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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60년을 돌아보며..
김진욱  2013-08-05 19:05:45, 조회 : 6,507, 추천 : 1659


한미동맹 60년을 돌아보며

1951년 7월, 정전회담이 시작될 때 이승만 정부는 휴전에 반대하였고 미국으로부터 북한의 재남침에 대한 확실한 보호를 받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다. 미국은 한미 방위조약의 체결과 경제원조를 약속하면서 끝까지 전쟁을 치르겠다고 주장하는 이승만 정부를 설득했다. 그런데 이 약속에 대해서 트루만 정부에 이어서 들어선 아이젠하워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정전회담의 쟁점이 되어 있던 약 2만 5천여 명의 반공 포로들을 석방해 버린다. 그것은 2년 동안이나 공들여 왔던 휴전협정의 체결을 무산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조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고, 미국 조야에서는 '이승만 제거'의 필요성이 검토되기도 했었다. 이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강력히 요구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어쨌든 아이젠하워 정부는 다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체결에 적극성을 보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또 다시 한국에서 전쟁 발발시 미국이 자동개입하는 것을 조항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해외에 병력을 파견할 때 의회의 동의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섰고 결국 절충된 것이 미국군 2개 사단을 한국군 전방에 배치하여 실질적으로 전쟁발발시에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자동개입 조항이 빠지고 각자의 헌법상 절차를 경유하도록 했지만, 미군이 서울과 휴전선 사이 서부전선에 배치됨으로써 북한이 남침할 경우에 북한군이 먼저 휴전선에 배치된 미군과 충돌하게 되어 자동적으로 미국이 전쟁에 개입될 수밖에 없는 소위 인계철선(tripwire)이 마련된 것이다.

이렇게 한미동맹이나 주한 미군의 시작은 미국의 필요나 미국의 적극성이 아니라 한국의 필요와 한국의 절박성 때문이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승만 정부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한국에서의 미국군 주둔이다. 한미동맹이나 주한 미군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제국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자위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또는 공산주의의 팽창에 맞서 한반도에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조치였다. 지난 60년 동안에도 동맹의 필요성은 미국보다도 한국에 더 있었고 동맹의 효과를 생각해 볼 때도 한국은 동맹으로부터 군사적으로나 혹은 군사외(軍事外)적으로나 엄청나게 많은 것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해외 학자들이나 전문가들과 접하면서 한미동맹과 주한 미군에 대하여 뭔가 설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한국은 주권국가인데 왜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 되는 것이 아닌가?’ 때로는 간디가 역설한 비동맹의 가치에 반해서 한국적인 상황을 설명해야 하기도 하고 또 공산주의 국가들이 주장하는 제국주의론에 대해서도 한국적인 상황을 설명해야만 한다. 한미동맹은 뭔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상황에서 출발했고, 한국은 아직도 비동맹국가들이나 공산주의 국가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이것은 한국 국민들의 생명의 위협에 대한 것이고 자위권 차원에서의 한국 국민들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한국에의 미군 주둔은 한국방위의 핵심전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한미동맹 60년 동안 한국 안보의 한 축을 미국이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경제성장에 매진할 수 있었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뿐만 아니라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을 위한 각종 소프트 웨어와 하드 웨어, 인적, 물적 자원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토양을 제공했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생존을 담보하는 ‘생명줄’이자 한국이 정상적인 국가로 발돋음하게 만든 핵심적인 원동력이었다. 국내적으로나 혹은 국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 정당성이나 효과성에 있어서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 그리고 복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성공적인 동맹이었음에 분명하다. 이제 한미동맹은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를 포괄하는 ‘포괄적•역동적•호혜적 동맹관계’로 발전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 60년동안 한국과 미국은 국가적 차원에서나 개인적 차원에서 그야말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필자가 아주 어린 시절, 하바드 대학교의 연구원 두 명이 우리 마을에 사회조사를 하기 위해서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가치를 가장 잘 보유하고 있는 곳이 충청도이고 그 중에서도 괴산의 능촌리 마을이 안동 김씨의 집성촌으로서 그들의 조사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그분들과의 인연으로부터 나와 미국과의 관계가 시작되었고 미국의 평화봉사단 선생님을 비롯하여 미8군 근무, 미국 군사교육, 걸프전 다국적군 참전 등 거의 내 평생을 미국식 교육의 틀에서 자라났고 나의 군 업무나 지금의 연구소 활동도 미국의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 나이 60에 가까워졌는데 그 동안 미국과 또 미국인들과 생활하면서 항상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순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또 증오심도 있었지만, 총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항상 나에게 또 우리 국가에게 이득이었다.


우리 말 속담에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한다’는 말이 있다. 현재까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나라는 영국과 일본, 필리핀 그리고 한국뿐이다. 영국은 미국의 핵기술을 제공하기 위한 조약이었고, 일본은 재무장 금지와 맞물려 있는 조약이었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에서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나라는 필리핀과 한국뿐이다. 돌이켜 보면 1905년 러일전쟁의 중재를 맡은 미국이 식민지 필리핀의 안전을 일본으로부터 보장받기 위해 같은 해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음으로써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한 바 있었다. 미국은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지도 않았고 대한민국 건국준비위원회도 부정했었다. 미군정은 진주 직후 남한의 직접통치에 들어가게 되는데 옛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친일파 인사들을 그대로 등용하여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는데도 실질적으로는 조선총독부를 계승한 꼴이었다.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그 효과와 미국의 공로에 대해서 인정하면서도 다시 한번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결코 잃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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