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패권주의 반격한 황장엽 비서
최영택
북한은 패권주의 공산지배체제이다. 패권주의는 사회주의 대국에게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소국이라도 군사력을 앞세우거나 과학적 사회주의 원리 혹은 국제법의 원칙을
무시하는 입장에서 부당한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것이 그 태도이다.
지난 2월 13일 주중 한국영사관으로 망명(亡命)을 요청한 황장엽 비서는 바로
북한 패권주의 체제의 중심인물의 한 사람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정립하고 체계화한 사람이다.
그의 직책만 하더라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이다.
그동안 탈북자 중에는 최근 강명도(전 총리 강성산의 사위)를 비롯한 조명철(김일성
대학교수)등 많은 사람들이 망명하였지만 이번 황장엽 비서의 망명처럼 충격적이고
세계가 주목하는 관심대상은 없었다. 그것은 황장엽이 북한 정치사상인 주체사상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북한체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이론 그리고 남한 혁명관과 조국통일론이 모두
이 주체사상에 기초해 있으므로 그의 북한체제로부터의 망명탈출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몇가지 면에서 황장엽의 망명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주체사상체계의 정립과 폐기
황장엽 비서는 북한체제의 정신적 이념적 기초인 주체사상체계를 이론적 방법론적으로
완성시킴으로써 그 비중을 인정받아 온 핵심요인이다.
1950년말 중·소 분쟁의 틈속에서 자주노선을 모색하면서 반미(反美) 반제(反帝)
투쟁과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려는 북한은 먼저 정치이념의 정립을 필요로 하였는데
이것이 ‘주체사상’ 혹은 ‘유일사상체계’의 확립이다.
이 주체사상은 북한의 국가적 지도이념이고 생활의 지침이다. 이 주체사상은 ‘김일성
주의’ 혹은 ‘유일사상체계’라고도 불려진다. 그 특징은 과거 항일운동의 전통을
이어받고 조선의 실정에 맞는 혁명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한마디로 남의
것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우리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이 공식적 통치이념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부터였다.
70년 10월 5차 당대회에서 유일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계승’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때부터 주체사상에 대한 체계화가 시작되고 72년 사회주의 헌법에서도
주체사상을 공식적인 통치이데올로기로 명문화 했다. (85년 10월 당 40돐에 3,250
페이지로 완결: 위대한 주체사상) 북한에서는 이를 모든 분야에 적용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적용하여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주체사상을 알아야 북한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
말이다. 특히 주체사상에서 주목된 것은 김일성-김정일의 부자권력승계와 관련해서
이론화한 부분이다.
즉,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라고 강조하였지만 그것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수령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수령(인간의 뇌수에 비유)은 과거 김일성을 의미했으나 지금은 김정일을 모셔야
하고, 혁명도 대를 이어 완수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발전시켜 놓고 있다. 이것이 곧
‘수령론’이고 ‘후계자론’이다.
이렇게 해서 북한에서는 사상의 독재가 철저하게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주체사상의
형성을 처음부터 체계화하고 이론화한 주역이 황장엽 비서다.
그의 이번 탈북 망명의 결행은 동기여하를 불문하고 망명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평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허구임을
자인한 황씨가 이를 폭로하는 날 그에 대한 보복을 우려해서 망명한 것으로 보이나
망명 그 자체가 이미 자기이론의 포기이고 북한통치 이데올로기의 붕괴를 의미한다.
더욱이 북한권력집단은 지배구조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즉 통치이념인 이데올로기
부문과 독재체제의 통제수단인 강제력 부문의 두가지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제는 통치이데올로기 부문이 총체적으로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된 셈이다.
남은 것은 오로지 군부와 비밀경찰 그리고 강제수용소 등으로 이루어지는 적나라한
강제력과 공포정치일 뿐이고 정신적 지주인 주체사상은 붕괴되어 상실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황장엽의 망명은 단순한 정치적 권력자의 망명과는 달리 엄청난 이념적
파괴력을 뜻한다.
따라서 수십년간 북한주민의 정신적 지주가 허무하게 무너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황씨가 자기 이론의 폐기처분을 북한에 통보하는 날 그 붕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핵심권력층 내부의 활동과
체념
황비서는 북한대내외 정책의 최고결정자의 한사람이자 권력상부에서 실질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한 주요 인물이다. 공식적 직책을 보면 93년 당비서국 국제담당비서로
임명된 뒤 대외관계를 실제 주도한 인물로 주목받아 왔다.
현재 그가 맡고 있던 내부 직책은 국제담당 비서를 비롯해서 당중앙위원회 정위원,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국제평화자주재단 이사장이고 권력서열은 19위로 되어 있다.
황비서의 행보는 크게 90년대와 그 이전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즉 90년대 이전에는 주로 사상적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의 대체적 내력을 보면
그는 50년대초 모스크바 대학에 유학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소양을 닦았다.
54년 10월 김일성 대학 철학강좌장(哲學講座長), 59년 12월에 당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지냈고, 65년 4월 김일성 대학 총장 등의 요직을 차례로 거치면서 사상이론적 분야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70년대에 들어와 당중앙위원회 위원, 특히 72년에 최고인민회의(상설회의)
의장을 맡은 이래 83년 양형섭에게 이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10여년간 의장으로 일해
왔다는 점에서도 권력층의 핵심인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권좌를 누리는 가운데서도 북한의 주체사상을 해외에 전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주체사상 토론회 대표단장 등의 자격으로 제 3세계 300여개의
국가들을 방문해서 주체사상을 선전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을 공고히 했다.
더나아가 80년 10월 제 5차 당대회에서는 사상담당비서로 선출되면서 사실상 사상분야의
최상급의 자리를 차지했다. 크게 주목할 것은 85년 10월 당창설 40돐을 기념하기
위해서 북한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주체사상총서 시리즈’가 황비서의 주도로 완성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들면서 황장엽의 활동무대는 대외분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주변 사회주의국가의 이념적 붕괴 속에서 국제담당 비서였던 허담(許談)의
사망으로 인한 공석에 추천된 것이다.
그는 취임후 중국 일본 쿠바 우루구아이 베트남 등 세계무대를 중심으로 분주한
활동상을 보여왔다. 황씨는 74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만 해도 북한정치집단의
핵심요원으로서 체제유지 차원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최근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본을 방문해서 북·일 관계의 논의와 식량지원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었다. 복잡한 북한의 대외문제를 끌고 나가던 그가 일거에 자신의 입장을
전환해서 망명을 결행했다는 것은 당사국들은 물론이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일가의 가장 측근중의 한 사람인 그의 돌변한 태도가 북한체제에
미치는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충격적이라기 보다 북한체제를 뒤엎는
반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황씨가 가지고 있는 정보원(情報源)이 남한에 합세함으로써 북한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정치엘리트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주어 제2, 제3의 황씨 망명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북한체제의 종막을 재촉하는 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 패권주의 지배체제의
몰락
북한의 정치는 김일성-김정일 일가의 패권주의 지배체제이다. 이것은 과거 일본의
만세일계열(萬世一系列)의 조직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새로히 등장할 김정일
중심의 체제도 이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의 정치체제는 당(黨)-정(政)-군(軍)으로 연결된 독재체제로서 종래 스탈린식
정치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체제는 당분간 유지되고 지속될 것이 예상된다. 이 경우 초법규적인
노동당의 총비서인 김정일은 당과 정부 그리고 군부의 요원으로 직계 핵심계층에
충당할 것이다.
이렇게 낡은 보수적 인물로서는 새로운 국제사회에 대응하고 개방경제시대에 적응하는
인물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가장 큰 고민은 주체사상이 현실로부터 배척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단적인
예가 혁명이론에서 강조되는 미제.제국주의 국가들의 타도에 관한 주장이다.
즉, 북한의 혁명이론상 제국주의(자본주의)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국은 바로 그 대상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몇년동안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대외정책의 최대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사회주의 국가라도 중국.러시아의 시장경제와 비교할 때 얼마나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체제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70년대 후반에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평화
발전의 모색’이라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바탕위에 개혁.개방의 거대한 성공을
했다.
그러나 북한은 주체사상을 통해서 ‘경제에 있어서 자립’을 강조했다. 즉 우리식
사회주의에 의한 자립갱생안을 주장함도 실제행동과 배치되고 있다. 이렇게 북한은
사회주의 실현의 실패와 황장엽씨의 주체사상 포기로 북한 패권주의 몰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황장엽씨의 망명사건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일에 대하여 대처해야할 문제점을 다음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향후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황씨 일행의 망명을 차분이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흥분된 모습을 보여서는 아니 되겠다. 문제는 앞으로 북한의
태도이다.
황씨 망명이 많은 북한 지도층이나 국민에게 알려지는 날 큰 충격을 받고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 사건을 왜곡시키면서 대남공작을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귀순자 이한영의 피살사건과 같은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안보태세의 강화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는 또 어느때 닥칠지
모를 북한의 붕괴에 대한 대비를 바짝 서둘러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최악의 상황에 무력도발을 일을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감안해서 안보태세를
더한층 철저히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국내 좌경세력의 통제와 홍보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 황씨의 망명사건을
이용해서 국내 좌경세력 즉 ‘주사파’류의 무분별한 북한현실 찬양을 막아야 하며,
똑바로 북한을 직시하도록 홍보교육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넷째, 황씨 망명사건의 부작용을 과소화 시켜나가야 한다. 황씨 일행은 공산사회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엘리트 정치요원이다. 아무리 그 체제가 싫어서 떠났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람과 같은 시각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보는 남한관과 북한관을 잘 조화해 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즉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도 과소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모두 북한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주시해 나가면서 냉정하고
착실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