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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세계 창간 15주년 인사말
김진욱  2009-03-25 14:55:06, 조회 : 23,805, 추천 : 1827




창간 15주년을 기념하며...

군사세계 애독자 여러분,

군사세계가 창간된 지 벌써 15주년이 되었군요. 그동안 함께 지켜 봐주신 애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비록 거창한 행사계획은 따로 없지만 그래도 애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창간 15주년을 기념하고 싶군요. 지난 15년동안 군사세계 주변에 또 21세기군사연구소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군사세계를 쭉 읽어 오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연구소와 중국의 국제우호연락회간에 연례적으로 안보포럼을 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사실 처음에 군사세계를 구독하고 있는 중국의 독자들이 씨가 되어 이루어졌어요. 중국 친구들과는 연례포럼뿐만 아니라 비정기적으로도 자주 만나 정보교환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산동성에서 한번 모이자고 해서 또 갔다 왔어요.

양쪽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시험 등 최근 현안들에 대해서 그야말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주요 참가자들이 대부분 정부레벨의 칸퍼런스에 참여했던 분들인데 어떤 정부레벨의 회의보다 내용이 알차고 진지했다고 하더군요. 중국측에서 참석한 양 장군은 북한의 용어를 인용해서 이번 회의가 그야말로 속도전이었다고 그렇게 평가를 하더군요.  

애독자 여러분,

저는 지금 인도에 있는데 지난번 연구소의 행사가 있어서 한국에 나갔다가 인도로 돌아왔는데 또 이번 중국과의 행사 때문에 인도에 온지 일주일만에 한국으로 다시 가서 한국 참가자들과 함께 중국에 갔다가 중국에서 2박 3일간의 회의를 마치고 한국으로 갔다가 지금 막 인도로 돌아왔어요.

계속 비행기를 타게 되어 이번에는 좀 꾀가 나더라구요. 그러나 이 부족한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감히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델리 간디 국제공항에 내리니 새벽 1시군요. 아무도 맞아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휘적휘적 짐을 끌고 택시를 타고 네루대학 기숙사에 와서 샤워를 하고 편집부장의 독촉으로 또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았어요. 저는 하루하루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잘 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번 중국 회의에서 남북간의 경색된 관계에 대해서 한국의 사정과 북한의 사정들에 대해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기서 공개적으로 다 이야기할 수는 없겠고 제가 생각하고 발표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결국 최근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단호한 상호주의 원칙과 인도적 지원의 투명성의 문제인데 이 점에 대해서 중국 친구들과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저는 김대중 대통령 정부 바로 전에 개인적으로 그분과 만나 두시간 정도 햇볕정책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분이 처음 이솝 우화의 예를 들면서 햇볕정책의 취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사실 대북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름이 햇볕정책이 되었건, 개입정책이 되었건 노태우 정부 당시부터 꾸준히 발전되어온 우리가 택할 수밖에 없는 탈냉전기 대북정책의 불가피한 대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이후에 실시된 햇볕정책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막아주고 우리의 인도적 경제 지원이 북한정권으로 하여금 핵을 개발할 수 있는 이적행위가 됐다는 것, 또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가 북한에 햇볕을 퍼부어 주었지만 북한은 옷을 벗지 않고 더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는 등등 일방적인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 국민들 사이에 비판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서 상호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한다는 정책 아젠더가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상호주의에 입각하지 않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은 북한 정권만 이롭게 할 뿐 북한주민들에게 무용할 뿐이라는 비판이죠. 남과 북의 정책결정자들은 지난해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 안보포럼(ARF)에 참석해서 6·15 및 10·4 정상선언의 이행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 바 있습니다. 북한측은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 등 이른바 화해협력정책을 이명박 정부가 계승해야 한다고 남한측에게 강하게 압박했고 남한측은 철저히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북한과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이 중단됐고, 이산가족 상봉과 경의선 열차 운행도 끊겼습니다. 개성공단만 근근히 운영을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나 개성공단도 언제 다시 차단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만일 남북간 냉각기가 2년 이상 더 길어질 경우 자칫 이명박 정부는 경직된 상호주의 때문에 남북간에 아무런 성과 없이 불안만 조성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애독자 여러분,

상호주의는 국제 경제관계나 군축문제에서 자주 적용되어 왔습니다. 가령 무역 관계에서 한 나라가 관세율을 10% 낮추면 다른 나라도 10% 낮추어야 한다든가, 상대국에서 비자 면제를 해주면 우리도 비자면제를 해준다는 그런 원리입니다. 물론 협상하는 두 나라 상황이 100%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100% 등가, 또는 완전 대칭의 원칙이 적용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군축협상에 있어서도 꼭 1대1 등가성, 대칭성이 적용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이들은 식량, 비료 등 인도주의 지원 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이 납북자나 국군 포로를 보내주는 대가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도주의적인 지원에 대해서는 북한의 정권과 관계없이 주민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니 좀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주의 지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 지원이 제대로 되고 있으면 즉 분배 투명성이 보장되면 시행하는 것이지, 다른 조건이 붙는다면 그것은 인도주의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제협력과 같은 것도 시장 원리에 따라 돈이 될 것 같으면 북한과 경제 거래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면 됩니다. 북한이 핵 실험을 했을 때 어떤 이들은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사업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면 이를 중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엄연히 민간 기업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 자체를 강제로 중단시키는 것은 전쟁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아닌 한 옳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 아닙니까.

상호주의를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분야도 있다고 봅니다. 군축이나 비핵화 문제 등에서는 물론 상호주의를 엄격히 적용해야 합니다. 당연히 한국에 핵이 없으니 비핵화 원칙에 따라 북한도 핵을 포기해야 하고 재래식 군축의 경우에도 남북 상호주의가 지켜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비인도적 경제 지원 영역에서 정부가 정책성으로 진행하는 사업들은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애독자 여러분,

남북간 경색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쪽은 북쪽이라고 봅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초부터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반응하면서 강경대응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적인 변화를 시도한 것도 아니고 사실 상호주의 원칙도 남북간에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유달리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적인 제스쳐를 취했고 그것이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북한에게 무조건 잘해 줘야 그런 정부와만 대화를 하겠다 그것은 옳은 자세는 아닙니다.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난 10년간 남한의 적극적인 북한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남한에 고마워한다거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전혀 없고 우리가 기대했던 것처럼 북한이 국제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서 정상적인 외교행태를 보이지도 않았고 또 북한의 인민들을 위해서 어떠한 개선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남한이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만큼 북한도 이제 남한의 체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남북간의 소모적인 대결구도나 긴장고조는 한국의 국민들이나 북한의 인민들을 위하여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 원인을 제공했건 나중에 대응해서 했건 남북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위도 반국민, 반인민, 반민족적인 행위입니다. 지난 시대에 우리가 동포 100만을 죽이고 또 그 후에도 많은 선량한 국민들을 죽였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권이고 이념입니까. 더 이상 남북간에 어리석은 치킨게임을 벌여서는 안됩니다.

어느 일방이 이익을 보고 어느 일방이 손해를 보는 그런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서로간의 차이점, 서로간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함께 도와 공존, 공영할 수 있는 윈-윈게임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 그 정도로 생각이 틔이지 않았습니까. 한반도의 분단문제가 남북간에 서로 옳다고 주장해서 될 일입니까.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화합의 문제이고 포용의 문제이고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하는 그런 문제입니다. 평화와 발전이 목표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그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애독자 여러분,  

제 생각에는 지금의 남북관계의 경색이 상호주의 원칙의 고수 때문이 아니라 북한을 대하는 태도나 테크닉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북한을 무시하는 태도, 북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로는 결코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자존심이 강한 나라입니다. 원래가 약자일수록 자존심이 강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맏형처럼 의연하게 북한을 포용하고 각론에서 북한을 이기려고 매달리기 보다 총론에서 우리의 방향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북관계나 대북정책에 있어서 진정한 실용주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남한과 북한의 국민들의 경제이익, 안보이익, 문화이익을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기계적인 상호주의에 발이 묶여서 진정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놓치면 안됩니다. 북한은 지난 60년 동안 일관된 대남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은 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의 흐름이 바뀌어야 합니까? 국민들의 가치나 선호가 바뀌어지는 것도 아닌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대북정책이 자꾸 바뀌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대북 포용정책의 전반적인 기조를 계승하면서 변화와 발전을 모색해 가야 합니다. 북한과 남한의 정치지도자, 정책결정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나 자기 파당이나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과 인민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것이 옳은 일인가, 또 어떤 것이 도움이 되는 일인가 근본적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애독자 여러분,

저는 중국 친구들에게 북한 친구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북한의 인민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인가. 어떤 정책이 인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인가. 그것을 고민하게 되면 북한의 정권은 저절로 지켜진다. 중국의 모택동 주석이 어떻게 장개석 총통을 이겼습니까. 우리는 왜 모택동과 등소평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그 두분이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옳은 일, 인민을 위하여 이익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허상입니다. 정권이 끝나면 다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모택동 주석이 '인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인민이 믿지 않으면 한발짝도 나아가지 마라'. '오직 인민만이 세계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대약진운동으로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죽는 참상을 보면서 등소평 주석께서는 ‘빈곤은 사회주의의 특징이 아니다. 인민 모두가 부유해지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민에게 빵을 주는 것은 공산당의 절대적인 사명이요. 인민에게 빵을 주는데 노선을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등소평 주석의 유명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입니다. 북한에게 그 이상 더 어떤 역사적 교훈이 필요합니까. 그 어떤 이론과 당위성, 그 어떤 지침이나 교시도 인민이 굶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설사 그 방법론에 있어서 서로 다르더라 하더라도 인민에 대한 사랑, 인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 선한 기준을 갖고 있으면 남북간에 결코 갈등이 생겨날 이유가 없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지난 15년간 저희 군사세계 KDR과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형편이 좋아지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일 날도 있겠지요. 'In our own sweet time, in our own sweet way' 감사합니다.

월간 군사세계 발행인 김진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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