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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관련 국군방송 인터뷰 내용
김진욱  2008-07-01 09:53:23, 조회 : 18,830, 추천 : 1581


제2연평해전은 우리에게 ‘NLL은 목숨 걸고 지킬 선’임을 알렸다

편집부

지난 4월 8일 국방부는 “2002년 발생한 서해교전이 1999년 ‘연평해전’과 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한 전투인 점 등을 감안해 서해교전의 명칭을 제2 연평해전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999년의 연평해전은 이제 ‘제1 연평해전’으로 불리게 된다. 제2연평해전의 한 유가족이 정부를 원망하면서 한국을 떠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벌써 6주기가 되었다. 본지는 제2 연평해전으로 재평가된 서해교전과 해전사로서의 의미를 알아보고자 21세기군사연구소 김진욱 소장의 국군방송 인터뷰 내용을 게재한다.

- 연평해전은 무엇인가?

연평해전은 남북간의 피해규모나 군사적, 정치적 파장 등을 고려해 볼 때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간에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해상 전쟁이었습니다. 두 개의 전쟁이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3년간의 시간차를 두고 발생했으며 심리전과 정치전쟁, 언론전쟁의 현대전 양상을 그대로 갖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제한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남북간의 화해무드를 깨지 않겠다는 의도에 따라서 가능한한 우발적인 작은 충돌로 치부하려고 했었던 전쟁이었습니다.

제1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연평도 인근 해안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서 한국 영해를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한국 해군의 고속정이 선체를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발생되었던 해상전투입니다. 북한 경비정은 그전 6월 6일부터 매일 북방한계선을 넘어와서 몇 시간씩 한국 영해에 머물면서 우리측의 반응을 살피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9일째 되는 날인 15일 오전 경비정 4척이 꽃게잡이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 해역까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한국 해군이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해서 오전 9시 7분과 9시 20분 두 차례에 걸쳐서 선체를 충돌시키는 밀어내기식으로 공격을 감행했고 충돌공격을 받은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25㎜ 기관포로 우리측 배 고속정 325호에 공격을 가해 와서 한국 해군이 초계함의 76㎜ 함포와 고속정의 40㎜ 기관포 등으로 응사해 북한 어뢰정과 경비정을 명중시켰습니다. 이 교전에서 북한 어뢰정 1척과 중형 경비정 1척 등 2척이 침몰했고 다른 경비정 3척도 크게 파손된 채 퇴각했습니다. 한국의 고속정과 초계함 등 2척도 북한 어뢰정이 발사한 27㎜ 함포를 맞아 선체 일부가 파손되었고 장병 7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3년 뒤인 2002년, 온국민이 서울 월드컵의 흥분의 도가니속에 있었던 상황에서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다시 북한 해군이 기습적으로 제1연평해전에 대한 보복사격을 시작하여 양쪽 해군사이에서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북방한계선 북한측 해상에서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북한 경비정 2척이 NLL을 침범하면서 남하하기 시작했고 우리 해군 고속정 4척이 대응에 나서서 경고 방송을 하는 가운데 북한쪽에서 제1연평해전 당시의 등산곶 684호가 85미리 기관포로 기습사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포격으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이 때부터 양측 함정들 사이에서 25분 동안의 교전이 진행되었습니다. 10시 43분경 북한 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발생하자 나머지 1척과 함께 북한 해군이 퇴각하기 시작했고, 교전은 끝이 났습니다.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공격으로 고 윤영하 소령 등 한국 해군 6명이 전사를 하였고 19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또 해군 고속정 1척이 침몰을 당했습니다.  

- 서해교전에서 연평해전으로 승격된 의미는?

서해교전은 연평해전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북한에서 계획적으로 의도적으로 도발한 사건이며 우리 해군 장병들이 목숨을 다해서 우리의 영토선인 북방한계선을 지켜낸 작전이었습니다. 우리 군인들이 생명을 바쳐서 우리의 영해선인 북방한계선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또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었다는데 대해서 가장 성공적인 군사작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서해교전을 연평해전으로 승격한 것은 북한에 대한 관점이나 정치적인 관점이 달라졌다는 점도 있긴 하지만 이 전쟁을 전술적인 차원에서의 승패보다 전략적인 차원에서의 승패로 다시 판단해본 결과라고 봅니다. 3년사이에 일어난 두 해상전쟁을 하나는 성공했다고 해전으로 부르고 하나는 실패했다고 교전으로 부르고 하는 것은 군사교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전투에 참전한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혼란을 주게 되는 것으로 봅니다.

서해교전이야말로 1999년 '연평해전'과 같이 비록 우리 측의 피해가 컸긴 했지만 독특한 정치상황이 만들어낸 교전규칙에 따라서 결과적으로 우리 해군이 생명을 다해서 서해의 NLL을 실질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사수한 전투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패배한 전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6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의 희생을 통해 영해를 사수하는 숭고한 군사목표를 달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가벼이 볼 수가 없습니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을 서로 달리 부를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군사교리적으로도 이제 제대로 정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과거 정부에서 남북간의 화해무드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서해교전을 우발적으로 발생한 소규모의 충돌로 격하시키는 일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적어도 군사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한 판단이었습니다. 정치적인 힘은 언제나 군사적인 힘을 바탕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해전이 일어난 전투 당일 한·일월드컵 축구 4강전을 참관한다는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했던 사실이나 또 소음을 막기 위하여 심지어 장례식장에 동료 병사들은 물론 전사자 가족들까지도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 연평해전이 우리 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연평해전은 우발적인 교전이 아니라 북한 해군이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도발한 전쟁입니다. 그동안 북한은 수도 없이 많은 도발을 해왔습니다. 1968년의 1.21 청와대 습격사건, 프에블로(Pueblo)호 납치사건,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1976년의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83년 버마 아웅산 폭파사건, 1987년의 KAL기 폭파사건, 1996년과 1998년에 있었던 잠수함침투사건 등등입니다. 연평해전은 우리 군에게 남과 북의 화해무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사적으로는 서로 적국이라는 현실을 심각하게 깨닫게 해준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하여 한국은 언제나 주권국가 수준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피동적으로 뒷수습만을 해왔는데 제1연평해전은 국가적 위기상황을 정면돌파함으로서 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킨 성공적인 ‘위기 관리사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평해전 이후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북한 측이 이 전투의 남조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주장을 하였고 한국 정부는 우리 군이 승리한 전쟁을 과소평가해야 하는 군사적으로는 아주 우울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교전 시간은 14분에 불과했지만 아군 함포의 고속 발사율과 높은 명중률을 통해 우리 해군이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북한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강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해군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있던 해군사령관 김윤심 상장이 보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2002년 월드컵 막바지에 기습적으로 한국의 고속정에 사격을 가하여 교전이 벌어진 것이 제2 연평해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김윤심 상장이 현장에서 지휘를 하였고 제1연평해전에서 생존한 북한 등산곶 684호의 갑판장이 이번에는 함장이 되어 기습공격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당시 북한 함정이 아군 함정을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에 지원할 비료를 적재한 한국의 화물선이 해주항에 입항하기 위해 연평도 근해에 정박하고 있었고 우리 해군 장병들이 북한 해군과 사투를 벌이고 죽어가고 있는 가운데 많은 국민들은 금강산 관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와 군사적인 문제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 장병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분명히 깨닫게 해준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 김윤심 상장의 대장 진급을 보더라도 서해상에서의 도발에 대해 북한의 의사결정시스템안에서의 김정일의 결심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 ‘계획적 도발’이냐 ‘우발적 도발’이냐 라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발적으로 발생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뒤에 해안포가 있고 미사일이 있고 공군이 있고 자칫하면 확전되어 전면전의 가능성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우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나의 경비정에 화가 나면 먼저 사격도 할 수 있도록 독단권을 부여했다면 그런 군대는 군대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의 군대입니다. 특히 제2연평해전의 경우 김윤심 상장이 현지에서 직접 지휘한 것으로 여러 가지 정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윤심 상장은 과연 독단적으로 선공격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이 비료지원을 받고 화해무드가 조성되어 가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김윤심 상장이 상부에 보고없이 남북간의 그런 충돌을 시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군사적 도발이 군사지휘관들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해도 그것이 최고사령관인 김정일의 현시적인 혹은 암묵적인 지원이 없이는 북한에서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전선을 통일한다는 것은 공산주의 군대의 가장 핵심적인 작전요무령입니다. 연평해전은 의도적이고 계획되어진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적어도 여러 가지 계산을 통하여 일을 벌였는데 우리는 그것이 우발적인 것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군사적인 요소를 계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 북미간 관계 정상화가 이뤄진 이후 NLL에서의 남북상황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은 미국을 통해서도 NLL의 무효성을 계속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북한에게 있어서 핵이나 미사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협상력에 중요성이 있는 것처럼 NLL의 문제도 미국과 여러 가지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카드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당연히 협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북한에서 제시하는 모든 카드를 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야기하자고 할 것입니다. NLL 카드는 단순한 카드가 아닙니다. 그 히스토리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북한과 협상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잘 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결국 북한이 적성국에서 해제되고 경제적 형편이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NLL에서의 남북상황은 호전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북한은 NLL의 문제를 한국과 논의하지 않고 미국과 논의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발적인 것을 가장한 계획적인 도발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3단계로 대응하니까 우리 측 피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확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말고 해군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시위기동을 하고 즉각적으로 경고사격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한 명확한 자세가 서해에서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제3의 연평해전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서해 북방한계선 근해는 예전부터 어로활동을 두고 남북 어선 간에 충돌이 잦은 해역입니다. 북한은 언제라도 이 해역에서 긴장을 조성해서 내부단속을 하고 또 남북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연평해전이 끝난 후 해군은 합참에 교전수칙인 5단계 대응전략을 3단계 대응전략으로 바꾸자고 건의를 했습니다. 5단계 대응전략은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까운 거리에서 차단기동을 하면서 선제공격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일단 얻어맞고 싸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군사논리가 정치논리에 눌렸고 교전수칙은 바뀌지 않았으며 2002년 6월의 해군 장병들의 희생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적의 기습 가능성을 짐작하면서도 고속정에 차단기동을 지시한 것은 연평해전의 교훈을 무시한 안이한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전수칙 5단계는 제2연평해전 이후 수정됐습니다.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바뀌면서 근접기동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정치적 논리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군사작전에 지장을 주면 안 됩니다. NLL은 6·25 전쟁 이후 확보된 한국의 영해선입니다. 당연히 통일 직전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NLL이 뚫리면 해상안보가 무너집니다. 당장 수도권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과의 화해무드도 중요하고 경제협력도 중요하지만 경협과 안보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땅에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안보는 확실히 챙겨야 합니다. 이것이 연평해전이 우리 군과 국민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북방한계선의 갈등으로 빚어진 연평해전은 아직도 끝난 전쟁이 아닙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군사적 도발을 암시하는 발언을 일삼으면서 대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연평해전의 무대인 서해 NLL은 한반도 최대의 화약고로 꼽히고 있습니다. 북한이 또다시 NLL 도발을 해올 경우 우리 해군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9년 전처럼 완벽하게 제압할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는 양개 연평해전으로부터 중요한 전술적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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