자위권 발동이란
말입니까. 대통령까지 지낸 분들이 이처럼 뻔뻔한 거짓을 말한다는게 심한 자괴감을
느낍니다. 검찰은 내란 혐의자들의 비아냥과 우롱에 속수무책일게 아니라 실체적
사실규명을 위해서 현장 지휘관들을 반드시 구속 기소했어야 그들의 입을 통해서라도
어느 정도 역사의 진실이 규명됐을 것입니다.


   Q: 사형수에서 국회의원으로, 아픈기억은 더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5.18 시민군 대장 출신이 농림해양수산 위원회 소속이 경력과 상임위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농담도 있는데 초선 첫해 국감에서만도 정책보고서를 5권이나 발간해 보고서
국감을 주도 했다는 보도평이 있던데 입법활동 자랑을 좀?


   A: 입법부 등정 첫해 국감에서 시화호 대책에 대해선 정부
당국도 뾰쪽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집요한 추궁만 아니라 정책 대안을 제시한
‘그린포트 프로젝트’를 제시해 당시 해양부 신상우 장관으로 부터도 면피성 답변이
아닌 적극 수용하겠다는 긍정적 답변 뿐아니라, 개인적으로 고맙다는 인사까지를
받았습니다. ‘서해안 해수, 갯벌, 페류, 담수호 실태 조사 보고서등 정책 보고서를
국감을 통해 발간하다보니 보고서 국감이란 신조어도 등장되었나 봅니다. 그러나
정책자료와 보좌진이 충분한 여당의원 입장이 아닌 열악한 조건의 야당으로서는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는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린포트 프로젝트 제안 보고서를
만들 때도 저의 보좌진외에 한국 그린 크로스 신부식 박사 등 전문가를 4명이나 동원했고
제종길 해양 전문가등의 자문을 받아 현장을 조사하고 시료를 채취하며 분석 자료을
받아 현장을 조사하고 시료를 채취하며 분석 자료를 검사하여 꼬박 2개월을 발로
뛰어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제 국회의원도 의정 단상에서 무조건 목소리만 높여
큰소리, 호통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치밀한 조사와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입원의원이 되어야겠지요?.


   Q: 5.18 민주항쟁의 사형수로, 군부독재시절 반정부 투사로
인식되었던 이미지를 벗고 정책을 지향하는 정치인, 항상 연구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나신 김의원님의 의정활동에 성원을 보냅니다.


   A: 감사합니다. 국방위원은 아니지만, 우리 군의 뼈져린 아픈
기억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저 역시 국방의 의무를 다했던 사람으로서 사랑받는 국민의
군대, 통일을 담보하고 자유를 지키는 보루로서 우리 군의 발전을 빕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우리 군을 사랑합니다. 군사세계 여러분도 화이팅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