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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세계정경조사회 초청 강의내용 (9월 7일)
  2007-10-25 13:35:46, 조회 : 22,307, 추천 : 2390



북한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도, 북한과의 체제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도, 또 북한과 함께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북한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북한을 잘 몰랐기 때문에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 남북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북한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에서 번번이 북한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 북한을 잘 모르면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고 남북이 통일의 과정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희생과 낭비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북한의 정책결정에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있는 북한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북한군의 정치사상을 모르고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의사결정체계를 모르고 그들의 전략 전술을 모르고 그들의 군사체제와 무기체계를 잘 모른다. 왜 그들이 핵무기와 미사일에 매달리는지 왜 그들이 정치 / 군사 배합전술을 쓰고 화생방으로 우리를 위협하는지 그것을 잘 모른다.  

지난 9월 7일 일본 세계정경조사회의 초청으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김진욱의 눈에 게재한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렇게 좋은 자리에 초청을 해주신 재단법인 세계정경조사회와 스기타 카즈히로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한국 사단법인 21세기군사연구소의 김진욱 소장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이세환 기자이십니다.
21세기군사연구소는 국방부 인가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 1995년에 창립되어 국회와 국방부, 병무청, 방위사업청 그리고 육해공군의 연구용역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군사관련 안보관련 국내외 포럼 및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고 또 우리 이세환 기자가 일하고 있는 군사월간지 군사세계 Korea Defense Review (KDR)를 비롯해서 각종 군사서적들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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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0년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서 군에서 10여년 정도 근무를 했습니다.
제가 북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군에서 정훈장교로 근무할 때, 그때만 해도 북한에 대한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을 때인데 저는 군에서 직책상 노동신문과 같은 북한의 자료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특히 북한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훈장교는 북한과의 사상전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장교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북조선인민군은 군사파트와 정치파트로 이원화되어 있는데 그것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당이 군대를 지배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조선인민군에 맞서서 한국군에서도 NATO군 체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정치파트 장교들을 대대급 이상에 두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제가 군에서 근무했던 정훈장교, 정치훈련 장교입니다.
정치훈련 장교는 북조선인민군들의 정치파트 장교들에 맞서서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주의 이념을 장병들에게 교육시키는 일을 합니다. 저는 국방부에서 이 업무를 총괄하는 국방부 이념교육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3
저는 또 미국방성 공보학교를 나와 걸프전에 참전해서 한국군지원단의 대변인으로 일한 바 있습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95년에 17명의 의인들과 함께 뜻을 모아 사단법인 21세기군사연구소를 발족하여 현재 연구소의 소장직을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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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드릴 내용은 朝鮮人民軍의 組織과 規模, 配置
軍事思想과 군사政策/군사戰略 등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고
우리 이세환 기자가 朝鮮人民軍의 武器體系 에 관해서 말씀을 드린 뒤에
제가 最近 북조선 군부의 주요 인물들의 動向이나 軍事情勢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고 질의 / 응답시간을 갖는 것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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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군사구조도 정치파트와 군사파트 이중으로 되어 있지만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외교적인 대응과 군사적인 대응이 이중적으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북한이 군사와 정치의 배합전술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당에 대해서는 남한과 적극적으로 협상을 하라고 하고 있고, 군부에 대해서는 한반도 공산화를 위한 만반의 공격준비를 갖추라고 하고 있습니다.
당과 군부의 견해가 다를 때는 김정일 위원장은 100% 군부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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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은 국방위원회입니다. 현재 국방위원장으로 있는 김정일이 일체의 무력을 지휘통솔하며 국방사업의 전반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국방위 산하에 인민무력부와 국가안전보위부, 총참모부가 있는데 인민무력부는 일본의 방위성과 같은 기구이고 국가안전보위부는 기능적으로는 일본의 내각조사실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또 총참모부는 일본의 통합막료부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김정일은 국방위원장겸 전시에 최고사령관으로서 북한의 무력 일체를 직접 장악하고 있으며 인민무력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총참모부를 통해 중요 지시를 하달하거나 보고를 받고 있어서 군에 대해서 직접적인 통제를 하고 군정권과 군령권 양쪽 모두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현재 인민무력부장을 하고 있는 김일철 차수입니다. 97년 4월에 차수로 진급했고 98년 9월에 최광 부장이 사망한 뒤 공석에 있던 인민무력부장으로 발령되었고 동시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지난 4월에 전방 2군단장으로 근무하다가 총참모장으로 새로 임명된 김격식 대장입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이진수 전 부장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김정일 위원장의 김일성 종합대학 동기인 김영룡 제1부부장의 대행체제로 가다가 김영룡 부부장 마저도 의문속에서 자결을 하는 바람에 현재 공석으로 있거나 아니면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군사령부는 동해함대사령부와 서해함대사령부로 나뉘어져 있고 사령관에는 김윤심 상장이 하고 있고 공군사령관에는 오금철 상장, 평양방어사령관에 리용호 상장, 보위사령관에 김원홍 상장, 판문점대표부 대표는 리찬복 상장이 하고 있습니다.

7
북한의 당과 정 군 관계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91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1년전인 1993년에 국방위원장에 추대되었습니다. 사실 김정일 총비서 겸,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1인이 모든 기관과 인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과 군의 관계를 보면 일반적인 공산주의 국가들의 군에 대한 당지배 원칙이 북한에도 형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당중앙위원회에 중앙군사위원회가 있고 예하 비서국 산하에 군사부, 조직지도부, 작전부, 군수공업부가 있어서 군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습니다. 또 인민무력부 산하에 있는 총정치국은 당 정치국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중앙군사위원회에는 군수공업, 방위산업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원회가 있어서 인민무력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시가 되면 당 군사부 예하에 있는 노농적위대와 붉은 청년근위대 등 예비대가 총참모부 예하로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각 예하에 있는 사회안전부 지금은 인민보안성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인민보안상도 현역 상장이 맡고 있어서 인민무력부와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지난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5차회의에서 내각총리로 임명된 김영일입니다. 김총리는 해운대학을 졸업하고 육해운성 말단 지도원으로부터 출발해서 장관급인 육해운상까지 오른 유통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5년 12월 평남 남포의 선박수리 공장에서 도크 공사완료를 기념해 현지 지도에 나선 김정일이 수행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을 거듭 칭찬했습니다. "대단하다. 소문 없이 큰일을 하였다" 그는 1994년부터 13년간 육해운상을 맡은 김영일(63)이었습니다. 김영일의 기용을 두고 실적주의에 바탕을 둔 인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민보안상 주상성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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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무력부는 원래 내각에 소속되어 있다가 1982년도에 최고인민회의 중앙인민위원회 직속기관으로 개편되었고 1992년 헌법개정때 중앙인민위원회 산하의 국방위원회가 독립되면서 국방위원회의 직속기관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인민무력부 산하에는 당 군사위원회 통제를 받는 총정치국과 군령권을 행사하는 총참모부, 무기체계 등 군수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후방총국, 한국의 기무사령부와 같은 보위사령부, 인사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간부국, 군사재판국, 군사검찰국, 경무국과 대외사업국이 있습니다.

계선상으로는 인민무력부 예하에 총정치국이나 총참모부가 있지만 기능적으로 볼 때는 이들 기관이 병립적으로 존립하거나 아니면 총정치국 국장인 조명록 차수가 인민무력부장 김일철 차수보다 서열이 높은 것으로 볼 때 오히려 실질적으로는 인민무력부장이 총정치국장의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인민무력부에는 실권을 가진 여러 명의 부부장들이 있는데 박재경 대장을 비롯해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는 김일성 주석의 이종사촌인 리용무 차수를 비롯해서 여러명의 부부장들이 보직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1995년부터 차수로 승진하면서 총정치국장을 맡고 있는 조명록입니다. 98년 9월에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되면서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가 된 사람입니다. 지난번 클린턴 정부때 미국을 방문했던 조명록 차수입니다. 이 사람이 조명록과 함께 지난 95년 10월에 차수로 승진하면서 총참모장을 맡아왔던 김영춘입니다. 지난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5차회의에서 연형묵의 사망으로 공석이었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전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명록 총정치국장은 북한의 상징적인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이어서 북한의 서열 3위인데 사실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이고 여기 김영춘 전총참모장이 북한의 핵개발을 총지휘하고 있는 전병호 당 군수공업담당 비서에 이어서 서열 5위입니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북한의 서열 6위인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에 이어서 7위입니다.  

총참모장으로 있던 김영춘 차수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동을 해서 겸임하는 보직이 없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전임을 하도록 했습니다. 국방위원회를 노동당 조직과 같은 실질적인 조직으로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그것은 최근 북한에서 혁명의 주력군이 노동자에서 군인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을 가시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 사람이 박재경 대장인데 얼마전 총정치국의 선전담당부국장을 하다가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이동한 신군부실세 3인방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재경 대장은 대외사업국을 맡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측근중의 측근인 박재경 대장이 인민무력부의 대외사업국을 맡은 것은 북한의 군부가 북한 정책의 주요 의사결정체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이 국가의 대외업무를 담당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수 2명 차수 13명 대장 15명 장성 1,44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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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참모부는 실질적인 군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기구이며 예하에 작전국과 정찰국 등 참모조직들과 지상군소속의 19개 군단과 해군사령부과 공군사령부 등이 예하에 편성되어 있습니다. 또 10여만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 특수부대 경보교도지도국이라던가 전차교도지도국, 포병교도지도국등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총참모장은 김영춘 차수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가면서 지난 4월달에 전방 2군단장을 하고 있던 김격식 대장으로 교체되었고 작전국 국장에는 얼마전에 김정일이 총애하는 군실세 3인방중의 하나인 리명수 대장이 이동하면서 리명수 대장의 전임자였던 김명국 대장이 다시 임명되었습니다. 김명국 대장은 김정일에게 군사에 대한 가정교사를 할 정도로 김정일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작전국장을 하다가 전방 5군단장과 108기계화군단장을 거친뒤 다시 작전국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정찰국 국장은 새로 임명된 김격식 총참모장의 사촌동생인 김대식 상장이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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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의 전평시 지휘체계를 다시 한번 비교해 보면 전시가 되면 국방위원회 예하에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구성되고 인민무력부 지휘구조가 없어지면서 김정일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총참모부를 통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전시에는 총참모부 예하에 전선사령부가 편성되고 예비부대들인 노농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 등도 총참모부가 직접 통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의 전시 대본영과 같은 그런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북한은 지금이 전시체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인사명령이라던가 모든 명령이 최고사령관의 명의로 하달되고 있습니다.  
대략 북조선 인민군의 지휘체계에 대해서 알아봤고 다음에는 병력규모나 배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1
북조선 인민군은 한국군에 비해서 두배 정도의 병력이 많은 117만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의 인구는 현재 4,800만 정도이고 북한의 인구는 한국 인구의 약 반정도인 2,500만 정도입니다.
북한의 총 인구대비 4.7%가 정규군으로 편성되어 있는 그야말로 병영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이 지금 1억 2천에 자위대 병력이 24만이니까 0.2% 정도죠.
육군이 100만명, 해군이 6만명 공군이 11만명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부대규모를 보면 19개 군단예하에 69개의 사단과 여단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무기체계들을 보면 이따가 우리 이세환 기자가 전문가로서 또 자세히 설명을 하게 되겠지만, 전차나 야포, 특히 다련장포 같은 경우 숫적으로 한국군에 비해서 월등히 많고 미사일도 숫적으로는 한국보다 네배 정도가 많습니다. 해군은 잠수함은 한국보다 척수가 훨씬 많고 다른 함정들은 척수는 많지만 질적으로 볼 때 한국보다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군도 역시 숫적으로는 북한이 많지만 여러가지 연료사정이라던가 정비부품 사정이라던가 또 첨단기술 그런 측면에서 잘 지원이 안되기 때문에 가동력이나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비전력도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 해서 한국보다 두배 정도가 많고 특히 훈련수준이 한국보다는 월등히 우수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2
참고로 동북아 국가들의 군사력 규모를 보면, 중국이 225만으로 제일 많고, 북한이 러시아보다도 병력수가 더 많습니다.
무기체계는 전차는 역시 러시아가 제일 많고 자주포는 러시아와 일본, 북한이 비슷한 숫자이고 미사일은 북한이 숫적으로는 동북아 국가들중에서 제일 많습니다.
잠수함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비슷한 숫자이고 전투기는 러시아와 중국이 비슷한 댓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숫적인 비교이고 질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적어도 해군, 공군력에 있어서 일본의 자위대가 가장 우수한 무기체계를 보유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13
최근 2001년부터 작년 2006년까지의 각국의 국방예산 변화추세를 보면
일본이 4조 8,000억엔-9000억엔대로 약간 감소추세에 있고
중국이 2001년도에 145억불에서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여 작년에는 351억불로 늘어났고
북한은 역시 경제사정의 악화로 50억불대에서 감소추세에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2001년도에 15조 3884억원에서 꾸준히 증가해서 작년에는 22조 5129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여기 북한의 경우에 괄호안의 숫자가 북한이 발표한 액수이고 여러가지 통계결과들을 감안해서 한국에서 추정한 액수들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각국의 국방비 규모를 달러로 환산해 보면 일본과 중국이 비슷한 규모의 국방예산을 사용하고 있고 한국이 일본에 비해서 약 반정도 못되는 예산을 쓰고 있고 북한이 한국에 비해서 약 ¼정도의 예산을 쓰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계산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14
북조선 인민군은 군단단위로 독자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9개의 정규군단과 한 개의 전차군단, 두개의 포병군단과, 네개의 기계화군단, 평양방위사령부 등 해서 19개의 군단이 있습니다.
병력수는 대개 4-5만명 정도이고 정규군단의 경우 군단내에 지휘참모부와 다섯개의 정규사단, 전차, 수색, 경보병, 포병, 자주화 포병 등 다섯개 여단과 대전차, 수색, 공병, 방공, 전자전 대대, 통신, 의무, 화학대대와 같은 지원부대들이 있고 또 후방지원부서가 있어서 군단 스스로 독자적인 작전수행이 가능합니다.  
그외 전차, 포병, 기계화 군단들이 모두 과거의 바르샤바 동맹군의 전형적인 군사편제를 따르고 있습니다.  


15
대략적인 부대배치를 보면 평양-원산 이남지역을 전연지대로 하고 평양-원산 선 이북에서 정주-신포 선까지를 중부지대, 정주-신포선 이북을 후방지대로 하여 전연지대에 서에서 동으로 4군단과 2군단, 5군단, 1군단이 전방군단으로 배치되어 있고 820 전차군단과 620 포병군단, 806 기계화군단 등 해서 북조선인민군 총병력의 70% 이상이 전방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16
해군의 경우에는 동해와 서해로 갈라져서 해군사령부가 평양에 위치해 있고 서해함대사령부가 남포항에 동해함대사령부가 낙원항에 그리고 잠수함 함대사령부가 신포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해함대사령부에 10개 전대, 서해함대사령부에 6개 전대가 편성되어 총 16개 전대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17
공군의 경우에는 공군사령부 혹은 공군 및 반항공사령부가 평양 남쪽의 황주비행장에 배치되어 있고 제1항공전단사령부가 개천비행장에 제2항공전단사령부가 덕산비행장에 배치되어 있고 제3항공전단사령부가 공군사령부와 함께 황주비행장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 비행훈련단이 청진 아래 있는 어랑비행장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3개 항공전단사령부 예하에 6개의 비행사단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3個 航空戰端司令部
6個 飛行師團
戰鬪機,爆擊機 師團: 3個
輸送機 헬기 師團: 2個
操縱士 養成 師團 1個
戰時 民用航空局 包含한
集團航空軍 體制로 轉換  



18
다음에는 조선인민군의 군사사상이라던가 군사정책, 군사전략 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9
북조선 인민군의 군사목표는 바로 북한 노동당의 목표이고 북한정권의 목표이고 북한 국가 자체의 목표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영토를 탈취한다 뭐 그런 것이 아니고 한반도를 공산화 한다  그런 것입니다.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을 축출해서 남한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 이상적인 사회주의 나라를 만들자, 이상적인 인민민주주의를 건설하자 하는 것이 북조선 인민군의 군사목표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폭력이나 무력, 군사력의 사용이 합법화되어 있고 남침공격에 대한 당위성이 논리적으로 명확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제국주의자들의 전쟁, 브루조아 전쟁과 구분하여 그들의 전쟁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0
공산주의자들은 戰爭은 生産手段을 所有하고 擴大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社會集團 혹은 국가집단 相互間의 武力 鬪爭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브루조아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또 브루조아 전쟁에 맞서서 계급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하여 벌이는 프롤레타리 전쟁은 정당한 것이며 그것은 정의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실히 수행할 때 사회혁명이 일어나고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당위적인 것이다. 또 브루조아 전쟁에 맞서 어차피 그들이 치러야만 할 소위 정의의 전쟁은 사회혁명을 위하여 또 인류발전, 역사발전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21
북조선인민군의 군사사상 혹은 김일성의 군사사상도 전통적인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의 군사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레닌은 막스의 사상을 구소련의 상황에 접목시켜서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본주의가 성숙되어 자연스럽게 계급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프롤레타리아 투쟁이 발생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인위적으로 폭력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창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소위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론입니다. 또 레닌의 대표적인 공산당 이론이 통일전선전술인데, 혁명의 주력군과 보조군, 동맹군을 구분해서 전략적인 단계에 따라 전술적으로는 보조군과 동맹군을 수시로 바꿔서 전선을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이 통일전선전술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은 바로 모택동입니다. 모택동은 주력군을 노동자에서 농민으로 바꾼다거나 또 일본에 대항하기 위하여 장개석의 국부군과 제1차, 제2차 국공합작을 시도했던 것은 바로 이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입니다.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북측관계자들이 조선 노동당의 통일전선사업부의 사람들인데 이들은 어김없이 한반도 적화를 위한 통일전선전술의 차원에서 정상회담을 했다고 봅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독일의 전격전 사상도 김일성의 군사사상에 크게 영향을 미친 사상입니다. 전쟁이 정책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정치수단의 하나일 뿐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은 공산주의자들의 정의의 전쟁사상 개념과 함께 한반도를 공산화하기 위한 군사력의 사용이나 한국에 대한 남침을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고 있습니다.
또 독일의 전격전 사상은 북조선인민군의 군사전략 개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북한은 현재 선제기습전략, 속전속결의 단기결전 전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북조선 인민군의 군사사상에는 또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활동 당시의 치고 빠지는 그런 유격전들의 경험과 함께 항일 민족주의 사상이 들어가 있고 또 그들의 독창적인 북한식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사상이라던가 유일사상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또 그 근본에는 전제주의와 봉건주의 사상이 바탕에 흐르고 있다고 봅니다.

22
북조선 인민군 군사사상의 정수는 한마디로 주체사상과 유일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革命과 建設의 主人은 人民大衆에게"  
'歷史의 主體인 人民大衆이 自主性을 實現하기 위해서 벌이는 것이 革命이다.  
한때 中蘇 理念分爭과 領土分爭의 過程에서 中立路線을 걸으며
또 東歐圈의 沒落에 따른 內部 思想鬪爭의 混亂을 막기 위한 政權維持 차원의 戰略으로서 주체사상이 나오고 여기서 바로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군사정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김정일에 의해서 발전된 사상이 바로 유일사상입니다.  
"인민대중은 당의 領導 밑에서 首領을 中心으로 組織되고 思想的으로 結束됨으로써 하나의 社會정치적 生命體가 되어 歷史의 自主的인 主體가 된다." 는 것입니다. 이 주체사상과 유일사상에서 북조선 인민군의 핵심 군사전략인 4大 軍事路線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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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군사정책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사회주의 헌법 제 4장 60조에..
"國家는 全人民의 武裝化, 全國土의 要塞化, 全軍의 幹部化, 全軍의 現代化를 基本內容으로 하는 自衛적 軍事路線을 貫徹한다"

전인민의 무장화는 북한 전주민의 사상무장과 전투기술 수준을 높여 유사시 주민들을 정규군에 편입, 동원하려는 것입니다. 전국토의 요새화는 한·미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할 것을 상정해서 주요 군사 및 산업시설을 지하화하고 북한전역에 방위시설을 구축하여 철벽의 군사요새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전군의 간부화」는 북한군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단련시켜 유사시에 모두가 한 계급 이상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군의 현대화」는 북한군을 현대적 무기와 전투기술로 무장시키고 아울러 현대적 군사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4대군사노선과 함께 3대 혁명역량노선도 북조선 인민군의 중요한 군사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 北韓내 自體革命力量의 構築
                 ② 南韓내 同調革命力量의 扶植
                 ③ 國際的 支援革命力量의 獲得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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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북한의 군사전략은 전격전 형식의 고속기동전으로 단기결전을 하자는 것입니다.
먼저
① 正規戰, 非正規戰의 配合戰略 : 現代的 軍事기술과 遊擊戰 經驗을 배합하고, 大部隊작전과 소부대작전, 집중과 분산, 전선防禦와 後方攪亂, 卽時적 反擊과 連續的 打擊, 狙擊手와 遊擊조의 活動을 配合하여 戰場의 主導權을 잡는다.
                                        
② 先制奇襲戰略 : 正規軍에 의한 大規模 戰略的 奇襲으로부터 武裝特功遊擊部隊를 비롯한 非正規軍의 戰術的 奇襲까지 또 軍事사상 次元에 이르기까지 先制 奇襲戰略을 廣範圍하게 適用
                         
③ 速戰速決戰略 : 速戰速決로 一旦 有利한 戰略的 狀況을 確保한 後에 政治協商을 提議하는 共産主義 特有의 政治, 軍事 配合戰略의 基本的인 手段
  
④ 總力戰 體制(戰略) : 經濟와 文化, 社會의 모든 要素를 軍事작전에 統合시키는 戰略. 迅速한 機動 및 大量 火力전과 特殊全部대의 同時透入으로 國際的 支援勢力의 介入以前에 一定地域을 占領해서 政治협상을 試圖한다는 것이 북조선 인민군의 군사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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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제 말씀을 일단 여기서 줄이고 우리 연구소의 이세환 기자로부터 조선인민군의 주요 무기체계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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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럼 이어서 지금부터 북조선 인민군의 最近 人物動向 및 군사情勢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사진은 2007년 새해 첫날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김일성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사람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대외적인 상징적 대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입니다, 이사람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조명록 차수, 이 사람이 총참모장을 했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춘 차수, 이 사람이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기남, 이 사람이 최고인민회의 의장 최태복, 이 사람이 최고인민회의 상임부위원장 양형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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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북한 군부의 주요 인맥은 김정일이 참석하는 공식행사에 얼마나 자주 수행하고 또 배석하는가, 김정일에게 직보를 할 수 있는 위치나 보직에 있는가, 과거 상관이나 혹은 부하로서 함께 근무하거나 김정일의 친가나 외가쪽으로 인척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 등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 비공식적으로 여기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일이 비정기적으로 주최하는 이른바 측근파티에 얼마나 자주 참석하는가 하는 것 등으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여기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을 하다가 국방위원회에서 상무부국장을 하고 있는 현철해 대장의 조카 현성일씨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현성일씨는 외교관 출신으로 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망명한 사람입니다. 이 자료를 이용해서 최근 주요인물들의 동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명국 이 사람은 지난 4월 25일 창군 75주년에 즈음해서 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김영춘, 총참모장으로 있다가 사망한 연형묵의 후임으로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간 사람입니다. 김일철, 이사람은 현재 인민무력부장입니다, 이명수, 이사람은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하다가 김양건 국방위 참사가 통일전선부장으로 가면서 국방위 참사로 간 사람입니다. 이용무, 이사람은 김일성의 이종사촌으로 김정일 후계작업에 도움을 준 사람으로 오랫동안 국방위 부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박재경, 이사람은 총정치국 선전부국장을 하다가 4월 25일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대외사업담당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장성우, 이사람은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 남편인 장성택의 형입니다. 3군단 군단장을 하다가 민방위사령부가 생기면서 민방위사령관으로 간 사람입니다. 조명록, 이사람은 김정일에 이어 군부의 2인자이고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입니다. 현철해, 이사람은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하다가 지금 국방위원회 상무부국장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김양곤, 이사람은 국방위 참사를 하다가 지난번에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한국의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이번 남북 2차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황장엽의 망명으로 해임된 현준극 당 국제부장 자리에 임명되어 김정일을 보좌하는 과정에서 김정일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김양곤은 한일우호촉진협의회 회장도 하고 중국에도 비공식적으로 자주 방문하는 국제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병서, 이사람은 총정치국 출신으로 현재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하고 있는데 지난해에 김정일의 공식수행에 군실세 3인방인 박재경, 현철해, 리명수에 이어 가장 많은 횟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김정일의 네번째 여자이고 현재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라고 할 수 있는 김옥씨의 신임이 두텁다고 합니다. 이용철, 이사람은 총참모부에서 작전국장을 했던 사람인데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2004년 5월에 사망한 김정일의 전처 고영희씨와 그 아들 정철 정운측의 핵심인물입니다.후계구도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김 위원장에게 올라가는 군 관련 모든 보고서와 제의서를 이 사람 이용철이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김정일이 아직 조직지도부 부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들이 김정일의 수족과 같이 김정일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전병호, 이사람은 당 군수공업담당 서기로 북한의 핵개발 책임자입니다. 주규창, 이사람은 군수공업담당 제1부부장인데 대포동 미사일 개발을 지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강관주, 이 사람은 대외연락부장으로 김일성 주석의 외조카 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평양과 일본의 조총련을 연결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극렬, 이 사람은 군에서 총참모장을 했던 사람인데 지금까지 당 작전부장을 15년째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과 부담없이 술친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아들인 오세욱씨가 인민군 중좌로 인민무력부 장비국에서 근무하다가 탈북한 적이 있었지요. 임동옥, 이사람은 김용순에 이어 통일전선부장을 하다가 2006년 8월 20일 사망한 사람입니다. 허명욱, 이사람은 노동당 작전부 부부장을 했던 사람인데 35호실 실장으로 있는데 35호실은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로서 대남공작을 하는 곳입니다. 칼기폭파라던가 최은희 납치사건 칼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인 다부치 아헤꼬(다쿠치 야에코?)의 납치등을 다 여기 35호실에서 주동한 것입니다.

김경희 이사람은 김정일의 여동생이죠. 장성택은 김경희의 남편이고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하다가 김정일의 측근파티를 흉내내다가 2004년 강선제강소 작업반장으로 가서 혁명화 작업을 거친뒤에 2006년 다시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부부장으로 복귀한 사람입니다. 박봉주와의 스토리 이제강과의 스토리..

강상춘 이사람은 이를테면 대통령 비서실장과 같은 사람인데 이 측근행사를 직접 관장하는 사람입니다. 호위사령부에서 있었던 군출신입니다. 김동운 39호실장은 당의 예산이나 외화벌이를 관장하는 사람입니다. 임상종 38호실장은 김정일의 가계나 개인 비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김창선 서기실 부실장도 군출신입니다. 김충일은 외교부 1부부장, 당의 선전선동부 대외담당 1부부장을 했던 사람인데 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김정일에게 인정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명재 이사람도 김정일의 측근으로 서기실장을 하다가 지금은 노동당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이 측근파티 때문에 부인을 잃은 사람입니다. 이명재의 부인은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남편이 파티때마다 새벽 서너시에 들어오고 어떨때는 머리를 잘려서 들어오는 경우를 보고 또 들리는 이야기에 따라서 파티가 난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한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 동지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니 수령님께서 지금이라도 바로잡아달라'고 투서를 했다는 것입니다. 필적을 감추기 위해서 왼손으로 쓰고 한통은 김일성에게 한통은 김경희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서류가 김정일을 거치지 않고 김일성에게 올라갈 수는 없었던 거죠. 결국 범인수색작업에 들어가서 이명재 부인이라는 것이 탄로가 나서 이명재나 여러 부부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총살을 하라고 지시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이명재가 저런 년은 내 마누라이기 이전에 원쑤같은 년이다. 저런 년은 내가 처단하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는 김정일의 허락을 받아 자기 부인을 쏘아죽이고 김정일에게 권총을 주면서 저도 죽여주십시오 했다는 겁니다. 너는 한번만 용서해 준다. 김정일의 배려로 중앙당에 근무하는 젊은 간호원과 재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수영은 현재 스위스 대사를 하고 있는 이철을 말합니다. 원래 외교부 의전국장을 하다가 김정일의 아들 김정남의 유학문제로 주선을 하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어 당중앙위 부부장으로 옮긴 뒤 김정남의 유학담당일을 맡아서 하다가 지금까지 20년째 스위스 대사로 눌러앉아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외교부 출신이긴 하지만 김정일의 측근 서기실 소속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이재일 이사람은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 황병서와 함께 김위원장을 자주 수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작년에 각각 43회와 29회를 수행했습니다. 이제강 이사람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군부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인데 고영희 쪽의 핵심세력으로 후계체제와 깊숙히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과 맞서서 장성택을 결국 숙청시킨 사람입니다. 김정일이 이제강과 장성택의 경쟁을 즐긴다는 말도 있습니다. 방승운 이사람은 당중앙위 부부장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염기순 이사람은 조직지도부 1부부장을 했던 사람인데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김국태 이사람은 항일 빨치산 시절 김일성 주석의 오른팔이었던 김책 전 부수상의 아들입니다. 김정일과 함께 선전선동부에서 같이 근무를 하면서 친분이 두터우며 김국태가 김정일의 정권을 이어받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기남 당 중앙위원회 서기는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가 죽었을 때 김정일의 특사자격으로 한국에도 오고 했던 사람입니다. 한국에 와서 북한 인사로는 처음으로 국립묘지를 참배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금년 들어서 작년에  비해 김정일의 현지지도 횟수가 거의 반이하로 줄어들었는데 아무래도 건강문제가 원인이 아닌가 봅니다. 금년 들어서 김정일을 가장 많이 수행한 사람이 김기남입니다. 이사람은 김중린(71세)이나 아니면 김광린(54세)을 잘못 표기한 것 같습니다. 김광린도 국가계획위원장으로 뜨고 있는 신세대인데 아마도 이사람은 김중린으로 보여집니다. 지금 노동당 중앙위 서기로 되어 있는데 한때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깊이 관련됐던 사람입니다. 김시학 이 사람도 김정일이 조직지도부나 선전선동부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을 때 같이 일하면서 친분을 쌓은 사람입니다.
박봉주 이사람은 내각 총리를 하다가 얼마전에 육해운상을 하던 김영일이 총리로 임명되면서 지금 순천 비날론공장 지배인으로 가 있다고 합니다. 백남순 외상 이사람은 지난 1월달에 폐암으로 사망하고 그 자리에 여기 강석주 제1부상이 가는 것으로 예측됐었는데 러시아와의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박의춘 러시아 대사가 외상에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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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을 둘러싼 50명의 측근들을 보면 노동당과 군부에 대부분 포진되어 있는데 노동당의 측근들은 김정일이 선전선동부, 조직지도부 실무자로부터 시작하여 부장이나 부부장을 하면서 상관이나 부하로 함께 일했던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군부에 있는 사람들은 빨치산 출신 사람들이나 혁명 2세대 자녀들 그리고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 되면서 서로 업무관계를 맺으면서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김일성이 통치할 때와 다른 것은 내각과 최고인민회의에는 그의 측근들이 많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진설명
이사람이 강석주입니다. 백남순 외상이 사망하면서 외상 1순위로 떠올랐던 사람인데 결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증진한다는 차원에서 러시아 대사를 했던 박의춘이 외상이 되었습니다. 이사람이 바로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입니다. 한때 북한의 두번째 실력자로 잘 나가다가 후계갈등으로 숙청되었는데 다시 복권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군부의 2인자인 조명록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이 강관주 또는 강주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도 한데 김정일의 수족으로 김정일과 진외가쪽의 6촌지간입니다. 일본 조총련과 평양을 연결하는 채널로 김정일에게 조총련의 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현철해 대장으로 총정치국의 조직부국장을 하다가 국방위원회로 간 사람입니다. 그 조카가 현성일씨라고 북한의 외교관을 하다가 한국으로 망명한 사람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김정일의 총애가 두터운 것으로 봅니다. 이 사람은 전 총리 박봉주인데 좌천되어 순천비날론연합소의 지배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총리시절에 군의 유류사용문제와 관련해서 군과 갈등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김일성의 사촌매제가 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이용무로 김정일의 외사촌 매부되는 사람인데 김 위원장을 후계자로 옹립하는 데 크게 공로를 한 사람이라서 여전히 현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박재경 대장인데 나중에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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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 1994년도 김일성 사망시 김일성장의위원회 명단에 포함되어 있던  파워그룹 50명()과 2006년도 작년의 파워그룹 50명을 서열순으로 배치해 놓은 건데 우선 특징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군부인사들이 1994년 김일성 사망시에는 50명중에 5명밖에 없었는데 계속 늘어나서 2006년도에 와서 12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내각에 있는 사람들은 1994년도에는 18명이나 되었는데 지금 6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연령구조는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60대, 70대가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지난번 4.25 인사때 열아홉명의 군단장중에서 7명이나 40대 50대 인사들로 교체했다는 것을 보면 김정일이 노령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지금 여기 보면 조명록이나 김일철 김영춘 현철해 박재경 같은 사람들이 서열 20위권 이내로 진입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북한이 발표한 것이 아니고 김일성 장의위원회 명단과 같이 김정일이 참석하는 공식행사에서 그 서있는 순서대로 한국에서 서열을 판단한 것입니다. 또 여기보면 이용철 당 조직지도부1부부장이 100위권 밖에서 15위로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이 김정일의 전처 고영희의 핵심세력이고 김정일의 아들들 정철, 정운의 후계구도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지난 4월 25일 인민군 창건 75돌 주석단 명단
상단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 왼쪽으로 조명록(차수) 국방위 제1부위원장, 김격식(대장) 총참모장, 김영춘(차수) 국방위 부위원장, 김일철(차수) 인민무력부장, 이용무(차수) 국방위 부위원장, 이을설(원수) 당 중앙군사위원, 김익현(차수) 당 중앙군사위원, 이종산 차수, 박기서(차수) 당 중앙군사위원, 김정각(대장) 인민무력부 부부장, 이하일(차수) 당 군사부장, 장성우(차수) 당 민방위부장(추정), 주상성(대장) 인민보안상. 김정일 오른쪽으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일 내각 총리, 전병호 당 비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당 비서 겸임),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부위원장, 김국태 당비서ㆍ간부부장, 김중린 당 비서, 김기남 당비서ㆍ조평통 부위원장, 최영림 당 중앙위원ㆍ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서기장, 곽범기 내각 부총리, 노두철 내각 부총리,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부위원장, 유미영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중간단 좌측부에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진 박재경 대장(왼쪽에서 다섯째), 총정치국 부국장 현철해 대장(왼쪽에서 열한 째)과 총참모부 작전국장에 새로 임명된 김명국 대장(오른쪽 끝) 등이 서있다. 전 작전국장으로 군단장에 보임된 것으로 알려진 이명수 대장은 하단 왼쪽에서 일곱째다. 새로 당 통일전선부장에 오른 김양건은 중간단 우측부 왼쪽에서 셋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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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과 2006년의 권력구도를 해부해서 비교해 본 것인데 이 빨간 점들이 권력서열 50위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고위급 인사들의 실질적인 보직은 당에 있고 내각이나 최고인민회의 군부의 자리에 겸직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북한의 경우에는 특히 김정일 정권의 경우에는 군부나 국방위원회에 본래의 보직이 있고 당에 겸직의 자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의 위치는 바로 김정일에 대한 신임도와 보직의 비중을 따져서 위치를 정한 것입니다. 여기 보면 1994년도에는 노동당을 중심으로 50인의 인사들이 포진되어 있는데 2006년 작년의 경우에는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포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방위원회가 북한의 실질적인 통치기관이며 북한이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선군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 권력의 해부도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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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정치는 김정일의 철학이 담긴 독특한 정치스타일입니다.
軍事戰線이 反帝國主義 革命의 第一생명선 이라는 것입니다. 資本主義와의 尖銳한 鬪爭을 하기 위해서는  
合法則的 銃臺가 강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혁명의 주력군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노동계급보다 군대를 더 중시하고 노동계급의 혁명정신보다 혁명적 군인정신을 혁명과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더 중요한 사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선군후로의 독특한 북한식 공산주의 원칙입니다.
社會主義의 運命은 銃臺에 달려있다. 銃臺란 바로 革命軍隊이다.
    北韓의 革命主體는 勞動者가 아니라 軍隊다.
軍隊가 革命의 기둥이요, 革命의 主力軍이다.
그래서 北韓의 革命指揮部는 勞動黨이 아니라 國防委員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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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국방위워회는 1972년 개정헌법에서 주석제를 만들기 위해서 설치되었던 중앙인민위원회의 예하기관이었습니다. 노동당에 중앙군사위원회가 있었지만 그것은 군사정책을 심의, 의결하는 곳이었고 실제 집행과 관련된 문제를 국방위원회에서 관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김일성이 중앙인민위원회 주석겸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었고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정되어 제1부위원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2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국방위원회가 중앙인민위원회 주석을 보좌하는 예하기구에서 독립되어 독자적으로 국가의 무력을 지휘통솔하는 기구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국방위원회 임무를 보면 '國家의 全般的 武力과 國防 建設事業 指導','重要 軍事幹部 任命 또는 解任, '軍事칭호 制定 및 將領급이상 軍事 稱號 授與','戰時狀態와 動員令 宣布' 로서 실질적인 최고 권력기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국방위원회를 중앙인민위원회에서 독립시키고 나서 그 이듬해 1993년 4월에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김일성이 사망을 하게되죠. 그러니까 결국 김정일의 정치수습과 당의 권력, 군사권력을 이양해 주기 위한, 권력세습을 위한 하나의 독특한 수단으로서 국방위원회가 탄생되고 권한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4년에 김일성이 죽고나서 4년 뒤 1998년 개정헌법에서는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방위원회를 최고 군사지도기관, 전반적 국방관리기구로 규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임무에다가 國防部문의 中央機關을 設置하거나 廢止'할 수 있는 權限을 追加하게 되죠. 결국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선언한 바와 같이 국방위원장은 나라의 政治, 軍事, 經濟 力量의 總體를 指揮·統率하는'國家 最高職責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현재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를 위원장으로 해서 북한의 2인자 조명록이 제1부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부위원장에 지난 425 인사때 김영춘 총참모장이 위원에서 작년 11월 24일 사망한 연형묵 부위원장자리로 가고 또 김일성 주석의 이종사촌인 리용무 차수가 지속적으로 부위원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2003년 김영춘 총참모장이 국방위 위원으로 될 당시에는 부위원장으로 있다가 이번에는 다시 위원으로 되었습니다. 백세봉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이 구구한데 고영희의 아들 김정철이 아닌가 하는 설이 유력합니다. 백세봉이 고령의 김철만 위원이 이끌고 있던 제2경제위원회를 이끌고 있다고 하니 그가 제2경제위원회에서 김철만에게 정치수업을 받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철만은 김정일의 정식부인인 김영숙을 김일성에게 소개한 사람입니다. 이명수는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하다가 김양곤 국방위참사가 대남사업담당인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가면서 국방위 참사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최용수는 2003년에 장성택의 추천으로 인민보안상을 맡았는데 장성택이 한때 혁명화 작업을 거치면서 1년반만에 인민보안상에서 물러나고 주상성 대장이 인민보안상이 되었는데 이 국방위 위원자리도 넘겨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람이 김정일의 네번째 부인으로 알려지고 있는 김옥이라는 여성입니다. 김선옥이라는 가명을 쓰기도 하는데 국방위원회의 실무자를 맡아 일하고 있으며 이 여성이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자격으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국방위 과장으로 수행하여 울부라이트 국무장관이나 코언 국방장관을 만날 때 함께 배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김정일이 중국을 갈 때도 함께 수행하여 후진타오에게도 소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 옥씨는 현재 43살로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1980년대 초부터 고영희씨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기술서기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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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군부지도층을 빨치산 세대와 혁명 2세대, 3세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빨치산 세대는 김일성이 과거 중국 등지에서 항일투쟁할 때 최측근으로 보좌했던 사람들이다. 대부분 원수나 차수계급에 해당되고 나이도 80세가 넘는 고령층이다. 이들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도와 혁명정신이라는 덕목으로 발탁된 사람들이다. 리을설이나 백학림, 김익현과 같은 사람들은 항일 유격대 시절 김일성의 전령이나 호위병 출신들이다. 이들은 김일성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김정일도 이들에 대해서 철저히 예우를 갖추고 있다.
제2세대는 현재 군조직의 요직에 포진되어 있는 사람들로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하던 시기에 10대의 어린나이였던 사람들이다. 이들도 연령이 60대에서 70대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혁명 유자녀들로 주로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초기에 북한에 군사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소련이나 중국, 동유럽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해외유학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자질이나 군사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1세대보다는 다소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3세대는 상장에서 대장계급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김정일과 비슷한 연령이거나 낮은 그룹이다. 이들은 해외유학경험 보다는 김정일과 같이 김일성 종합대학이나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나온 국내파들이다. 북한에서는 어느 분야의 최고위직은 예우차원에서 보임하고 중요한 실세그룹은 제2인자에 해당되는 부부장이나 부국장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3세대는 해외에서 유학한 경험이 없고 김일성 우상화 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들이라 2세대보다 보수적이고 대외적으로 강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개발도 이들의 주장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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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인민군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 소개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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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00년 10월 10일 4박 5일간 조명록 차수가 미국방문시 클린턴과 울부라이트 면담  
김정일의 4번째 부인인 김옥씨가 김선옥'이라는 가명을 써서 국방위원회 과장자격으로 조명록 차수가 월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면담할 때 배석.
사진 밑좌측: 2000년 415 태양절, 김일성 93회 생일때 육·해·공 북한군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
사진밑우측: 지난 4월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북한군 창건 75주년 행사에서. 조명록이 건강이 안좋아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입니다.  왼쪽부터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정일 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새로 임명된 김영일 내각 총리, 전병호 당 군수공업담당 서기입니다.

조명록 차수는 김정일 정권 유지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북한 군부의 2인자입니다. 김일성 사망 이듬해인 1995년 10월 차수로 진급하면서 총정치국장을 맡아오고 있습니다. 1998년 9월 권력구조 재편당시 위상이 일층 강화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발탁되었습니다.  평시 원칙주의자로서 성실하고 청렴결백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 최근에 만성 신부전증으로 건강이 아주  안좋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1979년 당시 공군사령관 오극렬이 총참모장으로 영전되면서 그 후임으로 발탁되어 1995년 10월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MIG기 도입 등 북한 공군 전력 향상에 이바지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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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도 1995년 10월 조명록과 함께 북한군부 수뇌부로 등장한 인물입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역임했고 전술 전략에 대한 식견을 겸비한 군사작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강등되어 여단장으로 좌천당하고 혁명화 교육을 이수한 굴욕의 경험도 갖고 있습니다. 1991년 복권되어 1992년 4월에 대장으로 진급한 후 군수동원 총국장을 역임했고 1994년경 6군단장에 임명되어 1995년 3월 '군단내 외화벌이 비리사건'을 원만하고 신속히 처리해 김정일의 돈독한 신임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8년 9월 국방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습니다. 지난해 4월 연형묵 부위원장자리로 이동하면서 총참모장에서 퇴진했습니다.
    - 대담하고 호전성을 겸비한 성격을 소유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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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0년 9월 25일 제주도에서 남북한 국방장관 회담이 분단 이후 최초로 열렸을 때 입니다.  
북한대표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북한대표단 13명과 함께 24일 판문점을 통해 입국했고 성남비행장에서 군특별기편으로 제주도로 직행했습니다.
김일철 차수는 1980년 해군사령관에 임명되어 해군 작전 및 전술부문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특히 1968년 동해함대사령부 참모장 시절 당시 미 프에블로호 납치사건의 실무진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2년 4월에 대장으로, 1997년 4월에 차수로 진급하였습니다.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으로 소련 해군대학에 유학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최광 전 부장이 1997년 2월에 사망하고 거의 1년 7개월 동안 공석이었던 인민무력부장에 1998년 9월에 임명되었습니다.

1947년 보안간부훈련소에 들어가 해군교육을 받았고 1948년 훈련소 졸업과 동시에 원산기지 해군함정 부중대장으로 임관했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부전대장, 전대장으로 참전했다.1958년 해군대학을 졸업하고 1962년 소련해군대학으로 유학을 갔다가 1968년 귀국해 해군사령부 부참모장, 1971년 참모장, 1974년 해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승진하면서 북한해군 현대화의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김일철은 현대적인 해군함정 및 대형잠수함(2천톤급) 건조에 힘쏟는 동시에 수중 지하갱도 해군기지 건설에도 노력해 김일성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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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총참모장에 새로 임명된 김격식 대장은 1980년대부터 일선 군단장으로 활약한 정통 군인이며 1997년 대장계급칭호를 받았다.   야전군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무인이다. 1940년생으로 알려진 그는 1971년 시리아대사관에서 무관보를 지낸 것을 제외하고는 야전군 지휘관으로 활동했으며 1994년에는 2군단장을 했습니다.  1994년에는 김일성 국가장의위원에도 발탁됐고, 1994년 2군단장을 거쳐 1997년에는 대장으로 한 계급 뛰어오르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1991년부터 10년간 인민군 정찰국장을 지내고 있는 김대식 상장의 사촌형으로 이번 발탁 배경과 관련, 김 신임 총참모장이 야전통이라는 점이 우선 손꼽혔다는 것입니다.    
사진은 김정일이 신임 총참모장 김격식(대장)과 함꼐 특수부대를 방문하여 기념촬영
부대원들이 얼룩무늬 옷을 입고 있는데 북한은 최근에 특수전부대들에게 얼룩무의 군복을 입히고 있다고 합니다. 특수전 부대는 경보병여단, 저격여단, 항공6전여단과 같은 부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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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박재경 대장으로 총정치국 선전담당부국장을 하다가 3군단 정치위원을 하던 정태근 중장에게 선전담당부국장을 물려주고 현재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있습니다. 사진은 2000년 9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김 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칠보산 송이버섯'을 선물로 보냈을 때 김용순 당시 노동당 대남비서를 수행해서 따라와 남측 김하중 외교안보수석에게 칠보산 송이버섯을 전달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사람이 김용순인데 2003년 고영희 생일파티 때 김정일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했다가 만취상태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서 죽은 사람입니다.
박재경은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태 당시 김신조와 함께 남파됐다 살아 돌아간 유일한 인물이다. 김신조씨는 한국군에 투항해서 목사가 되었다. 1.21 사태에서 사지를 뚫고 탈출한 투지가 감안되어 고속승진을 했고 최상층부에 올라갔다.  바로 그 사람이 김정일의 송이버섯을 들고 한국에 온 것입니다. 박재경이 가고나서 나중에 김신조가 이야기해서 알게 되었다. 군부의 실세로 군내 선전선동사업의 총괄 책임자. 선전부 사업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 '음악정치'에 발맞춰 인민군협주단, 인민군공훈합창단 등을 조직하고 중대급 예술조소공연을 활성화시켜 김 위원장에 대한 찬양과 인민군 사기진작, 사상교양사업 등을 활발히 벌여 김 위원장으로부터 매우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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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해 대장은 혁명 유자녀로 만경대혁명학원을 나와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했고 루마니아에 유학한 적이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최고사령부 직속 호위군관으로 근무한 사실이 있고  김정일이 군부를 완전 장악하는데 있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1996년 1월에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에 임명됐다가 이번에 국방위 상무부국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조카 현성일이 1996년에 한국에 귀순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도를 입증해준다 하겠다.

이 사람은 이명수 대장으로
  김명국에 이어 1996년부터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하다가 통일전선부장으로 이동한 김양건에 이어 국방위원회 참사로 간 사람입니다. 김영춘과 이명수 작전국장이 국방위원회에 전임으로 가면서 국방위원회가 상근조직으로 기능을 발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사람이 새로 임명된 총참모부 작전국장 김명국 대장입니다. 원래 작전국장을 하다가 리명수 대장에게 작전국장을 물려준 뒤 5군단장과 108기계화 군단장을 하다가 다시 작전국장으로 온 사람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명국 대장이 작전국장으로 활동하던 1995년 그의 자택을 직접 찾아갈 정도로 신임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김정일의 집무실에 파견, 군사문제에 어두운 김정일에게 입체전 개념과 인민군 전력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김일성 군사종합대학과 구소련 프룬제군사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김정일은 소장파 장성들의 군심 파악을 김명국을 통해 얻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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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후계구도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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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첫째 부인'으로 알려져 있는 성혜림과 김일성 몰래 1970년부터 동거를 시작했고 1971년 그와의 사이에서 '첫째 아들' 김정남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이어 1973년 김일성이 소개해준 '두번째 부인'인 김영숙과 '결혼'했으며 그와의 사이에서 김설송(74년생) 등 3명의 딸을 낳았다. 사실상 김정일의 '부인' 역할을 해온 고영희와의 사이에서는 김정철(81년생)과 김정운(84년생) 그리고 여정(87년생)이라는 딸이 있다.  고영희가 2004년 5월에 죽고난 뒤에 네번째로 김옥씨와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옥은 평양 제1금성고등중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80년대 초부터 2004년까지 김 위원장의 비서로 활동했다.  '김선옥'이라는 이름으로 국방위 '과장' 직함을 갖고 활동하면서 김 위원장의 각종 시찰 등에 동행했고, 외빈 접견 때 참석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 제1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방위 김선옥'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김옥과 동일 인물입니다.

김정일은 지난 2005년 12월쯤 후계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후계구도를 조기 가시화하자는 몇몇 '충성분자'들을 견책하기도 했습니다.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2남 정철(26)과 3남 정운(23)의 군부대 시찰 등에 동행도 금지시켰습니다.  그런데 금년들어 김정일은 군부대 시찰 등 공개활동에 정철과 정운 형제를 다시 대동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단순한 '동행'이 아니라 후계수업의 한 과정으로 해석이 됩니다.  최근 북한이 단행한 인민군 간부들에 대한 큰 폭의 인사도 후계구도 가시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군인사가 김정일 이후를 겨냥한 사전 포석일 수 있습니다. 차남 정철의 사진이 노동당 고위관리들의 사무실에 걸리고 그의 초상화가 그려진 배지를 노동당, 내각 그리고 인민군 간부에게 배포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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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은 김 위원장에게 김정남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권유했다는 이유로 평양시 자택에서 엄중한 감시 하에 연금을 당해 왔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김정일의 1남인 김정남과 김경희의 협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나 후계자구도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던 김정남이 다시 후계자 구도에 가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남을 지지했던 장성택이 근로단체및 수도건설 부부장으로 복귀하는 것과 맞물려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김정남이 후계자 구도에 뛰어들면 후계자 전쟁은 '(김)정철(차남)-(김)정운(3남)'의 2파전에서 정남-정철-정운의 3파전이 된다. 또 3남인 정운이 떠오르는 것은 2남인 정철은 여성홀몬 과다분비증으로 신체에 이상이 있다고 하는데 정운은 김일성을 꼭 빼어 닮았고 리더쉽이 있고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입니다.
  김정남의 가세로 '3파전'이 된 북한 내 후계구도는 상당히 복잡하게 됐습니다. 기존 '정철파' '정운파'로 나뉘어 있던 당과 군의 간부들도 현재는 3파로 나뉘어 공작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2파전'에서 '3파전'으로 급격하게 후계구도가 바뀌고 있지만 정작 후계자를 지목할 김 위원장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70세까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겠다"며 "80세 90세가 돼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는 이유를 세가지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김정남-김경희 쪽과 김정철-고영희쪽간의 다툼에 대해서 불쾌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둘은 김정일이 김기남 당비서와 박재경 대장에게 후계논의를 일체 하지말라고 지시하면서 직접 이야기한 것처럼 3대 부자세습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 싫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국방위에서 일하고 있는 새 부인 김옥씨와 연관이 되어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김옥씨에게는 자식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 어리고 만약에 후계구도가 굳혀지면 김옥씨는 지금과 같은 위치에 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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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구도와 관련해서 한번의 파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장성택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하다가 김정남을 후계자로 권유하면서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를 한 이유로 혁명화 작업을 거친 적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부인 고영희(2004년7월께 사망)씨와 고영희씨의 측근세력인 이제강, 이용철 부부장 등이 고씨의 아들 중 하나를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해 2인자였던 장성택을 김 위원장의 권력을 노리는 인물로 몰아서 2002년 방한했을 때 술 마신 것, 김정일을 흉내내서 파티하는 것, 측근인 박명철이 호화결혼식을 한 것등을 문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장성택의 측근인 최룡수 인민보안상이 1년반만에 해임되었고 지재룡, 이광근, 박명철, 리영복 남포시당 책임비서 등 당과 내각에서 전부 해임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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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경쟁의 일선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의 존재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폴란드 대사로 나가있는 김평일은 후계구도에서 한발 떨어져 있지만 상황변화에 따라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후계구도는 김정일이 얼마나 오래 건재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김경진은 오스트리아 김광섭 대사의 부인으로 김영일은 동독으로 떠났다가 죽고 김평일은 현재 폴란드 대사로 있다.

모택동도 결국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아서 모택동 사후에 강청과 함께 왕홍문 등 4인방이 중국을 한동안 이끌었던 것처럼 사실 중국은 지금도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과두체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북한에서 김정일이 후계자를 지정할 경우, 그것은 별탈없이 무난히 후계구도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보지만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사망할 경우, 북한에서도 중국과 같이 지금 실권을 갖고 있는 국방위의 김옥이나 조명록을 중심으로 해서 3인방 혹은 4인방이 당분간 통치를 하다가 김정남-김경희-장성택의 파벌과 김정철, 김정운-이제강-이용철 등 고영희 세력쪽의 파벌과 혹은 김평일을 내세운 유학파 파벌들이 군사혁명을 자주 일으켜서 결국 주변 6개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이 미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서 결국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게 될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김정일의 아들이 아닌 제3의 인물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는데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인 김평일 폴란드 대사, 김정일과 함께 후계자 수업을 쭉 받았던 김책의 아들 김국태 당비서,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부부장등이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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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달 집중호우로 홍수피해가 극심한 평안남도와 황해도에 군부대 동원령을 선포하고 피해복구에 나서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역병이 돌아 한국에서도 의료지원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방위원장의 명령이 내각에 떨어지면 내각이 주축이 돼 각 부처에서 인력을 차출해 상무조(태스크포스)를 구성해서 수해 복구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국방위원회가 중심이 돼 노동당, 내각 부처와 중앙기관, 근로단체 등 모든 단위를 망라한 태스크포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연례적인 전투준비 판정검열을 진행해오고 있으며
지상군, 공군, 특수전 부대의 훈련활동은 예년의 수준인고
해군의 서해 경비함정과 해안포 부대간의 합동통신 훈련이 예년 보다 길어지고 있는 것은 다소 특이한 동향입니다.  
북한 군사당국은 그들이 임의로 설정한 해상경계선을 기준으로 이 경계선을 넘는 우리 함정에 대해서 부당 경고통신을 작년 상반기 대비 2배 이상 빈발시킴으로써 인위적으로 서해 해상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북한 해군사령부 대변인 5월 10일, 21일, 30일 그리고 6월 12일, 21일에 연달아 담화를 내어 남한에 의한 영해침범을 주장함으로써 대남 군사적 '경고' 수위를 고조시킨 바 있음.
북한 군사당국자는 "언제 제3의 서해교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조성되고 있다고 하였으며 "군사적 도발행위로 초래되는 후과에 전적인 책임"이 남측에 있다고 강조

6월 21일의 경우 "침범행위가 해전의 범위를 벗어난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한 불씨"라며 서해해상의 군사적 긴장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바 있음.
남한 대선이 북측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나갈 것으로 보임.⇒ 이를 위해서 북한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일련의 긴장고조행위 등을 통해 남한 내 '전쟁세력 대 평화세력'으로 양분함으로써 남한 내의 정치 사회적 분열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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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5월과 6월 3차례(5월 6일, 6월 7일, 27일)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
고체(연료) 미사일로, 신속한 이동과 발사가 가능한 현대화된 무기이며 "북한이 이를 전력화하고 사거리 연장을 통해 서울 남쪽의 도시들을 지향할 것입니다. "고체 미사일은 북한의 첨단기술을 나타내는 것으로 구형인 프로그(FROG) 미사일보다 개량, 개선, 현대화돼 위협적이고 확산 문제도 수반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당시 동해상으로 3발을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은 1974년 개발된 구 소련제 SS21을 수입해 개량한 이동식 지대지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O2'로 추정됩니다.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서해해상경계선 관련 부당 경고통신을 빈발시켜온 5월과 6월 사이에 감행된 것이어서 서해해상에서의 군사적 긴장조성을 심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음.
한국 국방부 당국은 "최근 북한이 동, 서해에서 시험발사한 미사일들은 단거리 미사일로서 기존미사일에 대한 성능개량을 포함한 훈련활동"으로 밝힌 바 있으나,
리처드 롤리스 전 미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등 미 당국자들은
"KN02가 스커드 미사일 보다 고도의 이동성과 정확성을 갖추고 운용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했습니다.
버벨 웰 주한미사령관도 최근 시험한 북한의 미사일이 전적으로 한국군과 한국민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된 미사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차 발생될 가능성이 높은 서해교전과 연관이 있는 발사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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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번에 고체연료를 개발해서 시험발사한 KNo2미사일입니다. 북한은 1993년 노동1호를 시험발사하고 또 1998년 일본열도를 넘어 태평양상에 떨어진 대포동 1호를 시험발사하는 등 꾸준히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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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 남북회담은 약 22회이며 그 중에서 대부분은 경제관련 회담이고
1회의 남북적십자 실무회담과 3회의 군사회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북군사회담의 경우, 북한은 남북한 군사신뢰구축을 위한 회담을 추구하기보다 NLL문제 쟁점화와 같은 정치적 목표달성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음
2007년 들어 북한측이 먼저 군사회담 개최제의를 해 왔으며 군사회담 수준을 실무급에서 장성급으로 높일 것을 요구한 것은 정치,군사적 갈등을 공론화시킬 필요성을 반영하며
군사문제는 미국과 직접 해결할 문제이지 남한과 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북한이 군사회담 개최에 대하여 상당한 적극성을 보이는 것 역시 NLL 문제의 쟁점화 및 이의 정치적 이용 목적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
지난 5월 8일 부터 있었던 제5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그들의 당면 관심 사항은 ▲서해해상경계선 설정 문제 협의 ▲제3국 경유 북한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문제 ▲북한선박의 해주직항로 허용문제였으며, 이 세 가지 사안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는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음.
북한은 장성급 군사회담 개최를 통해 '서해해상경계선 재설정'과 같은 소위 '근본문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이것이 관철되지 못할 경우, 서해해상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부각시켜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 영해 침범행위 즉각 중지를 요구하며 대남 군사적 압박을 되풀이 해오고 있는 것은 향후 서해해상에서의 군사적 충돌 야기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시위하는 것이며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역시 서해 해상에서의 대남 군사적 압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임.
북한은 '대화와 군사적 압박'이라는 이중적 대남태도를 견지하여 경제적 실리 확보 중심의 남북대화를 발전시켜나가면서 북한 주도의 남북관계를 유도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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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에 대한 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조인된 정전협정이 해상경계선과 관련한 명확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데서 기인하고 있다. 휴전협상당시 유엔군은 우세한 해, 공군력을 바탕으로 바다와 하늘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대표들은 지상 군사분계선의 설정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1951년 7월부터 52년 1월까지 진행된 군사분계선 협상에서 당시의 군사접촉선을 중심으로 한 지상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였으나, 해상 군사분계선과 관련해서는 서해 5개 도서를 연합군 측의 관할권 하에 둔다는 사항이외에는 명확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52
원래 북방한계선의 전신은 전쟁중 북한 해안 봉쇄를 목적으로 한 클라크라인이었다고 봅니다. 당시 미군총사령관 클라크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서해 5개섬을 잇는 봉쇄선을 만들고 유엔에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유엔 총회는 봉쇄안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정전협정에서 클라크라인이 되살아난 것은, 사실 북쪽의 도발보다는 남쪽의 도발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정부가 가장 우려한 것이 이승만 정권의 전쟁재개 움직임이었습니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이 '북진통일'을 위해 북한 서해안을 다시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미 방위조약 체결, 한국군 종합 증강계획 등으로 이승만 정권을 달래는 한편, 클라크라인에 준해 한국해군 행동의 '북방한계'를 '내부 규정'으로 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북방한계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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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해군사령관 김윤심 대장

  유엔군은 1953년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클라크(Mark Wayne Clark)사령관이 일방적으로 해상에 관한 북방한계선을 설정했습니다.
해상에 관한 북방한계선에 대해서 북조선은 1972년까지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으며, 이를 준수했다. 즉, 북조선도 암묵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3년에 북조선은 북방한계선이 유엔군 사령관에 의해 임의적으로 지정된 선이라고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것이 20여년동안 지켜져 왔으며, 유엔군 사령부가 NLL 확정에 대해 통보했을 당시 북한 측의 분명한 이의 제기가 없었으며, 또 1992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11조의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던 점 등을 들어 이를 침해할 경우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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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남한의 대선을 겨냥한 대남 정치공세를 강화해 나가고 있음.- 남한의 대선구도를  친북 평화세력 대 반북 전쟁세력의 대결로 자리잡아 갈 수 있도록 하는 북한의 전략적 대남 정치개입 움직임을 본격화 해오고 있음. 남한 대선 관련 북한의 정치적 개입은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되며,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방북 초청과 반 한나라당 '선전선동 활동이 그것임.-
'반 한나라당' 의 경우, 처음에는 단순히 한나라당에 대해 '반북전쟁세력', '친미 보수세력', '남조선 경제와 민생을 파탄시킨 역적 무리로 몰아붙이는 비난공세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 개인에 대한 비난공세로 확대해 나오고 있음.

55
김 위원장의 올해 상반기 공개활동 횟수는 절반 이하로 감소- 6월말 현재 총 29회(통일부 추산)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4회에 비해 45% 수준- 분야별로는 군부대 시찰 8회를 포함해 군 관련 행사 참석이 13회로 군 관련 활동 역시 감소했습니다. 이같은 김정일 공개활동의 상대적 저조는 김정일의 건강문제나 또는 핵보유 선언이후의 북한 내부체제 정비 징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사진은 지난 7월 3일날 북한을 방문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을 맞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사진은 3월 4일 김정일 위원장이 주조선 중국대사관을 방문하여 류샤오밍 중국 대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류 대사는 한국말도 모르고 북한에는 외교관으로서 처음 가는 사람입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주로 미국에서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해왔던 사람입니다.



56
2007년도 4대 주요행사(▲김정일 65돌 생일 행사(2. 16) ▲김일성 95돌 생일 행사(4. 15) ▲군 창건 75돌 행사(4. 25) ▲아리랑 축전)은 예상과는 달리 기존의 행사 규모를 넘지 않았으며 일정이 예정기간 보다 다소 앞당겨 종료된 행사도 있음.
  행사준비 기간, 규모, 실제 행사 내용 등이 예년의 행사와 대등한 수준- 아리랑 축전의 경우 4월 14일~5월 20일 동안 예정되었으나 5월5일로 조기 종료
핵무장 등 군사력 과시를 통한 체제 정통성 및 김정일 지도체제의 위상강화 필요성과 '꺾어진 해'의 중요성을 감안해 볼 때 2007년도의 4대 주요행사가 다소 약화된 상태로 개최된 것은 내부 체제차원의 문제점의 반영일 수도 있음 



57
북미관계

북한은 2. 13 합의 및 후속조치 차원에서
▲북미 직접협상 ▲북미관계 정상화 ▲경제 제재조치 해제 ▲경제, 에너지 지원 획득을 위한 외교적 주도권을 행사해 오고 있음.
북한은 공세적 대미협상자세를 고수함으로써 미북관계 정상화, 워킹그룹 1차 회의 개최, 빅터 차 NSC 보좌관을 포함한 리차드슨 주지사 일행 방북을 이끌어 내었으며,
BDA문제 타결로 부분적인 대북경제제재 완화, 부분적인 정상적 국제 금융거래 목표 달성
경제, 중유지원 약속이행 유도행위 주도함

북중, 북러관계

김정일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리용철 당 제1부부장, 김양건 국방위원회 참사, 김정각 인민무력부 부부장, 현철해 국방위 상무부국장, 김영일 외무성 부상, 박경선 당 부부장 등 주요인사들과 함께 3월 4일 북한주재 중국 대사관 방문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개최된 인민군 창건행사에 중국군 부참모장 및 주중 300여개 대사관 무관초청 등 군사교류 확대
북러 간 경제협력 증진 및 채무상환 문제 타결을 위한 노력 강화

EU 등 서방관계

EU 트로이카 대표단 방북(3월), 호주 외무성 대표단 방북(3월), 독일 연방의회 의원단 방북(5월), 대 캐나다 외교관계 개선을 위한 대표단 북경 파견(3월) 등을 성사시킴.
2005년 11월 EU의 'UN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 이후, 약 15개월간 정치대화 단절.

UN 및 기타

제3세계 외교활동 강화- 김영일 외무성 부상 아세아 중동 5개국(인도네시아, 미얀마, 이란, 인도, 파키스탄) 방문(4월)
북-미얀마, 북-니카라과 외교관계 재개 추진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대표단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방문(5월)- 앙골라 군사대표단, 베트남 인민회의 대표단 방북(6월) 국제기구 관계 개선 및 확장 외교활동 확대-  유엔 마약위원회 총회(3월)에서 국제마약협약 가입방침을 표명,
3개  국제마약 협약에 가입- FAO·OIE(국제수역사무국)측에 구제역 방역을 지원 요청(3월) 및 WFP에 식량지원 공식 요청(3월)-
각종 민간 토론회에도 적극 참여했는데: WMD 확산방지 토론회(2월), 독일북한관광 워크숍(3월), 이탈리아 북한 문제 세미나(3월)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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