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을 뭉치게 하는 그 정신과 전통



해병대 정신



누구나 해병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멋있는 해병대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해병대의 일원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대장부중에서도 무엇인가
남보다 다른 특성과 특기를 지닌 자들만이 스스로 해병대를 선택하여 어려운 훈련과정을
겪으면서 좀더 나은 젊은이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병대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된
요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해병대는 자신이 해병대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예비역이 된 이후에도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대원임에 무한한 긍지와 명예를 갖고 영원한 해병대로 남기를
희구한다. 해병대는 항상 국가와 조국에 대한 충성스러운 군으로써 또한 국난극복에
앞장서는 영광스러운 군인으로써 명예롭게 승화할 수 있는 긍지와 자부속에 생활해
왔다.


군문을 떠나서도 진하게 타오르는 모군에 대한 향수와 애국, 충성 그리고 계급,
연령에 관계없이 해병대의 일원으로 맺어지는 끈끈한 관계는 해병대만이 갖는 강한
정신적 지주(4대정신) 속에서 형성되어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영원한 해병대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단결정신



해병대는 초창기부터 장병이 엄격한 규율과 가족적 인화를 유지하면서 어려운
여건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전장 개적의 막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므로써 불멸,
불패의 수많은 신화를 창조해 왔다.


이것은 해병대가 특별한 강도를 지닌 골육지정의 단결로 오로지 국가와 조직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던 영적 전통을 지니고 있음에 기인한다.
흔히 인간은 역경에 처하면 자기보호의 본능에 사로잡혀 이기적인 행동을 취함이
상례이나 해병대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서로 뭉치고 더욱 헌신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속에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가족적인 상부상조의 기풍을 만들어
냈다.


때문에 해병대는 상관이 부하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부하가 그러한 상관의
부하됨을 명예롭게 생각하며 명령에 죽음을 불사하는 강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어떠한 극한 상황과 고된 훈련에서도 결코 불평불만하지 않는 군으로서 군문을 떠나서도
해병대의 추억과 혈연보다 짙은 강한 전우애를 잊지 못하는 값지고 우람한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다.



애민정신



해병대는 언제나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의 마음속에 신뢰받는 군으로서 국민과
동고동락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생활해 왔다. 그동안 해병대는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의 전투상황에서도 대민 계몽운동과 봉사활동 등 주민보호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국민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신념과 스스로 국가의 주역이라는 주인정신을
가지고 국민생활 안정에 노력함으로써 애민애족의 충정어린 사고를 함양해 왔다.


더우기 해병대는 해방 후 혼란한 치안상태와 국민의 어려움 속에서 창설, 진충보국의
정신으로 수명하였으며 자유와 평화수호의 원정군으로 삼군에 앞장서는 선봉장적
역할을 즐겁게 맡아왔다. 때문에 해병대는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으며 배수진을 치고 적진에 투입하는 상륙군으로서 맡겨진 임무를 희생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애민정신의 뿌리가 있기에 해병대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민의 군대로서 적 후방의 고립된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역경속에서도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며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충성스러운 군으로서 민족의 내일에 몸과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인내정신



인내는 전장의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극한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군인에게 있어서는
기본적인 요건이며 또한 그것은 전승의 무형적 요결이다. 그동안 해병대는 강한 정신적,
육체적 복합훈련을 통해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신념을 배양해 왔으며 창설이래 실로 많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오늘의
발전과 영광을 이룩해 냈다.


예컨대 초창기의 해병대는 비행장의 격납고를 박봉을 모아 침실로 수리하고 해삼을
잡아 식사를 때웠으며 제주도에서는 고사리로 부식에 충당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고된 훈련을 즐겁게 받아냈을 뿐 아니라 맞지도 않는 장구를 걸치고도 가는 곳마다
승리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해병대의 인내심은 오로지 ‘하면된다’는 신념과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 강한 훈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병대는 배수진을 치고 적전상륙을 감행해야 하는 군이므로 강인한 정신력은
그 어느 군보다도 중요하고 불가결한 요소이다. 때문에 해병대의 모든 작전은 인내와
필승의 투혼이 매우 중요한 성공의 요결이며 실제로 이러한 정신적 힘은 한국전시
통영, 경인지구, 도솔산, 김일성고지, 양도의 5대작전과 월남전 및 각종의 평시작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쟁취하므로써 입증되었다.


인내는 강한 도덕심과 책임감, 그리고 철저한 군기와 준법정신에 근거를 두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불굴의 개척정신과 불가능을 모르는 전천후 해병대로서 강한
사명감에서 출발한다. 특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척정신은 적지에 공격터전을
구축해야 하는 상륙군으로서 투철한 소명의식과 의지없이는 불가능하며,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인내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없이는 성취시킬 수 없음을 생각할 때 인내정신은
곧 해병대혼의 초석이라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임전무퇴 정신



어느 군이나 전투에서 패배가 용인될 수는 없지만, 해병대에 있어 그 강도는 더욱
강하며 물러설 곳이란 물속밖에 없기에 특히 바다를 발판으로 하는 상륙군에게 후퇴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한국 전쟁당시 일시 후퇴명령에 대원들이 해병대도 후퇴가 있느냐고 질문했다는
고사를 상기해 보더라도 해병대의 임전무퇴의 정신은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불굴의
투혼이며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승의 요결이었던 것이다.


해병대는 국가전략 기동부대의 일원으로서 공세적 선봉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상승불패의 신념과 공세적 감투정신을 지닌 무적의 군대로서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책임을 완수함으로써 정의와 자유를 수호해온 찬란한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이러한
전통 즉 단결과 인내 그리고 애국애족의 충정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우리는 그동안
‘무적해병대’ ‘귀신잡는 해병대’ ‘신화를 남긴 해병대’등 실로 더할 수 없는
찬사와 갈채를 받아 왔다. 승리는 욕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불굴의 투지
또한 전통에서만 강조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해병대는 강하고 고된 훈련속에서 부단히 전기를 연마하고 강인한 정신력을 배양하였으며
이러한 가운데서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전기와 정신력을 갖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그러한 능력을 가지므로써
불가능을 모르는 해병대 일원이 되었음을 생각할 때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의 빛나는
전통은 실로 선배들이 남긴 값진 유산인 동시에 우리 해병대의 땀과 희생적인 노력의
결정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해병대의 전통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민족의 대수난기에 창설한 해병대는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통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전장에서의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귀신잡는 해병대’
‘무적해병대’ ‘신화를 남긴 해병대’ 등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아왔고 평소 대간첩 작전에도 철통같은 경계태세와 감투정신으로 침투하는 간첩을
격멸함으로써 적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상승해병대 전통을 보여주었다.



귀신잡는 해병대



낙동강 전선의 피아 대치된 상황에서 한국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는 진동리 서방
고사리 지역 섬멸전에서 6.25이후 파죽지세로 침공해온 북괴군의 예봉을 꺾고 침공을
지지시키므로써 국군 최초의 큰 전과를 획득하여 1950.8.5 대통령으로부터 전 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획득한 후, 통영지구에서 한국군 최초 단독 상륙작전을 1950.8.17
- 9.11일까지 감행하여 적을 완전격멸하자, 1950년 8월 23일 통영 상륙작전에 대한
취재차 원문고개로 해병대를 방문한 미 외신기자 ‘마거릿 히킨즈’는 해병대가 통영에서
거둔 전과처럼 기습적인 양동 상륙작전으로 우세한 적군(북괴군 7사단 600여명)을
공격해서 적의 점령지를 탈환한 예는 일찌기 없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귀신잡는
해병대’란 표제하에 취재기사를 널리 보도함으로써 ‘귀신잡는 해병대’란 말의
씨를 뿌려놓은 계기가 되었으며 이 전공으로 국방부 장관의 부대표창이 수여되었다.



무적해병대



양구-인제간에 위치한 태백산맥중 가장 험준한 도솔산(1148고지)은 난공불락의
요새지로서 이 지역을 확보치 못하면 우군 전선의 활로를 개척할 수 없으며 적에게
포위당할 우려가 큰 지역으로 미해병 제 5연대가 공격에 실패하자 1951.6.4 해병
제 1연대가 임무교대하여 혈전 17일만에 24개 고지를 공격, 탈취 확보하고 적사단을
격퇴시키는데 성공하므로써 해병대의 야간전투와 산악전 사상 최초 최대의 격전지가
되었다. 1951년 8월 25일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국방부장관 및 미 8군 사령관을 대동하고
도솔산 전투에서 거둔 해병대의 혁혁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부대 표창장과 감사장을
가지고 철정리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 제 1연대를 방문하여 격려사를 통해 해병대를
‘무적해병대’라 칭하였으며 1953년 ‘무적해병’ 휘호를 하달하였다.



신화를 남긴 해병대



해병대는 월남의 공산세력을 분쇄하고 영원한 세계평화를 성취하겠다는 사명으로
건군사상 최초로 해외원정하는 전투부대의 선진으로 청룡부대를 1965년 10월 9일
캄란만에 상륙시켰다. 해병 제 2여단(청룡부대)은 캄란, 판랑, 나트랑 방어전을 수행한
후, 1966년 9월 19일 추라이로 이동하여 작전임무 수행중 월남정규군 제 2사단 1연대와
21연대 및 지방 게릴라 1개 대대가 1967년 2월 14일 23시 20분에 손틴군 짜빈동에
위치한 청룡부대 3대대 11중대에 인해전술로 파상적인 공격을 가해왔으나 해병 제
11중대는 중대 전술기지를 사수하면서 수류탄, 크레모아, 지원화기의 적시적절한
운영, 역습부대의 과감한 공격과 진내 육박전으로 4시간의 사투끝에 적사살 243명의
대전과를 획득하였고 중대 병력으로 막강한 적의 대부대를 저지섬멸한 쾌거는 월남전
사상 유례없는 대첩이었으며 해병대의 용감성을 전세계에 과시하였다.


작전지역을 방문한 미해병 제 3상륙군 단장 월드 중장은 ‘내가 월남전에서 처음보는
전과다, 전장병의 용감성은 우방군의 귀감이다’라고 격찬하였으며 외신기자들이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표제하에 대서특필로 보도하였다. 이 전공으로 중대원
전원(장교제외) 1계급 특진의 영예가 베풀어졌으며 한.미 대통령의 부대표창이 수여되었고
중대장, 소대장은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는 한편 이 전투 참전자 전원이
국내외 훈장을 받았다.쫼



(◑ 군사세계는 자랑스러운 우리 해병의 활약상을 그때 그때마다 국민들에게 널리
홍보코자 합니다. 계속해서 많은 자료를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