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문화경쟁에서 이기자
권규학
문민정부 출범 4개 성상, 지난 4년여 세월 동안 우리는 문민정부의 강력한 개혁의지에
발맞추어 사회 각 분야에서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개혁과 변혁의 험로를 걸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민정부 최대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의 취약점을 보란 듯이
비켜가면서 자신들의 배를 불려온 금융관계자들의 범법행위와 고위직 공무원들의
부정비리/뇌물수수 사건은 물론, 미성년자들의 출산과 엽기적인 살인사건 발생, 그리고
최근의 한보 그룹 부도사건에 따른 각종 부조리 관행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적인
탈 윤리화 현상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면서 문민정부 집권후반기를 어둡게 만들고있다.
이렇듯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흔들리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체험하면서 우리와는
대조적인 상승팽창을 보이는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사회의 모습을 경이와 원망,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때는 우리도 세계가 부러워 하고, 이웃나라 일본이 두려워 할 만큼 일약도약할
때도 있었으나 그 도약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준 자유민주체제와 선조들의 지혜를
슬기롭게 활용하지 못하고 성공의 비결로 주어진 수단과 방법마저 우리들 스스로의
무지(無知)로 인해 무산시켜 버렸다.
또한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의 잿더미속에서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앞만보고 치달아 왔기 때문에 매사 일을 처리할 때 무조건 “빨리 빨리” 몰아부쳐
건성적으로 적당히 처리하는 적당주의적 습성이 알게 모르게 몸에 베었다. 이런 정확치
못한 습성들이 멀쩡한 다리를 갑자기 무너져 내리게 했고, 철근과 콘크리트로 배합된
백화점 건물을 순식간에 땅밑으로 가라앉게 하는가 하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각종
가스관들이 지하에 수도없이 매몰되어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말았다.
이런 사실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질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오늘의 부강국가를
건설한 일본과 비교되는 사안으로써 시사하는 바 크다. 매사 성급하고 “정확하지
못한 습성”이 몸에 베인 우리들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매사
철저하게 몰입하며, 끝마무리를 철저하게 하는 “정확성”과 친절성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체면과 명분”에 집착하는 우리와는 달리 일본인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得과 失을 냉철하게 비교한 다음 명분과 실리를 추구하되, 명분보다는 실리를 더욱
중시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결코 불평불만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인내형」으로써 말없이 참으면서 자신의 실리를 챙기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감정과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조직의 경우에는 사람이 바뀌어도 신임자가 전임자의
뜻을 수용하여 「축적과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 반면, 우리는 성급한 나머지 오직
자신의 임기내에 성과를 이루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사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고,
또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 조차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불평이나 저항의 식을 말로 모두 소진시켜 버림으로써 정작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때에는 여력이 고갈되어 꼭 필요할 때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일종의
「한풀이 형」이라 하겠다.
이러한 비교는 2002년 월드컵 유치전과 준비실무위에서의 양국간 입장차이에서
보다 확연하게 드러난다. FIFA가 共同開催를 선언한 그 순간, 우리 사회 분위기는
마치 처음부터 共同開催를 추진한 듯한 …, 아니, 共同開催가 우리가 바랐던 월드컵
유치의 최상 시나리오이기라도 한 듯, 관계부처와 언론이 한 목소리되어 축하 분위기에
도취되어 버렸고, 방송매체들은 이곳저곳 할애하여 우리의 승리를 대서특필(大書特筆)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일본이 갑자기 공동개최로 돌아선 것은 그들의 상황이 불리했기 때문임을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방송매체는 일본대표가 패색이 짙다고
말한 것을 집중보도하면서 한국의 승리를 지나치게 부각시켰고, 우리와 입장이나
생각을 달리하던 아벨란제 FIFA회장을 포함한 특정 집행위원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가
하면, 정몽준 FIFA 부회장의 수기를 신문사 마다 특종으로 연재하는등, 어차피 한배를
타고 2002 월드컵 행사를 치뤄야 할 일본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거망동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확실한 근거도 없는 일들을 마치 눈앞에서 본 것 같이 뻥튀겨서 추측보도하기가
일쑤였고, 남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우리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판단하여 아전인수격인
誤報를 거침없이 흘려 보내기도 했다. 또한 최근 FIFA와 韓·日 양국이 월드컵 관련
실무회의에서 극명한 입장차이를 보였다.
즉 대회명칭을 「2002. Korea-Japan World Cup」이란 우리측의 주장을 관철시켜
알파벳 순서대로 정하려던 FIFA와 일본측의 고집을 꺾었으며, 개막식과 준결승 경기의
일부를 유치하는 등 명분을 챙기는데는 성공한 듯 했으나 결승전과 패막식을 일본에
양보함으로써 결승전에 배정된 경제적 이득과 폐막식에 함축된 세계에서의 국가 위상
확립차원의 실리면에서는 일본에게 다소 뒤지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월드컵 한일 공동유치 발표때와 같이 “우리가
일본보다 더많은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는 섣부른 자화자찬식 평가를 아무런 꺼리낌없이
1면 톱기사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우리는 지난 5, 6공화국 시절부터 시작된 스포츠 외교에 힘입어 ’88년 하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여 국력의 신장을 도모했고, 대전 엑스포를 통해 제2의 발전을 이룬데 이어
세계인의 축구 대제전인 월드컵행사까지…, 비록 共同開催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로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분명히 기분좋은 일이며, 세계무대에서 스포츠
강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월드컵 유치 결정 이후의 우리 방송매체를 접하고 있노라면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자 우리의 방송매체들이 흥분한 나머지 성숙되지 못한 자세를
보인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에 가입, 선진국
대열에 進入하는 현 시점에서 韓·日 월드컵 共同開催는 우리의 성숙도를 점검해
보는 매우 중요한 기회로써 보다 침착, 냉정, 의연한 표정으로 세계인들에게 다가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럽지 못한 속물근성을 보여
준 것은 심히 우려된다.
“일본은 없다”의 저자 전여옥씨는 주체성없는 서구문화의 유입, 지나친 성 개방,
권위적 성 차별, 남성 우월 및 학벌 지상주의등, 일본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다각도에서
제기하고 냉철한 주의력으로 비판한 바, 일본은 스스로 선진국임을 자신하고 있지만,
오히려 경제대국이라는 것이 강점아닌 강점, 약점아닌 약점이 되고 있으며, 돈에
집착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검소한 척 생활하려는 일면이 있다는 지적들은 비록
개인적 경험이나 사견을 서술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지난친 서구문화 유입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일본문화를 신문이나 잡지는 물론, TV를 포함한 방송매체를 통해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문란하리만치 일본문화의 홍수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이런 정보에 뒤쳐지기라도 하면 아예 도태되어 버리기라도 한 듯,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그 뒤를 쫓아가고 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신세대들은 그런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대다수 기성세대들 역시 그 문화(?)속에 빠져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본의
단점만을 욕하고 서로들 잘난 체 하며, 富를 우선시하는 우리 국민들의 그릇된 가치기준보다는
비록 이기적이긴 하나 실리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가치기준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 대망의 21세기를 시작하는 분수령에서 韓·日 양국은 共同開催라고 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부여 받았다. 이런 때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국제여론으로 부터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면 꼭 필요한 시기에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그 어떤 명함도 내밀기가 어렵게 된다.
양국간의 궁극적인 경쟁은 지금부터다. 韓·日間 월드컵 유치와 개최, 그리고
문화적 경쟁은 현단계에서 모두 끝난 것이 아니라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경쟁은 조화와 타협의 측면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질적 문화수준의 경쟁이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경쟁은 조화와 타협의 측면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질적 문화수준의
경쟁이 될 것이다. 2002년에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韓國과 日本의 두 나라를 빈번하게
방문할 것이며, 그때 그들은 양국의 문화수준을 비교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과 문화전쟁을 치루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문화경쟁은 반드시
뺏고 빼앗기는 것이 아닌 서로가 주고 받는 건전한 차원일 것인 바, 거기에는 서로
양보와 타협으로 調和의 꽃을 피우는 일도 비교우위와 함께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韓日間에는 과거 역사의 올바른 정립과 침략행위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 사과문제, 그리고 정신대 보상 및 최근 해양자원 확보와 관련된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와 독도영유권 주장에 따른 영토분쟁에 이르기 까지, 풀어야 할 외교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독도문제와 망언파문에 한·일 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였다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소식에 잠시 주춤하더니만 최근들어 다시 또 불거져 나온 책임있는
일본 당직자들이 잇따른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참배 후유증으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치욕스런 지난 역사에 얽매여 일본을 욕하고 깎아
내리는데만 열중하고 있을 것인가...?
그러한 행동은 분명히 잘못이다. 아니, 잘못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국익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역사속에 또렷한 족적을 남긴 일본의 악행을
깨끗이 잊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비방/비난하는 소모성 한풀이에 더이상
우리의 국론을 소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성급함과 경박한 허세기질, 그리고 과격한 감정 폭발성, 인내력
부족과 단결하지 못하는 분열성등의 취약성을 사전에 간파하고, 우리가 그 어떤 요구를
소리높여 외쳐도 적당히 듣고 적당한 선에서 체면치레용의 대접이나 명분을 주고
실리는 모조리 챙겨가는 약삭빠른 전술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우리도 이젠 무조건 욕만하고 멀리했던 일본에 대한 잘못된 구습에서 탈피하고
그들의 앞선 문화와 발전된 문물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 선진조국 발전의 기초에
접목해야만 한다.
“못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으로 나오는 일본, 그런 상투적인 수단에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반응하는 우리,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다.
당연히 우리 땅인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에 왜
우리가 흥분하며 과민반응을 보여야만 하는가? 우리는 좀더 여유를 갖고 냉철하게
판단하여 일본이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찾아내어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항상 뭔가를 노리는 듯한 일본인들의 모습,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있는 우리,
이제는 그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모습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그 시기에 있어 늦은 감이 조금은 없잖아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우리 한국인은
한국 본연의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지금까지 일본인들이 서구인들에게 보이고 있는 자세는 겸손이었다. 그들의 겸손은
패배자의 굴복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슬기로운 전술인 것이다.
지면서 이기는 「반어적인 철학」이항상 몸에 배어 습성화되어 있는 오늘의 일본인들을
기억한다면, 우리 역시 더 이상의 구태와 민족감정에 얽매여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줄것은 주고 찾을 것은 확실히 챙길 수 있는 실리적인
행동”을 취해가야 할 것인 바, 그것이 곧 복잡한 국제정세에서 유연한 반응을 보이는
일본인들에게서 거칠고 성급한 우리가 배워야 할 절제의 美學이며, 우리가 일본과의
문화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